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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투자가 워런 버핏에게도 스승이 있었다

사람이 변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독서, 글쓰기, 여행 등등.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의 의지와 비례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 성과가 올라간다. 그런데 변화시키는 방법 중 스승은 그렇지 않다. 상당 부분 운이 작용한다. 스승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그렇다. 물론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스승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 후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그리고는 스승 실력 이상으로 제자가 성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주식 투자의 거물이자 가치투자자의 상징 워런 버핏도 그러했다. 그 역시 좋은 스승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 워런 버핏은 어떤 과정을 거쳐 스승을 만나고 배운 후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켜나갔을까?

1. 워런 버핏은 자신의 스승을 직접 찾아 나섰다.

“하버드 낙방 후 그는 다른 대학원을 알아보던 중에 컬럼비아 대학의 소개 책자를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과 데이비드 도드(David L. Dodd). 어린 시절 청년은 두 사람이 함께 쓴 ‘증권 분석’을 읽은 적이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감명을 받기도 했다. …. 이제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컬럼비아 대학으로 가서 그레이엄과 도드에게 배우고 싶었다. 특히 자신이 숭앙해 온 가치 투자(Value Investing)의 대가 그레이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 일반적인 지원서와 달리 사적인 내용을 담은 지원서가 효과가 있었는지 도드는 마감 시한을 넘기고 면접도 보지 않은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합격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버드와 달리 도드와 그레이엄의 선발 기준이 사회 지도자가 아닌 투자 전문가 양성이었다는 점이다.” (책 ‘위대한 멈춤’, 박승오, 홍승완 저)

스승을 우연히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수도 있다. 워런 버핏이 그런 경우다. 자기에게 맞는 스승을 찾아가서 그를 믿고 따를 기회를 잡으면 많은 것을 배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워런 버핏은 입학 원서 기한을 넘겼음에도 합격이 되었다. 워낙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스승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의 수제자가 되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버핏은 그토록 고대하던 가치투자의 거장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났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는 그레이엄의 수업에 푹 빠졌다. 스승의 ‘증권 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고, 수업 중에 그레이엄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거의 매번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 스승을 ‘숭배’한 그는 학점을 낮게 주기로 유명한 그레이엄이 가르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이런 성적은 그레이엄이 가르친 학생 가운데 버핏이 유일했다. 그레이엄의 수제자가 된 것이다. 버핏은 스승의 책과 강의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스승을 폭넓게 연구했다. …. 그레이엄이 보험회사 가이코(GEICO)의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승이 회장인 회사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1951년 초 워싱턴에 위치한 가이코 본사를 찾아 가서 경비가 열어 줄 때까지 문을 두드렸다.” (책 ‘위대한 멈춤’, 박승오, 홍승완 저)

좋은 스승을 만나기만 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최대한 열심히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 심지어 워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 그가 회장으로 있는 보험회사까지 찾아갔다. 결국 그 회사에서 임원까지 만나 그 회사의 가치에 대해 이것 저것을 물어본 후 투자까지 한다. 적극적인 학생이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회사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스승은 들었을 것이다. 어떤 스승이라도 그런 학생에게 더욱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3. 스승과 함께 일하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버핏은 스승에게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스승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레이엄은 동료인 제리 뉴먼(Jerry Newman)과 함께 투자 회사 그레이엄-뉴먼을 운영하고 있었다. …. 마침내 그는 경영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그레이엄에게 스승의 회사에서 무보수로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 하지만 스승은 유대인 채용 원칙을 들어 거절했다. 유대인인 그레이엄은 인종차별로 인해 금융권 취업이 어려운 유대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회사에서는 유대인만 채용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 1951년 버핏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고향 오마하로 돌아왔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의 주식 중개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1년여의 적응기를 거치며 버핏은 능력 있는 주식 중개인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 버핏은 주식 중개와 투자 강의를 하며 그레이엄의 책을 다시 정독했다. 책을 읽을수록 스승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주식 중개인이 아닌 전문 투자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책 ‘위대한 멈춤’, 박승오, 홍승완 저)

스승의 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으나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고향으로 가서 관련 분야에 종사하며 실력을 부지런히 쌓았다. 초반에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모두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다. 주식 중개인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스승과 같은 투자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차근히 키워나갔다.

4. 스승과 함께 일하면서 독자적인 투자 방식을 만들었다.

“1954년 7월 드디어 고대하던 소식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레이엄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버핏은 연봉이나 근무 조건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승낙했다. 그것도 모자라 정식 출근일보다 한 달 먼저 출근했다. …. 그는 같은 해 12월 아들이 태어나자 아들의 이름을 하워드 그레이엄 버핏이라고 지었다. 아들의 중간 이름에 스승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그가 스승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그레이엄의 회사에서 버핏은 일반적인 투자 업무 외에도 국제 증권 및 외환 시장에 투자하는 일을 하며 식견을 넓혀 나갔다. 오래지 않아 그는 투자 잠재력을 발휘하며 눈부신 활약을 거듭했다. …. 입사한 지 1년여가 지날 무렵부터 그레이엄은 그를 제자나 직원이 아닌 ‘잠재적 동업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 그레이엄은 동업자인 뉴먼도 그와 함께 은퇴할 예정이어서 뉴먼의 아들과 버핏이 함께 회사를 운영해 주기를 바랐다. …. 하지만 버핏은 심사숙고 끝에 스승의 제안을 거절했다. …. ‘위대한 스승’ 그레이엄과 함께 일할 수 없다면 이 회사에서 일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 약 2년 동안 스승에게 배울 것은 이미 다 배운 버핏이었다. …. 그동안 스승에게 배우는 한편으로 독학으로 자기 고유의 투자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 온 터였다. …. 예컨대 그레이엄은 분산 투자를 엄격하게 지키는 데 비해 버핏은 충분히 저평가된 회사라면 ‘많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집중 투자가 분산 투자보다 수익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봤다.” (책 ‘위대한 멈춤’, 박승오, 홍승완 저)

지성이면 감천이다. 스승에게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스승과 함께 하기로 워런 버핏은 결정했다. 워낙 준비가 잘 되어 있었기에 단시간에 벤저민 그레이엄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회사 내에서 받았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스승을 뛰어 넘는다. 자기만의 투자 방법을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스승이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자신의 고향 오마하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투자 조합 버핏 어소시에이츠(Buffett Associates)를 결성한다.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여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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