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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길 vs 안희정의 길, 그리고 문재인의 투쟁

'유연한 진보정당'을 향한 유시민의 꿈은 패배로 점철되었다. 결국 2012년 12월 경기동부연합 일파를 제외한 나머지 정파가 통합진보당을 떠나 정의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고, 유시민은 창당 직후인 2013년 2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고 선언하며 정의당 당원 자격만 남긴 채 현실 정치를 떠났다. 안희정은 유시민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안희정은 2007년 열린우리당 해체,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에도 당을 떠나지 않았다. 너도 나도 당을 떠나고, 정치를 떠날 때 한 자리를 지켰다.

  • 권순욱
  • 입력 2017.01.06 12:56
  • 수정 2018.01.07 14:12

유시민,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렸다

1. 유시민의 길

유시민은 2007년 해체 위기에 몰린 열린우리당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노무현을 흔들 때 개혁당을 만들어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유시민이다. 개혁당은 작지만 열린우리당의 한 축이었다. 노무현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해찬, 한명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한길이 중도개혁신당을 만들어 탈당하고, 이어 정동영, 천정배, 김두관 등이 잇따라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졌다. 신당 경선에서는 정동영이 대통령 후보로 당선됐다.

2007년 12월 정동영은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최대인 532만표 차이로 이명박한테 패배했다. 야권을 억지로 하나로 모아봐야 후보가 허약하거나 급조된 정당으로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음이 증명됐다. 유시민은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정당인으로 정동영 후보 선거운동을 열심히 뛰었다. 조직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했다. 이어 선거가 끝난 직후인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했다. 그 해 4월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낙선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해인 2009년 11월 국민참여당이 창당됐고, 뒤에 합류한 유시민은 그 중심이 되었다. 그렇게 유시민은 정치적 동지였던 이해찬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중심인 민주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질서를 꿈꾸며 자신의 길을 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야권 후보단일화에서 민주당의 김진표를 이기고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지만 한나라당 김문수에게 아깝게 패배했다. 이어 2011년 4월에는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를 야권단일후보로 만들었지만 김태호에게 2%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유연한 진보정당'을 향한 유시민의 꿈은 패배로 점철되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시민은 2011년 11월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등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든다. 소수 진보야당의 통합이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부정경선 논란이 불거지며 파탄의 길을 걸었다.

결국 2012년 12월 경기동부연합 일파를 제외한 나머지 정파가 통합진보당을 떠나 정의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고, 유시민은 창당 직후인 2013년 2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고 선언하며 정의당 당원 자격만 남긴 채 현실 정치를 떠났다. 이후 책을 집필하는 '작가 유시민'으로, 그리고 JTBC 썰전의 주요 출연자로 활동 중이다.

정치인 유시민은 실패했다.

2. 안희정의 길

안희정은 유시민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이 승리했지만 안희정은불법대선자금의 책임을 지고 교도소를 향했다. 이후 참여정부 기간 내내 노무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까봐 청와대 근처에도 가지 않은 채 야인으로 지냈다. 그러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만들며 자신의 정치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노무현의 동지, 보좌관으로만 지냈던 안희정이 자기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안희정은 2007년 열린우리당 해체,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에도 당을 떠나지 않았다. 김한길을 비롯해서 지금 국민의당으로 건너간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이 당을 쥐고 흔들 때에도, 정당민주주의가 파괴되어 너도 나도 당을 떠나고, 정치를 떠날 때 한 자리를 지켰다. 다 찢어진 깃발을 지키고 있었다.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인제 전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게룡금산에 출사표를 냈지만 개혁공천의 미명 아래 경선도 치러보지 못하고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안희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했다. 문재인을 비롯한 소위 친노그룹은 안희정의 최고위원 출마를 말렸다. 통합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을 파괴하고 만들어진 정당이었고, 노무현을 버린 정당이었다. 역사를 잇는다고 자부할 수 없는 정당이었다. 친노가 설 자리도 없었다. 하지만 안희정은 누구라도 최고위원에 출마해서 김대중-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친노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고위원에 출마했고, 그 난장판 속에서 묵묵히 뒷정리를 하며 '나의 정당 민주당'을 향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안희정은 기회를 얻었다. 충남도지사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그리고이겼다. 이후 새누리당이 지방의회 2/3를 장악하고 있는 속에서도 무난하게 도정을 이끌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충남도민들에게 '우리 희정이'라고 표현되는, 그런 '사랑 받는 젊은 도지사'가 되었다.

2017 안희정은 야권의 가장 젊은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3. 문재인의 투쟁

사실 안희정은 당내 투쟁보다는 승복의 정치인이다. 당당하게 승부하되 결과에 승복하는 정당 정치인이다. 하지만 안희정은 오늘날 질서있게 변모한 더불어민주당을 만드는 데 기여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가 최고위원으로 활동한 2008년과 2010년은 비극의 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했다. 2010년 이후에는 충남도지사로 회오리 몰아치고 당 깃발이 찢어지는 그 혼란스러운 민주당을 떠나있었다.

정당민주주의라는 가치 하나를 보고 싸웠던 유시민이 정치를 떠났지만, 안희정은 그 질서가 어떻든 과정으로 이해하며 정치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직업 정치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떻든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만든 것은 문재인이다. 문재인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어 같은 해 12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 박근혜와 싸웠지만 10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후 민주통합당은 또다시 지리멸렬한 정당의 고질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2013년 11월 안철수 의원이 만든 '새정치연합'이 창당되자 김한길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는 합당 작업에 들어갔다. 이어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다. 당명을 짓는 과정에서도 쓸데없는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는가하면, 그 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선거 공천페지를 놓고도 옥신각신했다.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담아내지 못하고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이어 2014년 7월에 열린 15석이나 걸린 재보궐선거에서도 호남지역을 포함해 4석을 얻는 데 그치며,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에게 호남 지역구를 내주며 패배했다. 이로 인해 김한길, 안철수는 공동대표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어 2015년 2월 대선 패배 이후 조용한 행보를 걷던 문재인이 당 대표 선거에 나섰다. 상대는 박지원이었다. 근소한 차이로 문재인이 이겼다. 압도적 승리를 하지 못했다. 이후 문재인은 끊임없는 당 대표 흔들기와 싸워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은 흔들리지 않고 정당질서를 잡아나갔다. 소위 비문, 반문의 흔들기가 통하지 않았다. 결국 박지원을 중심으로 비문과 반문은 탈당하기 시작했고, 문재인은 2015년 12월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는 것과 동시에 탈당한 사람들의 빈자리에 표창원, 김병관, 김병기, 조응천, 손혜원, 박주민 등 새로운 인물로 채웠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후 추미애 당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체제로 질서있는 정당의 모습을 갖추어 지금에 이르렀다. 최근 개헌보고서와 관련해 박용진, 김병욱 등 몇몇 정치인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언론의 왜곡보도를 근거로 해당행위에 가까운 경거망동을 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비교적 큰 동요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질서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고 질서있고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갔다. 그 결과 지난 총선에서 20%대의 저조한 득표율에 불과했던 당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하며 40%를 넘나들고 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열린우리당의 모습과 닮았으면서 다르다. 전국정당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고, 다양한 정파가 어우러져 있는 점이 닯았다. 그러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던 열린우리당과는 다르다. 근거도 박약한 친문패권주의 운운은 그냥 흘러들을 수준이다.

문재인은 바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만든 장본인이다.

4.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렸다

결과론일지도 모른다. 그때 왜 그랬냐고 따져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유시민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참여당을 창당한 것은 옳았다. 그러나 지금은 유시민의 길이 틀렸다. 아니 실패했으니 틀린 것이다. 지금은 틀렸다는 걸 인정만 하면 그만이다. 그때 옳았다고 지금의 초라한 결과를 미화할 필요도,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고집 피울 필요도 없다.

반대로 노무현을 배신한 민주당에 남아 있던 안희정의 길이 후져보이고 틀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유시민의 길에 따라 나선 이유다. 그러나 지금 안희정이 갔던 길, 문재인이 갔던 길이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역시 그냥 인정하면 된다.

나는 유시민을 따라 국민참여당 당원이 되었던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길은 성공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틀렸음을 이제는 인정한다.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게 아집이고 정신승리다. 눈을 크게 뜨고 한국 정치의 흐름을 봐야 한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이 열린우리당 시즌2가 되지 않는 데 힘을 쏟아야 할 시기다. 그것이 한국 정치를 발전시키는 행위다.

샛강으로 갔던 유시민도 함께 흐르는 큰 강 어귀 어딘가에 다다르고 있다고 믿는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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