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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존을 위한 동반성장

얼어붙은 남북한 간의 대립 한가운데서 잊혀 가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개성공단 폐쇄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입주기업들의 피해가 적지 않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개성공단을 통해서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며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듦으로써 통일의 바탕을 마련하고자 했던 목표를 잃은 것은 더 큰 손실이다. 개성공단은 단순한 '공단'이 아니다. 남북 사이의 '평화 지대'이자 안전핀이다. 그래서 이명박정부조차도 북한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에도 개성공단만은 폐쇄하지 않았던 것이다.

  • 정운찬
  • 입력 2017.01.11 09:57
  • 수정 2018.01.12 14:12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분단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다. 짧은 산업화 기간 동안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내어, 6개국뿐인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국가)에 7번째로 가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또한 엄혹한 독재정권의 탄압을 물리치고 자유와 민주주의도 쟁취하였지만, 그것은 민족분단과 전쟁의 위험을 벗어나지 못한 불안한 성취였다.

한국 사회는 왜 동반성장이 필요한 것일까?

우리 민족이 갖고 있었던 도덕적 품격은 압축 성장과정에서 사라지고, 기득권이 계층화되면서 쌓여왔던 '비정상'이 저성장 장기불황 국면에서 지역, 이념, 계층 간 극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다시금 빈곤의 시절로 되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시국에 동반성장은 공존의 가치이기 때문에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공존하기 위해서도 동반성장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북한의 핵개발 및 동북아 국제질서와 관련한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국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주민의 탈북을 독려하였으며 외교부장관은 UN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유엔회원국 자격박탈을, 국방부장관은 한걸음 더 나아가 김정은 제거 특수부대를 운용할 계획이 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미국 민주당의 오바마정권에서 조차도 군사적 '선제 타격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마디로 북한 정권을 힘으로써 붕괴시키겠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전쟁을 부르는 휘파람을 부는 것일까?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한반도의 분단과 대결 상황에서 이득을 보고자 하는 이들일 것이며,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바라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자국의 이해가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상황이 군산복합체적·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

1992년, 노태우정부와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즉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도 함께 발표했다. 그것은 북한을 민족공동체 일원으로 보면서 대북협력의지를 표명하고, 각종 대북제의에서 항상 수반되었던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의 시침은 20여년 뒤로 회귀되었다.

얼어붙은 남북한 간의 대립 한가운데서 잊혀 가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개성공단 폐쇄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입주기업들의 피해가 적지 않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개성공단을 통해서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며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듦으로써 통일의 바탕을 마련하고자 했던 목표를 잃은 것은 더 큰 손실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개성공단이 재가동되기는 요원해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 실천이라는 선행 조건도 그렇고 한반도의 사드배치 결정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에서의 대립과 대결국면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통일경제의 교두보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시장경제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결합한 '경제공동체형 통일모델'이다. 자본 및 기술에 강점이 있는 남한과 토지와 노동력을 가진 북한이 함께 성장하면서 이익을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성공단은 남북 소통의 장이자, 북한에 시장경제를 전파하는 선전의 장이다. 오스트리아 빈(Vienna)대학교의 뤼디거 프랑크 교수는 "개성공단은 거대한 남한측 선전기구"라고 말한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남쪽이 풍요의 땅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성공단의 폐쇄로 인해 우리가 입을 경제적 손실은 만만치 않은데 우선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임금과 지대 상승으로 경쟁력이 하락한 우리 중소기업들의 출구가 개성공단과 같은 대북 경제협력 사업인데 이 길이 막혀버린 것이며, 둘째는, 남한과 북한간의 교류 단절로 교육수준과 숙련도 높은 북한 노동력이 중국 산업에 투입된다면 그 비교우위 효과는 중국이 가져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동북아시아에서 경제협력이 원활하면 기업은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고, 역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을 남한이 가져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가 사라질 처지가 된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통일의 초석을 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교류와 협력의 전면적 중단을 넘어서 체제붕괴를 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통일의 결과만 강조했지 '과정으로서의 통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단순한 '공단'이 아니다. 남북 사이의 '평화 지대'이자 안전핀이다. 그래서 이명박정부조차도 북한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에도 개성공단만은 폐쇄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껏 남북관계가 냉·온탕을 반복한 것은 그것이 정치·군사 분야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남북교류와 경제협력 사업은 정치와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우선 '통일기반 조성용 경제협력사업'과 그 외의 사업을 분리하는 것이 요구된다. '통일기반조성용' 사업을 어떤 경우에도 중단 없이 지속할 수 있다면 남북한 간에 신뢰는 쌓여가고 경제협력은 더 넓고,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독일이다. 서독사람들은 동독에 제공한 인도적 지원을 '퍼주기'라 비난하지 않고 평화비용으로 보았다. 통일은 큰 담론이 아니라 작은 실천을 통해서 준비되는 것이다.

"분단되어 있으면서도 통일된 효과를 누리는" 전략의 사례는 독일만이 아니다.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대만의 경우에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천명한 "92공식"을 바탕으로, 경제협력과 실질적인 자유왕래가 이뤄지고 있다. 교역규모는 연간 1,000억 달러이며, 한해 대만을 방문하는 본토인은 300만명이나 된다. 대만 기업 10만개가 본토에 진출해 있으며, 본토인은 대만 주식시장에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상대방의 경제에 대한 타격은 곧 자신의 경제에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라도, 중국과 대만과의 전쟁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먹고사는 문제는 정치에 우선한다. 그리고 경제체제가 변화하면 정치체제도 달라지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사회체제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닫혀있는 개성공단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은 물론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들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제와 이념, 민족적 당위보다는 상생공영이라는 남북한 동반성장이 통일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알다시피 한반도 문제는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국은 이미 1990년 이후부터 러시아, 중국과는 국교를 수립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아직 북한과 미수교 상태로 교차승인이 되어 있지 않다.

북한문제가 동아시아 패권경쟁의 지렛대로 이용된다면 우리로서도 불행한 일이다. 이스턴켄터키대 곽태환교수의 표현대로 북한은 피포위 강박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은 한국정부를 배제하고 미국과 직거래를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들 정권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서 미국과의 대화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문을 꽁꽁 걸어 잠그면 대화는 불가능하고 대결만 남을 뿐이다. 문을 열어야 대화가 되고 상대방의 속살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 이야기하듯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2+2 한반도 평화조약'으로 가능하다

결국 제재와 압력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현행 전략으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권을 바꾸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가 아닌 북한의 사회 전반을 바꾸는 시스템 체인지(system change)를 고려해야 하는데, 남북한 간의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동반성장을 추진하는 일이나 북한과 미국과의 불가침을 명시한 평화협정 체결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전쟁 당사자국이 참여하는 '2+2 한반도 평화조약'으로 발전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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