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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개의 반대 댓글이 뜻하는 것

지난해 11월 10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 등 17인의 국회의원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법에 따라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입법예고 되었는데, 여기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무려 1,073개의 반대 의견이 달린 것.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다른 개정안들에 단 한 개의 의견도 달리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뜨거운 반응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1,073개의 의견들이 모두 11월 28일 하루에 올라왔고, 그 내용들도 '복사+붙여넣기' 한 듯 비슷하다는 것이다.

  • 임자운
  • 입력 2017.01.11 05:40
  • 수정 2018.01.12 14:12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10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 등 17인의 국회의원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법에 따라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입법예고 되었는데, 여기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무려 1,073개의 반대 의견이 달린 것.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다른 개정안들(10월 31일 발의된 산안법 개정안, 10월 28일 발의된 산안법 개정안 등)에 단 한 개의 의견도 달리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뜨거운 반응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1,073개의 의견들이 모두 11월 28일 하루에 올라왔고, 그 내용들도 '복사+붙여넣기' 한 듯 비슷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반대 여론을 조작하였다는 추측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그 누군가를 짐작하는 일도 전혀 어렵지 않다.

필자는 이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었다. 시민단체 '반올림'의 활동가이자 변호사로서 '삼성반도체 직업병 참사'와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고민해 왔고, 그 결론에 이른 한가지를 입법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바로 '노동자 알권리'다. 그래서 필자는 이 개정안을 '노동자 알권리법'이라 부른다.

'노동자 알권리법'이란?

골자는 이렇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가령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공정안전보고서' 등이다. 이 개정안은 이러한 자료들을 '안전보건자료'라 통칭하며, 고용노동부가 이를 장기간 통합적으로 보관하도록 하였고, 해당 사업장의 전ㆍ현직 노동자가 요청할 경우 이를 열람하게 하도록 하였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반도체 공장에서처럼 온갖 화학제품들을 취급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은 각 제품의 성분과 유해성이 어떠하고(물질안전보건자료), 각 유해성분들이 공장 안에서 얼마나 노출되는지(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 사업주가 안전보건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안전보건진단 보고서) 등을 당연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직업병 피해를 주장하며 과거의 업무환경을 규명하고자 하는 '전직' 노동자들에게도 관련 자료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에게는 이토록 당연한 '알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사업주에게는 이 자료들 중 일부를 공장에 비치하거나 현직 노동자들에게 공개해야 할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의무가 있지만, 그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공개 대상이 되는 정보도 제한적이다. '전직' 노동자들에게는 이 자료들에 대한 아무런 접근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하여도 사업주의 영업비밀 주장에 따라 거부되기 일쑤였고, 산재소송 중에 법원이 자료를 요청해도 회사와 노동부는 온갖 이유를 들어 자료제출을 거부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이 자료들을 여러 산하기관에 산발적으로 보관해 왔고, 각 자료의 보관 '기간'을 물으면 "정해진 규정은 없다" 따위의 답변을 버젓이 했다.

알 수 없는 위험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사업장의 안전보건상 위험에 관한 자료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에게는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라는 것이 무색했다. 사업주에게 쾌적한 업무환경의 조성을 요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기도 어려웠다. 이미 직업병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도 보상을 받기 어려웠다. 작년 초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했던 '휴대폰 공장 노동자들의 실명 사태'와 10년이 되도록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반도체 직업병 참사'의 배경에는 이러한 알권리의 문제가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제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여 고용노동부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에 대해서 만이라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개정안이 발의는 되었지만 아직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조직적이고, 노골적인 반대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1,073개의 댓글은 조작된 여론이다. 그 내용이 창의적일 리 없다. 아무 근거 없이 "강력 반대", "절대 반대"만 외치거나, 아래와 같은 반대 사유들을 수차례 복제해 놓았을 뿐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의 내용 중 상당부분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그 회사의 기밀 같은 것까지 모두 열람하게 하는 것은 법률 남용이다."

"근로자의 알권리가 회사 측의 중요한 정보보다 앞설 수는 없다."

(스스로 무엇을 반대하는지 알고는 있을까 싶다만 ... 굳이 반박을 하자면, 이 개정안에는 회사의 정당한 영업비밀은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1,073개의 반대 댓글이 뜻하는 것은 분명하다. 저들은 아직도 감출 게 많고, 그만큼 노동자들은 알아야 할 게 많다. 사람들이 죽고 병든 문제를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들 간의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추려는 자와 들춰내려는 자들 간의 싸움이 된다. 어느덧 1000일이 지난 세월호 참사가 그러하고,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반도체 직업병 참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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