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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공부하면 인생이 잘 풀릴까?

CNN 뉴스를 틀어놓고 공부하면 아는 단어만 들리고 모르는 단어는 죽어도 안 들립니다. 테러리즘, 파리스, 프레지던트 등 언뜻언뜻 들리는 단어 몇 개로 내용을 추리하고는 CNN 뉴스의 70퍼센트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건 제대로 된 영어 공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정말 CNN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면 뉴스를 받아쓰기해보세요. 자신이 써놓은 문장이 말이 되면 제대로 들은 거죠. 그렇지 않다면 CNN 청취로 영어 공부 하지 마세요.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기초 회화를 들으며 따라 하고 외우시는 편이 낫습니다.

  • 김민식
  • 입력 2017.01.11 11:24
  • 수정 2018.01.12 14:12
ⓒOliver Strewe via Getty Images

2015년 남미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하면서 하루 20킬로미터씩 걸었습니다. 녹초가 되어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면 침대에 널브러져 스마트폰에 넣어 간 미드나 시트콤을 시청했습니다. 그때 시트콤 〈루이〉를 즐겨 봤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극중 루이는 삼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카지노에서 코미디 쇼를 합니다. 카지노 손님을 위해 도박장 한쪽에 마련된 무료 공연인지라 관객의 집중도는 떨어집니다. 도박으로 돈을 잃은 이들을 잠시 웃겨주어 기분 전환을 시킴으로써 다시 도박판으로 돌려보내려는 카지노의 계산속이겠지요. 쇼에 대한 호응은 확실히 유료 관객이 좋습니다. 본전을 건지려면 공연에 몰입해야 하거든요. 멍하니 딴생각을 할 거라면 굳이 비싼 돈을 내고 입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공짜 손님은 반응이 별로 없어요.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일어나 미련 없이 나갑니다. 다시 룰렛이나 한판 해야지 하고.

루이가 열심히 개그를 하는 도중에 어떤 손님이 일어나 나갑니다.

"지금 제 쇼 안 보고 도박하러 가시는 거예요? 가면 또 잃을 텐데. 여기 호텔 주인이 도널드 트럼프잖아요. 트럼프랑 여러분 중 누가 더 부자예요? 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카지노에 바치나요? 트럼프는 여러분이 도와주지 않아도 이미 백만장자인데 말이죠."

결국 루이는 호텔 매니저에게 불려갑니다.

"어이, 어이.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그런 조크를 하면 어떡해?"

"사람들이 제 쇼에 집중을 안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여기에 자네 쇼 보러 왔어? 게임 즐기러 온 거잖아. 그런 사람들의 흥을 꼭 깨야 해?"

루이, 순간 자존심이 팍 상합니다.

"아, 됐어요. 제가 그만둘게요. 그럼 되잖아요."

홧김에 일을 때려치우고 나오는 루이. 나오다 대극장에서 어떤 노장 여성 코미디언의 쇼를 보게 됩니다. 할머니 코미디언이 나이 60에도 무대에서 펄펄 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그는 대기실로 찾아갑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은 오늘 일을 때려치웠다고 말해요.

노장 코미디언 조앤 리버스와 루이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조앤: 그만뒀다고?

루이: 네.

조앤: 왜?

루이: 상황이 하도 거지같으니까요. (참고로 이 시트콤은 성인용입니다. 영어 원문은 표현이 많이 거칠어요. 이거 보고 회화 공부하면 욕만 늡니다. 참고용 보조 교재로 써야지 교과서는 아닙니다.)

조앤: 그래도 그만두진 말아야지. 잘리는 거야 할 수 없지만, 스스로 때려치우진 말아야지. 무조건 버텨야지, 아무리 힘들어도.

루이: 버티면 언젠가 상황이 좋아질까요?

조앤 리버스가 루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I wish I could tell you it gets better. But, it doesn't get better. You get better."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지는 않을 거야. 대신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시트콤을 보다가 순간 멍해졌습니다. '상황은 더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버틴다면, 너는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다.'

"나 이제 때려치울 거야!" 하고 물러나면 나의 한계가 거기까지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버티는 자에게는 한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그날까지 버텨야겠어요. 팝가수 켈리 클라크슨도 노래하잖아요.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영어 공부는 버티는 힘이 중요합니다. 회화 학원에 어학연수에 과외 교습에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아 하다가 자꾸 포기한다는 후배가 있었어요. "영어 책 한 권 외워봤니? 영어 책 한 권만 외우면 영어는 절로 술술 나온단다." 더 쉬운 비결은 없느냐고 묻는데요, 쉬운 공부는 효과가 없어요. 책 한권을 외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어요. 힘들어도 6개월만 버티면 머릿속에 영어의 기초가 확고하게 들어섭니다. 이 과정이 없이 그냥 즐거운 공부로 넘어가면 즐겁기만 하지 효과가 없어요. CNN 뉴스를 틀어놓고 공부하면 아는 단어만 들리고 모르는 단어는 죽어도 안 들립니다. 테러리즘, 파리스, 프레지던트 등 언뜻언뜻 들리는 단어 몇 개로 내용을 추리하고는 CNN 뉴스의 70퍼센트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건 제대로 된 영어 공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정말 CNN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면 뉴스를 받아쓰기해보세요. 자신이 써놓은 문장이 말이 되면 제대로 들은 거죠. 그렇지 않다면 CNN 청취로 영어 공부 하지 마세요.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기초 회화를 들으며 따라 하고 외우시는 편이 낫습니다. 초급 영어를 완벽하게 정복하지 않고 그냥 중급자 코스로 넘어가는 건 허공에 탑 쌓기고 밀물 앞에 모래성 쌓기입니다. 기초가 없으니 금세 무너집니다.

취미 삼아 하는 공부라면 그냥 즐겁게 해도 되겠지요. 하지만 인생을 바꾸겠다는 각오로 공부하고 싶다면 무조건 책을 외우세요. 힘들어도 그게 가장 오래가고 가장 잘 남습니다. 화려하고 높은 빌딩을 지으려면 보이지 않는 땅속 기초 공사에 더 공을 들이는 법입니다. 힘든 암송 공부를 버티고 견디는 과정에 내 속에서 무언가가 변합니다. 힘든 시간을 견디어 무언가를 이루면 뿌듯한 자부심이 생겨납니다. 요령을 피우고 설렁설렁 넘어가면 영어도, 사람도 나아지기 힘들어요. 포기하면 거기까지가 내 한계가 됩니다. 버텨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향상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요. '꾸준한 오늘이 있기에 내일은 무한하다', 이런 각오로 하루하루 삽니다.

매일 나아지고, 그런 매일을 쌓아가면서 인생을 바꾸는 내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방위병 시절, 혼자 영어를 공부하며 날마다 문장을 외웠습니다. 매일 문장 10개를 외우면 몇 달이면 책 한 권을 다 외웁니다. 회화책 한 권을 외우면 영어의 말문이 열리고요.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위즈덤하우스, 2017)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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