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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에게 '설 기차표 예매'가 더더욱 힘든 사연

10일 새벽 5시50분, 직장인 하아무개(37)씨는 마음을 가다듬고 고속철도(KTX) 설 승차권 예매를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이날부터 이틀간 코레일은 올해 설 기차표를 인터넷과 현장에서 미리 판매한다. 전체 표의 70%가 걸린 인터넷 예매는 ‘전국민 수강신청’으로 불릴 만큼 ‘정확한 클릭’과 ‘신속한 입력’을 요구한다. 한순간의 실수로 대기순번이 수만번대로 밀려나곤 하기 때문이다. 예매가 시작되는 오전 6시 정각, 하씨는 고속철도 누리집의 ‘설 승차권 예약’ 버튼을 눌렀다. 대기번호를 받고 기다렸지만 오전 7시 전에 구하려던 시간대의 부산행 표가 모두 팔려버렸다. 결국 하씨는 회사에 반차를 내고 현장 판매용 표를 구하러 용산역으로 출발했다. 운이 좋아 하씨가 대기번호 1번을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하씨는 “그래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씨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 이상의 글씨만 실눈 뜨고 읽을 수 있는 저시력 장애인이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하씨는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갖다댄 채, 시각장애인용 음성 프로그램이 읽어주는 내용을 들으며 화면을 해독해야 한다. 코레일 명절 표 예매시스템은 1인당 최대 접속 시간이 3분이다. 대기번호 1번을 받았다 해도 하씨가 3분 안에 승차인원 정보와 열차 출발·도착 장소, 시간 등을 모두 읽어내기 쉽지 않다. 하씨는 “오직 음성에만 의존해 예약해야 하는 전맹 시각장애인은 물론, 저 같은 저시력 장애인에게도 ‘3분’은 버거운 시간”이라며 “전맹 시각장애인들은 명절 기차표 예매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고향행을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12일 올해 설 기차표 예매가 시작되는 수서발 고속철도(SRT) 누리집의 예약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날 오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도움을 받아 코레일 설 승차권 예매 누리집을 음성 프로그램에 의존해 예약해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3분’은 턱없이 짧았다. 탭(tab)키와 방향키를 써서 항목을 넘길 때마다 어떤 항목인지 일일이 음성으로 설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장애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동등한 ‘웹 접근성’이 보장돼야 하지만, 이를 준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김훈 정책연구원은 “코레일이 명절 예매용으로 임시로 만든 누리집은 시간 제한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용 음성 프로그램이 모든 정보를 읽어내지도 못해 웹 접근성 지침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시각장애인을 위해 200~300장 정도를 현장 또는 전화구매할 수 있도록 할당하는 방법도 있지만 역차별 논란이 일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시각장애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적정 시간을 추가로 제공하는 등 시스템을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표를 사전에 할당하는 방식에 대해선 “여러 의견을 수렴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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