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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 중심주의적 포르노에게 작별을 고하자

  • 김도훈
  • 입력 2017.01.06 05:57
  • 수정 2024.03.22 11:04

“나는 그를 텔레비전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그에게 반했다. 일정한 속도로 칼질을 하는, 부드럽게 반죽을 주무르는 그의 팔이 너무도 좋았다. 그가 칼을 든 것을 보고 나는 질투를 느꼈다. 나는 그의 손 아래의 빵 반죽이 되고 싶었다.” Foodie1이 익명으로 쓴 에로틱 단편 ‘나와 함께… 먹어 Eat With… Me’의 일부다.

상상해 보라: 바르셀로나의 어두운 부엌 안에서 카메라가 줌인한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공들여 꾸민, 촛불을 켜둔 식탁 앞에 앉아 있다. 앞치마를 두른 수염 난 남성 셰프가 스페인 어로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온갖 진미를 대접한다. 로스트 치킨, 정체를 알 수 없는 크림 등이다. 그녀는 천천히 호화로운 식사를 하고, 포크가 소용이 없을 때는 손을 쓴다. 셰프는 정성을 다해 식사를 도우며 그녀의 입안에 손을 넣기도 한다. 간략히 말하자면 식사 후에 그들은 굶주린 양 장난스러운 섹스를 한다. 방금 아주 맛있는 여러 코스로 구성된 식사를 친절하게 차려준 재능있는 셰프와 섹스를 한다면 응당 그럴 것이다.

Foodie1의 판타지는 바르셀로나의 페미니스트 성인 영화 제작자 에리카 러스트가 만든 크라우드소스 에로틱 프로젝트 X컨페션스에 의해 영상으로 구현되었다. Foodie1을 비롯해 전세계 여러 인터넷 사용자들이 X컨페션스에 성적 판타지 시나리오를 써냈다. 모든 제출 작품은 X컨페션스 웹사이트에 발표되며, 매달 러스트는 두 개를 골라 단편 영화화한다. 예술적 완성도와 섹스 어필 모두를 담은 이 영화들은 ‘성인 오락물’이라기보다 ‘성인 영화’에 더 가깝다.

러스트는 성인 영상물의 지형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X컨페션스를 만든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를 주고 싶어서였다. 느끼한 음악, 형편없는 소파, 우스꽝스러운 신음 소리 등의 진부하고 조잡한 요소가 없는 ‘진짜 섹스가 나오는 진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허핑턴 포스트에 말했다.

2013년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러스트는 가장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가장 공개적인 플랫폼인 인터넷으로 끌어냈다. 러스트는 작품 선정과 영화 제작 전체를 감독하고, 90%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직원들이 돕는다.

1977년에 에리카 할크비스트로 태어난 러스트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자랐다. 러스트는 스톡홀름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는 전설이 있다고 설명한다. 섹스가 집에서 논의하는 화제는 아니었지만, 러스트는 학교에서는 굉장히 생산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한다. 젠더에 따라 나뉘어 받으며, 학생들이 억제하지 못하는 호기심에 개방적으로 성숙하게 대응해주었다고 한다.

“나는 학교에서 모든 걸 배웠다. 학교에서 나이에 맞게 가르치는 성교육은 애무부터 합의, 존중, 감정까지 모든 걸 다 다루었다. 나는 섹스가 육체적 이상일 수 있다, 감정과 연결이 개입될 수 있다고 배웠다.”

지금까지도 섹스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런 정서는 러스트의 비젼에 큰 영향을 준다. 섹스가 육체의 감각에 대한 본능적 탐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러스트는 가지고 있다.

러스트는 십대 시절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찾다 처음으로 성인 잡지를 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연인’이 러스트가 처음으로 접한 에로틱한 컨텐츠였다.

“나의 눈을 띄워주는 경험이었다. 주인공은 섹스를 통해 성인이 되고, 색다른 러브 스토리다. 영화 전체가 그녀의 시각이다. 지적이고 모험심이 많은 여자 아이고, 피어나는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

러스트의 흥미를 끈 것은 주인공의 복잡함만은 아니었다. 열정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해주는 영화의 기교에도 매료되었다. 이 깨달음이 그녀의 영화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X컨페션스를 통해 만든 영화와 다른 영화들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뱀파이어가 나오든, 바이킹, 치어리더, 다른 차원에서 온 외계인들이 나오든, 러스트는 그들의 섹스를 섬세한 미학적 감각으로 묘사한다.

‘평행 차원 Parallel Dimensions‘이라는 X컨페션스의 단편은 딴 세상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SF 우주 속의 에로틱한 정글 짐을 떠올리게 하는 캔디 같은 색의 형체들이 있다. 두 여성이 가구처럼 꼼짝않고 누운 알몸 남성의 몸에 놓인 알록달록한 찰흙으로 만든 초밥을 먹는다. 그의 사타구니는 주디 시카고의 조각을 닮은 버자이너 같은 것에 덮여 있다. 두 여성은 함께 인간 테이블과 섹스를 하고, 남성은 여성들의 기쁨에서 자신의 기쁨을 얻는다는 게 명확히 보인다. 이 단편은 lovertoy라는 닉을 쓰는 X컨페션스 유저의 팬 픽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최근 내가 자꾸 떠올리게 되는 판타지가 있다. 내가 가구라고 상상해 본다 … 내 섹시한 주인이 사용하는 물건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흥분이 된다 … 사실 내가 그녀를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녀도 은밀하게 알고 있지만, 그녀는 나의 만족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그저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봉사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 평행 우주에서 나는 그녀의 테이블로만 존재한다.”

시각적으로 이 단편은 혁신적이며 도취적이다. 달콤한 색체 사용과 환상적 환경은 나체만큼이나 감각을 자극한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시청자의 감각에 쾌락적 경험을 선사한다.

성인 영화는 다른 모든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적 가치를 갖출 수 있고 또 갖춰야 한다. 그것이 러스트의 작업의 근본적 믿음 중 하나다.

‘사랑의 마녀 The Love Witch’의 감독 애나 빌러가 최근 허프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즐거운 영화 시청 경험에 있어 심미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물론 ‘즐거운’이다) 빌러는 “영화 그 자체가 일종의 석정 판타지이다 […] 관객들에게 건 주문과도 같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관객들을 홀리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러스트의 목표 중 하나는 카메라 앞에서 여성의 쾌감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예술적 디테일에 관심을 두고 여성 시청자들의 만족도 최대화하려 한다. 여성 시청자들은 텅 빈 방의 망가진 소파 위에서 강제로 절정에 이르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빌러는 ‘여성의 시선’이 나르시스틱한 시선이라고 설명하며, ‘영화 속의 여성들을 보며 그 여성을 따라하고 싶은’ 시선이라고 말한다. 러스트는 이러한 관점도 흥미롭다고 생각하지만, 러스트가 선호하는 여성의 시선의 정의는 ‘투명 Transparent’을 만든 질 솔로웨이의 생각에 더 가깝다.

러스트는 솔로웨이의 말을 인용하며 말한다. “’남성의 시선이란 무엇인가? 그건 거의 모든 것이다. 당신이 본 모든 것 전부다. TV 드라마, 모든 영화들...’ 그렇다면 반면 여성의 시선은 당신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든 것이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게 뭐가 있을까? 혹은 적어도 충분히 많이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체들이다. 다양한 민족, 체형, 연령, 젠더의 신체다. 진짜 섹스 같아 보이는 섹스, 어색하게 더듬거리고, 여기저기를 오가며 전희를 하고, 우연히 몸에서 소리가 나는 섹스다. 우리의 성적 열망을 ‘판타지’라고 부르게 하는 요소인 상상력과 괴상한 행동도 마찬가지다.

주류 포르노에는 다양성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다양함, 특이함, 다름을 우선시해야 포르노를 남근 중심주의적 진부함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이것은 영화 이론가 린다 윌리엄스가 자신의 책 ‘하드코어: 권력, 쾌감, ‘눈에 보이는 것의 광란’ Hard Core: Power, Pleasure, and the “Frenzy of the Visible”’에서 논한 바와도 비슷하다. 러스트에게 성인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영감을 처음으로 준 책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드코어 포르노가 남근 중심적인 것은 페니스가 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포르노는 페니스를 보여주며 ‘섹스’의 진실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알고, 가지고 있다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섹스가 남근이 스스로 생각하는 남근처럼 하나 뿐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섹스의 생리학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젠더를 반영한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남근보다 페니스를 공격하는 반 포르노 페미니즘은 남성 권력의 진정한 원천을 피하고 있다.” 윌리엄스의 글이다.

그러나 포르노가 단 한 가지였던 적은 없었다. 포르노가 단 하나였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포르노 전체를 다 아울러서(혹은 남근 중심적으로) 나쁜 포르노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포르노 교수 콘스턴스 펜리가 과거 허프포스트에 말했던 것처럼, “나는 ‘Pornography’라고 대문자 P로 포르노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늘 [소문자를 쓰고 복수형을 써서] ‘pornographies’라고 부른다. ‘주류 포르노’ 조차도 너무나 복잡하고 모순되며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걸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러스트가 보기에는 1980년대에 VHS 테이프가 널리 퍼지면서 포르노의 질이 떨어졌다. 갑자기 누구나 캠코더만 있으면 자신의 포르노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포르노는 산업화 및 상업화되면서 질이 떨어졌다.

“이걸 산업으로 본 수많은 남성들이 최저 비용을 들여 포르노를 찍기 시작했다.”

시간을 뒤로 돌려 우리가 포르노를 만들고 퍼뜨리며 소비하는 방식을 바꾼 인터넷의 보급을 보자. VHS 때문에 영화적 질이 크게 떨어졌다면, 인터넷은 반대의 효과가 있었다고 러스트는 주장한다. 디지털 세상에는 예전엔 자주 등장하지 않던 커플들, 신체들, 판타지들의 자리가 있었다.

“포르노 산업의 큰 부분은 아직도 성차별적이고 비하적이며 인종차별적 ‘섹스’를 보여주며 엄청난 돈을 번다. 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에서 다른 담론을 보여주는 새로운 제작자들이 있다. 그들은 돈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해방시켜주는 힘을 가진 성인 영화를 만들려 한다.”

러스트는 포르노를 보다 극단적인 실험의 방향으로 몰아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인터넷의 방대함을 이용하고, 에로틱한 판타지를 크라우드소싱해서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큼 포르노 촬영을 발전시키는 게 있을까?

X컨페션스 작업 외에도 러스트는 최근 관심을 가진 여성 영화 제작자들에게 에로틱한 영역 진출을 권하는 제안을 냈다. 러스트는 포르노는 아니라 할지라도 되도록이면 영화 제작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 여성의 눈과 마음으로 찍은 단편 영화 10편을 만드는 것을 돕겠다며 약 260,000달러의 예산을 제공하려 한다. 주도적인 위치를 맡은 여성들이 늘어나길 원하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성인 영화계에서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등 중심적인 역할을 여성들이 더 많이 맡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포르노 속의 쾌감에 대한 진정한 지배는 포르노의 제작과 보여지는 모습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데서 온다고 믿는다. 우리는 섹스에 긍정적인 노골적인 포르노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젊은이들과 미래 세대들이 섹스를 현실적이고 즐거운 방식으로 볼 수 있고 한 가지 시점에만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

X컨페션스 등의 여러 작업을 통해 러스트는 진부하고 낡은 남근 중심주의적 포르노에 작별을 고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여성들이 반드시 자기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자신의 관점을 보여주고 섹스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다. 여성의 시선은 평등한 사회에 필요하다. 그건 모든 젠더와 섹슈얼리티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Saying ‘Boy, Bye’ To Phallocentric Porn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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