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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말 할 수 있는 3가지 이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거다. 누군가는 신년에 솔로인 것도 모자라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나쁜 인간이란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 속이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탄핵 정국에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드는 것만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법은 아니다. 좋아하는 연인을 만나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연애질'도 분명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모든 연애가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다음으로 소개하게 될 이유를 되새기며 진정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연애가 무엇일지 다 같이 고민해보자. 사랑만 잘 하면 당신도 '민주 시민'이 될 수 있다! Power of Love!

1. 나는 나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굉장히 뻔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리 간단하게 얻어진 권리가 아니다. 인류 역사의 오랜 시간 동안 '재생산', 즉 '출산'이란 과제에 구속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현대 사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출산하지 않고자 하는 사람조차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피임법이 완벽하지 않았기에 출산을 완전히 피하려면 섹스를 아예 하지 않는 방법 밖엔 없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과학 기술은 피임 기술의 완성도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올려놓았고, 시험관 아기 등의 기술을 통해 출산 과정의 상당 부분을 자연이 아닌 인간의 의지로 조율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연인 관계에서 '출산'이 의무사항이거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선택사항으로 변했다. 이런 재생산의 압력으로부터의 해방은 동성애에 대한 안 좋은 시각조차도 어느 정도 개선시켜 놓았다. 이는 결코 간단한 변화가 아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이처럼 더 이상 '출산'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된 관계에 '순수한 관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 사회적 압력 없이 자신의 성적 지향과 취향을 유연하게 결정지을 수 있는 상태를 '조형적 섹슈얼리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즉, 우리는 서로에 대한 끌림 이외에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유례 없이 독립적인 개인들 간의 관계가 가능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적인 변화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순수한 관계란 사회적 관계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즉 개인이 다른 사람과 나누는 지속적 교제에서 파생될 수 있는 것들을 목적으로-시작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순수한 관계는 그것이 그 관계에 들어가 있는 각 개인에게 충분한 만족을 준다고 당사자 모두가 생각하는 한에서만 지속된다. 사랑은, 성적으로 '정상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결혼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연결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사랑과 섹슈얼리티는 점점 더 순수한 관계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순수한 관계는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발전과 병행한다." (책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친밀성의 구조변동', 앤서니 기든스 저)

2. 나는 나의 선택으로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

연인 관계가 오직 서로간의 '끌림'에만 집중하면 되는 '순수한 관계'가 되었다는 건, 말하자면 아이가 성인이 된 것과 같다. 아이는 성인이 되면 얻게 될 자유를 원하지만, 막상 성인이 되고 원하던 자유를 얻었을 때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다. 이 자유를 어떻게 해야 적절하게 쓸 수 있을까? 또, 어떤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은 무엇보다 개인에게 주어진다. '끌림'이 관계를 결정짓는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라면, 먼저 우리는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그걸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저자는 '자아의 성찰적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취향과 성격을 자율적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개인의 영역이 확대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엔 성적 취향, 사랑에 대한 가치관과 연인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포함된다. 사랑하는 방법이 관습에 의해, 자연적 한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주어졌던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확대된 것이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성찰적 기획'과 연인 간의 '순수한 관계'가 만나 만들어진 결과는 이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혼이 사랑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다. 우리는 이미 동거, 별거, 비혼, 주말부부, 섹스파트너를 포함한 연애, 출산 혹은 비출산, 이성 혹은 동성부부의 입양 등등 다양한 방식의 사랑법을 접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이룬 가족만이 단일한 선택지였던 전통사회를 지나,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수많은 보기 중 나에게 맞는 사랑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연인이 되었을 때 또 한 번 상대방과 그것들 중 '우리에게' 맞는 것은 무엇일지 함께 고르고 또 협상하며 때로는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끌림'에만 집중하면 되는 '순수한 관계'가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우리는 과거보다 우리 개인의 영역에서 훨씬 많은 걸 결정해야 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순응할 필요가 사라진 대신 막막하고 때로는 골치 아픈 과제가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다.

"...논의할 쟁점은 개인 생활 전반의 윤리에서 일어난 근본적 이행에 관한 것이다. 친족은 젠더와 마찬가지로 한때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여겨졌던...일련의 권리와 의무들이다...그러나...별거하고 이혼하는 사회에서 핵가족은, 예컨대 소위 재조합적 가족(가령 이혼한 남녀가 각기 자신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며 이루어진 가족 같은 것-역자 주)과 연관된 다양한 새로운 친족적 유대를 발생시키고 있다...친족 관계들은 신뢰의 기초로서 당연시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신뢰는 협상되고 거래되어야만 하며, 그 헌신은 성적인 관계에서 만큼이나 논쟁거리가 되었다...사람들은 '협상된 헌신'을 통하여 자기 친족을 조직하는 경향이 있...다."(책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친밀성의 구조변동', 앤서니 기든스 저)

3. 나의 연인도 나와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며 사랑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제 결론을 내릴 차례다. 현대사회에서 연애라는 것이 이런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면, 그런 특징을 가진 연애는 어째서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제 연인이든 가족이든, '날 때부터 사회와 자연에 의해 저절로 주어진' 관계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과거와 달리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닌 '합의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되었다. 그리고 합의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연인 사이에 수평적 권력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평적 권력 관계가 아닌 관계는 진정한 연인 관계라고 부르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수평적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수많은 문제-성적 취향부터 결혼 여부, 동거 여부 등 결정지어야 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력과 협상 기술이 그만큼 더 필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수평적 관계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기하면서도 그 관계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능력. 그게 바로 민주주의자의 능력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온 사회 구성원 사이의 관계로 확장된 사회가 바로 민주 사회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연애가 바로 이러한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질과 덕성을 연마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관계가 되었다고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진짜 연애는 단순히 같이 섹스하고 놀러 가서 셀카 찍는 행동이 아닌, 나를 상대방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볼 것을 요구하고 요구 받겠다는 결단과 함께 시작된다. 법 앞에 평등할 권리가 아닌, 사랑 앞에 모든 이가 평등할 권리를, 즉 트랜스 젠더건, 동성애자건, 비혼주의자건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사랑하는 연인과는 수평적인 권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모두가 가지고 있는가가 진정한 민주사회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다. 나는 '진짜' 연애를 할 준비가 된 민주시민인가?

"친밀성의 가능성은 바로 민주주의의 약속을 의미한다...우리는 개인생활의 민주적 질서를 위해 어떠한 윤리적 기본틀이 발전할 것인지 그려볼 수 있다...자율적 개인은 타인을 똑같은 자율적 개인으로 대우할 수 있으며 또한 각자의 잠재성 계발이 결코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강압적 권력을 수평적인 의사소통으로...상대방에게 신임할 만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곧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받는 것이다."(책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친밀성의 구조변동', 앤서니 기든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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