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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신종 색깔론,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는 과거 색깔론의 시각적 영역을 넓히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동안 새누리당의 상징 색에 익숙한 나머지, 빨간색이 진부하게 여겨진 탓이었을까? 박근혜 정부는 색깔론에 검정색을 입혔다. 예술작품으로 치자면 형식적 변화를 꾀한 셈이다. 그뿐인가? 최근 교육계에는 '블루리스트'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하니, 빨간색과 검정색에 이어 파랑색에까지 이른 셈이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는 색깔론의 시각적 다양성을 일궈냈다. 그러나 창조경제의 긍지로 뭉친 이들의 창의성이 이 정도에서 멈출 리 없다. 형식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내용의 확장성을 통해 '신종 색깔론'을 완성시켰다.

  • 국민의제
  • 입력 2017.01.06 10:17
  • 수정 2018.01.07 14:12
ⓒ뉴스1

글 | 정연택(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한마디로 점입가경! 국정농단의 사태는 블록버스터 급 영화를 방불케 한다. 최근 주목되고 있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그렇다. 동원된 배우가 만 명에 이르고, 그 중 스타급으로 분류되는 인원만 9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 신기한 것은 영화는 실제로 존재하는데 각본을 쓴 자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중의 관심은 영화의 내용 보다 제작배경과 과정에 대해 쏠리고 있다. 흥행을 의도했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한술 더 떠서 이젠 영화감독조차 분명치 않다고 한다. 제작사와 투자사는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로 밝혀졌지만, 지금까지 조감독 정도만 드러났을 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동안 비밀리에 제작에 참여해 왔던 투자사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겠는가? 바로 국정원이다. 쟁쟁한 투자사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각 종 관영 블록버스터 급 영화 제작에 꼼꼼히 관여해 왔던 전력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덕분에 대중은 더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하튼 제작배경을 포함해 이 정도로 감정이입이 잘되는 영화는 보기 드믄 일이다. 현실 세계가 가상의 현실을 뛰어 넘는 초현실적 경험을 통해, 관객은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울 뿐이다.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 색깔론의 시각적 영역을 넓히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동안 새누리당의 상징 색에 익숙한 나머지, 빨간색이 진부하게 여겨진 탓이었을까? 박근혜 정부는 색깔론에 검정색을 입혔다. 예술작품으로 치자면 형식적 변화를 꾀한 셈이다. 그뿐인가? 최근 교육계에는 '블루리스트'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하니, 빨간색과 검정색에 이어 파랑색에까지 이른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처럼 탄핵국면에 빠져들지 않고 온 우주의 기운을 이어갔다면 화이트리스트, 엘로우리스트까지 만들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때 등장했던 오방색의 완결판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는 색깔론의 시각적 다양성을 일궈냈다. 그러나 창조경제의 긍지로 뭉친 이들의 창의성이 이 정도에서 멈출 리 없다. 형식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내용의 확장성을 통해 '신종 색깔론'을 완성시켰다.

색깔론의 탈정치화

과거 보수세력의 색깔론은 이념적 잣대에 빗대어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고 정권을 유지하는데 이용됐다. 그러나 신종 색깔론은 특정 세력의 이권추구를 위해서도 이용된다. 특정 세력의 이익에 방해되는 대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점잖게 표현하자면 '색깔론의 탈정치화'라고나 할까? 사적 이익이 정치적 명분을 우선하는 경우를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블랙리스트엔 일부 보수적 성향의 인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권추구를 위해선 좌우가 없다는 식일 게다. 방해가 된다면 곧바로 제거의 대상이 될 뿐이다. 아수라장인 셈이다. 길 잃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막장 드라마로 펼쳐지고 있는 꼴이다.

신종 색깔론은 정치적 대의명분보단 사적 차원에서의 보복성에 기대어 이뤄진다. 블랙리스트의 명단엔 지난 대통령 선출과정에서 상대 당의 후보 문재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명된 문화계 인사가 6,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담대함과 무모함에 기가 찰 지경이다. 최근 창궐한 조류인플루엔자(AI)에 대처하기 위한 '집단폐사' 조치가 연상되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비윤리적인 행태는 물론이고, 문화생태계의 근원적 교란을 통해 나타날 대한민국의 미래에 지속불가능성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인류는 물론이고 자연의 진화과정이 '종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동종 간의 교배는 결국 종의 다양성을 해치고 멸종에 이르게 된다. 이종 간의 교배가 유전적 형질을 강화시켜 생존력을 높여준다. 문화생태계도 예외가 아니다. 다양한 종의 문화적 형질이 상호 융합과정을 거치면서 문화능력(생산능력)과 문화체질(사고능력)을 강화시키는 가운데,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생존의 지속성이 보장된다. 그동안 그토록 정부가 주장한 '문화창조융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양이었으면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부터 먼저 존중했어야 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유전자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 마련에 주력했어야 한다. 관제에 의한 임의적 융합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일임을 알았어야 했다. 정부지원을 미끼로 문화예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부정했다. 융합이 아닌 분열을 조장한 셈이다.

오명을 씌우는 색깔론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블랙리스트로 인해 오염된 검정색을 본래의 의미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천자문의 시작을 이루는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검정색을 나타내는 '현'은 사실 불온한 뜻과는 거리가 멀다. 알다시피 검을 '현'은 하늘을 가리키고 누를 '황'은 땅를 의미한다. 하늘은 어두운 빛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엔 생명을 배태한,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 창조의 근원이기도 하다. 일상의 일탈을 강압하는 블랙리스트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검정색은 일상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이다. 세계적으로 선호하는 차량의 색상 중 두 번째를 차지하는 것이 검정색이란다. 더 이상 이런 검정색을 블랙리스트로 농단하는 정권이 다시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 어떤 색상에도 오명을 씌우는 색깔론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2017 정유년은 그 같은 과제를 풀어가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글 | 정연택

명지전문대학 도자전공 지도교수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서울시 문화관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버금이전'등과 같은 문화기획을 통해 시민공예가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공예의 생활화와 자립공생사회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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