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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게, 두려움과 함께

"예술 창조에 관한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며, 다른 하나는 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최상의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을 막고,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내가 나를 드러내는 순간, 작품의 미흡함만을 지적당할 것이라는 이 두려움은 언제 끝날까? 난 아직 부족하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변명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확신하건대 두려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 정새난슬
  • 입력 2017.01.06 06:12
  • 수정 2018.01.07 14:12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 기가 막힌 예술적 비전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새해는 다를 거야, 신년 창작 대기획'. 장르 구분 없이 찾아온 영감의 불씨는 가슴 언저리부터 타닥타닥 타기 시작해 온몸을 태워버릴 기세로 번져간다. 황홀하게, 기쁘게, 역시 난 조금쯤 천재였어, 자아도취 상태에 빠진 나는 전율하며 노트에 아이디어들을 적는다. 폭죽처럼 터지는 이미지, 멜로디, 문장 덕분에 자존감은 급상승하고 달콤한 피로감에 젖어 겨우 잠자리에 든다. 창작자의 새날을 기다리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어수선한 아침. 미지근한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아이의 머리를 빗긴다. 간신히 양 갈래로 묶어주고 도망 다니는 아이에게 옷을 입힌다. 간다, 안 간다, 만화 볼 거다, 과자 줄게 빨리 가자, 매일 반복되는 입씨름까지 끝내면 준비 완료. 어린이집 교실로 들어가는 딸의 뒤통수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소파에 쓰러져 에스엔에스(SNS)로 타인들의 삶을 구경하고 밀린 뉴스를 읽으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문득 감격스러웠던 새벽의 노트가 떠오른다. 자랑스러운 나만의 빛. 눈부신 원석들. 설레는 마음으로 천천히, 마구 휘갈겨 쓴 영감의 자취를 살핀다. 하지만 이럴 수가... 전부 유치해.

'빛? 내가 이따위 아이디어를 실천하면 세상에 빚을 지는 거지. 독특한 원석? 숱하게 깔린 자갈이다.' 패색 짙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명상을 시도하기로 한다. 실패한다. 자꾸 어디선가 나를 조롱하는 이들의 속삭임이 돌림노래로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니까 걔는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별로고, 잘하는 게 뭐래니, 글은 또 뭐 한다고 쓴다니.' 자학의 늪에 빠진 가련한 중생. 갑자기 종교가 간절하다. 삼류 창작자를 거두어 보살피는 '언젠가' 신이시여, 제 빈곤한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 모든 게 두렵습니다!

"예술 창조에 관한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며, 다른 하나는 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최상의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을 막고,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ART & FEAR〉, 데이비드 베일즈·테드 올랜드) 기본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되어야 하는 두려움은 매일 부지런히 내 발목을 잡으려고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달리고 싶은 창작의 열차를 멈추고 모든 탑승객들의 여권, 티켓, 짐짝을 뒤지며 '엉망인 걸 아느냐' 취조한다. 어설픈 작품으로 내 삶을 박살 낼지도 모른다며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가려내고자 혈안이 되어 모든 것을 검열한다. 반짝거리던 신년 창작 대기획은 기세가 꺾여 휘청거렸다. 내가 나를 드러내는 순간, 작품의 미흡함만을 지적당할 것이라는 이 두려움은 언제 끝날까? 난 아직 부족하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변명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확신하건대 두려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타협 혹은 불복종, 때마다 전술을 바꾸며 골치 아픈 두려움을 껴안고 뒹구는 것이다. 새해, 난 조금 더 뻔뻔해져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싸움은 이거 하나다, 두려움과 맞붙어 박살 나더라도 이 빠진 미소 지을 여유를 갖기. 오지 않는 님, '완벽'을 기다리지 않기. 끊임없이 시도하기. 나는 퍽 오래된 예술 새싹, 그러나 타격받을 권력, 실추될 명예도 없는 자유로운 자가 아닌가. 잃을 게 없으니 종종거릴 필요도 없다. 약속된 박수도, 호평도, 자기만족도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개꽃 봉오리만 한 기쁨, 잊을 만하면 간지럽게 태어나는 작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새해 창작 대 기획을 다시 손본다. 곁에 앉은 두려움이 잘 읽을 수 있도록 '뻔뻔하자, 2017년' 아주 크게 적는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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