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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뒤집힌 세월호'를 보고도 4시간 동안 관저에 있었다

  • 원성윤
  • 입력 2017.01.11 04:54
  • 수정 2017.01.11 04:56
ⓒ한겨레

이 답변서를 내놓는 데 1001일이 걸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석명 요구에 따라 10일 내놓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은 “보고서를 받아 검토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 관저 집무실 근무를 마음먹었다는 박 대통령은, 배가 완전히 뒤집혀 가라앉은 사진을 보고받은 뒤에도 4시간 가까이 관저를 벗어나지 않고 “보고서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청와대 참모들이 대면 보고 대신 서면으로 올렸다는 10여차례 보고서를 실제 박 대통령이 읽었는지는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이날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지난 3년 동안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국회 국정조사특위, 감사원,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등에서 공식 확인된 사실 관계조차 편의적으로 무시하고 짜맞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헌재는 “기억을 살려 당일 행적을 밝히라고 했는데 답변서가 그에 못 미친다. 세월호 사건 최초 인지 시점 등을 좀더 밝혀달라”며 사실상 퇴짜를 놓았다.

■ 보고서는 있는데 실제 검토는?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을 통해 자신의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하는 헌재에 A4 용지 16쪽 분량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 중 8쪽에 걸쳐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53분부터 오후 5시30분 사이에 자신이 했다는 33개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기재했다.

박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가기 위해 ‘올림머리 손질’(오후 3시35분)을 하기 직전까지의 26개 행적 중 “보고서를 받아 검토했다”는 내용은 무려 14개(세월호 관련 11개)에 달한다.

그러나 답변서에는 보고서를 한줄로 축약한 내용들만 있을 뿐 박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를 했는지는 담기지 않았다. 게다가 박 대통령 쪽은 14개 보고서 중 3개만을 증빙자료로 첨부했다.

박 대통령은 점심시간대인 낮 12시50분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의 기초연금 관련 통화 기록은 있다고 했다. 반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는 오전과 오후 7차례 통화에서 침몰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증명할 통화 기록은 누락했다. 정작 제일 중요한 자료는 빼놓은 것이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김 실장과의 통화 기록을 보강해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 박 대통령 “당일 오전 10시에야 참사 보고 받아”

참사 당일 <와이티엔>(YTN)은 오전 9시19분 첫 속보를 낸다. 이어 모든 방송이 이를 받아 속보를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에야 관련 보고서를 처음 받았다는 기존 입장을 답변서에서 반복했다. 국민들도 아는 내용을 41분이 지나서야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구조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언론의 오보”를 꼽았다. ‘전원 구조’라는 보도만 믿다가 대응이 늦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전 10시17분 이미 세월호 선체는 108도 이상 기울었고 10시30분 침몰했다.

방송들은 이런 장면들을 실시간 보도하고 있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오전 11시20분에 받아 검토했다는 보고서에는 이미 선수만 남기고 모두 잠긴 세월호 선체 사진과 함께 “오전 11시 현재 474명 중 161명 구조” 등 상황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오후 2시50분에야 구조 인원 집계가 틀렸다는 사실을 전화로 보고받고 부랴부랴 중대본 방문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관

저 식당에도 있다는 텔레비전은 유독 관저 집무실에만 없었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만 나서면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을 하루 종일 보지 않다가 “오보 탓”을 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진성 재판관은 “오전 10시 전에 텔레비전으로 (세월호 침몰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밝혀주기 바란다”고 했다.

■ 감사원 조사도 무시한 오류투성이 답변

박 대통령 쪽은 오전 10시30분 “박 대통령이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 “당시 해경은 10시24분 이미 특공대를 투입했고, 세월호가 기울어져 승객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해경청장에 대한 지시 내용을 브리핑했다”고 했다.

그러나 감사원 보고 등을 보면 자발적으로 출동한 해경특공대는 오전 11시35분, 출동 지시를 받은 목포122해양경찰구조대는 낮 12시15분에야 사고 해역에 도착하지만 아무런 구조 활동도 하지 못했다. 오후 1시에 최초 투입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국가기관 등이 밝혀낸 사실관계조차 청와대는 3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특공대 투입을 전화로 지시했다고 하면서도 이 역시 통화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미 2014년 국회 국정조사특위 등에서 “박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는 시간과 민경욱 대변인이 이런 지시 내용을 브리핑한 시간이 어떻게 겹칠 수 있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청와대는 여전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모임인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박 대통령의 거짓말을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다. 헌재는 즉각 탄핵을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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