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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밀수품 4가지

밀수의 역사는 사실상 무역과 함께 시작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가가 특정 품목에 대한 무역을 '금지'한 그 순간부터 밀수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왔다. 법과 범죄가 한 쌍인 것처럼 무역과 밀수도 사실상 그렇게 짝을 이루어 진행되어 왔다. 특히 어떤 밀수는 특정한 순간 업자의 이윤을 넘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바로 그 역사를 바꾼 밀수품 4가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쭉 읽다 보면 역사의 진행은 개개인의 선악 의지와는 별개로 진행된다는 생각을 품을지도 모른다.

1. 금화

목적을 위해서라면 때로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폴레옹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폴레옹은 영국의 밀수꾼들을 '끔찍한 인간들'이라고 불렀지만, 1811년 이 '끔찍한 인간들'이 합법적으로 밀수를 할 수 있도록 그라블린에 '밀수 도시'를 세워준다. 이유는 영국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대규모 용병 부대에 줘야 하는 급료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나폴레옹은 영국의 기니 금화로 이를 지급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통해 영국의 통화 유출을 조장해 경제 위기를 일으키고자 했다. 그래서 영국의 금화 밀수꾼들을 프랑스의 한 도시에 '초청'해 모아놓고 그들이 밀수한 기니 금화를 하나당 30실링씩 주고 사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밀수꾼들이 그 와중에 또 몰래 '계약 외의 밀수'를 행했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으로 금값이 오르자 밀수꾼들은 금화 일부를 빼돌려 그라블린 말고도 암스테르담과 릴 등지에 팔았고, 그라블린에서도 나폴레옹에게 전부를 팔지 않고 프랑스 내에 입점해 있던 포르투갈 및 스페인 은행에 또 일부를 팔았다. 그리고 이들 은행에 흘러간 기니 금화는 결국 지폐로 교환되어 나폴레옹 군대와 싸우던 영국과 스페인 군대의 지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 '미친 개는 미친 개로 잡는다.'는 나폴레옹 나름의 똘똘한 전략이었지만, 그 미친 개한테 자신이 물릴 가능성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흥미롭지만, 나폴레옹의 금화 중 일부가 최종적으로 도착했던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장소와 비교하면 별것 아니다. 이 거래는 본질적으로 반 정도만 합법적이었기 때문에 밀수의 속성은 고스란히 갖고 있어서 모든 금화가 황제의 재정 후원자들 금고까지 도착하지는 못했다...나폴레옹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긁어모은 기니 중 상당수가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프랑스에 있던 포르투갈 및 스페인 은행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이 금화는 지폐로 교환된 다음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폴레옹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던 영국과 스페인 군대의 지원을 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었던 것이다." (책 '밀수 이야기', 사이먼 하비 저)

2. 아편

양귀비에서 추출한 마약인 아편은 19세기 청나라를 망가뜨리고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청나라에서 차와 도자기를 대규모로 수입했지만 청나라의 거절로 공업용 제품을 수출할 수 없었던 영국은 대량의 은 유출을 경험하게 된다. 위기감을 느낀 영국동인도회사는 영국의 면직물을 수입할 은이 필요했던 인도에서 양귀비를 재배해 아편을 만들어 청나라에 파는 삼각무역을 통해 무역손실을 만회해 나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청나라가 금지한 불법 무역이었지만 영국인 중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1840년 청나라엔 약 1000만 명 정도의 아편 중독자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무역갈등이 국가간 갈등으로 확장되어 영국과 청나라 간에 벌였던 전쟁이 바로 1,2차 아편 전쟁이다. 이 결과로 맺은 1858년 텐진 조약을 통해 영국은 결국 청나라가 관세를 매겨 수입하는 상품 중에 아편을 포함시켜 아편을 '합법적인 교역 물품'으로 만들어버린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건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벌어졌던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은 이처럼 하나의 밀수품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두 번째 전쟁은 보다 국제적인 성격을 띠었다. 프랑스와 미국 또한 아편 밀수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지만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사수했다...1858년 6월 3일 엘진은 텐진 조약에 서명했다...이 조약에 따라 중국이 수입하는 모든 상품에는 5퍼센트의 관세가 붙게 됐으며 이 상품에는 아편도 포함되어 있어...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이제는 더 이상 밀수가 아니었다...영국은 중국에 대해 다른 상품의 수출도 강요했다. 그 상품이란 것이 맨체스터산 섬유 따위인데 '실크의 나라'를 향한 상스러운 모욕 행위였다...영광스러운 동인도회사의 아편 사업은 정부가 후원하는 밀수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정부 권력을 밀수를 통해 투영하는 이 모델은 이후로도 계속 번성해나갔다." (책 '밀수 이야기', 사이먼 하비 저)

3. 헤로인

헤로인은 양귀비에서 정제한 아편을 한 번 더 정제해 만든 모르핀을 통해 만들어낸 매우 치명적인 마약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교역이 엄격히 금지된다. 하지만, 국가가 극심한 혼돈 상태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1960년대 라오스처럼 말이다.

당시 라오스는 왕립 라오스군 장교 방 파오(Vang Pao)가 자신이 속한 부족이었던 몽 족을 결합해 공산주의자들과 내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미국 CIA는 방 파오와 그의 몽족 군대들을 후원했는데, 그들의 협력을 안정적으로 끌어내며 전투에만 전념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결국 CIA는 애초 그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지원하는 용도로 쓰였던 에어아메리카 비행기들이 방 파오의 군대가 만들 헤로인 원료인 아편을 옮기는 '수송도구'로 활용되는 걸 묵인해준다. 미국 정부의 자원이 라오스 일개 장교의 '마약 수송책'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때 옮겨진 마약은 주로 남베트남으로 흘러들어가 미군 병사 약 3만 명을 헤로인 중독자로 만들어버린다(책 '리아의 나라', 앤 패디먼 저). '정부가 후원하는 밀수' 모델은 19세기가 아닌 20세기에도 계속 이어졌던 셈이다.

"전사들에게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몽 족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주식인 쌀을 에어아메리카에 의존했다. 물자 공급과 멀리 흩어져 있는 부족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작전으로 항공기들이 멀리 나가야 했지만, 바꿔 말하면 아편을 실어올 수 있는 빈 항공기들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에어아메리카의 항공기들은 분명히 수확물을 운반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했으며...1965년과 1971년 사이에 에어아메리카가 아편을 실어 날랐으며, 대량 판매 때에도 운송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책 '밀수 이야기', 사이먼 하비 저)

4, 금서

그렇다고 해서 밀수가 꼭 끔찍한 결과만을 가져왔던 건 아니다. 물론 밀수꾼들이 결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유통시키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밀수 품목이 하나 있다. '금서'다.

혁명 전야의 시기, 스위스에서 볼테르가 쓴 ‘철학 사전’과 ‘캉디드’를 들고 쥐라(Jura) 산맥을 건너와 프랑스에 밀반입해 유통시켰던 건 다름 아닌 밀수꾼들이었다. 또 라틴 아메리카에선 독립 전쟁의 시기 영국인 인쇄업자 루돌프 애커먼(Rudolph Ackermann)이 멕시코에서 살며 사상교육에 필요한 정치 서적들을 밀수해 대량으로 유통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들 중 일부에게, 혹은 그들의 동기 중 일부분에 고귀한 목적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대량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행해진 금서 밀수엔 분명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경제적 동기가 지배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밀수의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다.

"...밀수꾼은 밑바닥 인생들이다. 이것이 19세기 자유무역을 반대한 사람들 대부분이 갖고 있던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관점과 반대로 문학에서는 새로운 자유방임주의가 나타나 사상까지도 자유롭게 흘러 다니게 됐고, 그 흐름이 끊기면 밀수라는 방법이 동원됐다. 밀수가 가진 두 얼굴이다...그렇다면 이들은 혁명적인 밀수꾼들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돈벌이 수단에 얻어 걸린 우연이었을까? 이 두 가지 동기는 상호배타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까?...몇 가지는 명확하다. 밀수는 효율적인 행위이며 물건이든 생각이든 수요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는 모험적인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책 '밀수 이야기', 사이먼 하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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