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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미래,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우리는 부끄러우면서도 위험한 실상을 직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고지원평가에서 수차례 1위를 차지했던 이 콩쿠르는 2016년부터 국비 지원이 전격 중단되었다. 애초 콩쿠르를 처음 제안했고 13년간 주최자를 자임했던 경상남도는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2017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그뿐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는 윤이상평화재단이 명시되어 있으며,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윤이상 訪北(방북)'이라는 불가해한 메모가 적혀 있다.

  • 조은아
  • 입력 2017.01.06 12:23
  • 수정 2018.01.07 14:12
ⓒ한겨레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120분짜리 독주 프로그램과 협주곡을 준비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과제곡은 두말할 나위 없이 윤이상의 작품들이다. '5개의 피아노 소품'과 '인터루디움 A'를 1, 2차 본선에서 반드시 연주해야 하는데, 두 곡 모두 음악적 깊이와 테크닉의 구현에 있어 피아니스트에게는 거대한 준령과 같은 작품이다. 지난해 11월에 열렸던 이 국제적 경연에는 23개국에서 모두 173명이 참가해 열띤 경합을 벌였다. 이렇듯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신진 연주자들이 통영에서 열리는 이 국제콩쿠르를 통해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의 작품 세계를 치열하고도 웅숭깊이 단련한다.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에도 윤이상의 작품은 학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던 졸업 리사이틀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언젠가 러시아 친구가 윤이상의 악보를 펼쳐들고 자문을 해온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빽빽이 기보된 많은 음표들을 연주해야 하는데,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패시지에서 작곡가가 의도한 '정중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한글로 된 윤이상 관련 저서들을 찾아 그에게 번역해주었다. 해결의 실마리를 쥐었다며 다시 연습실로 향하던 그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나 프로코피예프 등의 러시아 작품을 연주하며 고뇌했던 숱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데다, 무언가 대등한 자존감을 깊고도 충만히 느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윤이상은 한국이란 나라를 서양음악 일변도의 세계 음악 지도에 당당히 올려놓은 중요하고도 자랑스러운 작곡가였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유네스코 산하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한 한국의 첫 국제콩쿠르이다. 세계의 수많은 음악가들이 매년 발표되는 이 연맹의 목록에 신경을 곤두세워 주목한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국제콩쿠르 중에서도 엄격하고 치열한 검증을 거쳐 공신력을 인정받은 콩쿠르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가입 승인을 받은 이래,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다른 경연들의 훌륭한 모범이 되어왔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아시아의 여타 콩쿠르들이 공격적인 벤치마킹을 서슴지 않았고, 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제주국제관악콩쿠르가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의 목록에 오르는 데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마침내 2014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은 총회의 개최지로 한국의 작은 도시 통영을 선택했다. 같은 해 유네스코 역시 '음악창의도시'로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을 선정했다. 문화적 인프라가 편중된 서울조차 이루지 못한 각별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우리는 부끄러우면서도 위험한 실상을 직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고지원평가에서 수차례 1위를 차지했던 이 콩쿠르는 2016년부터 국비 지원이 전격 중단되었다. 애초 콩쿠르를 처음 제안했고 13년간 주최자를 자임했던 경상남도는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2017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그뿐인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는 윤이상평화재단이 명시되어 있으며,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윤이상 訪北(방북)'이라는 불가해한 메모가 적혀 있다. 물론 그동안 윤이상에 대한 평가는 정권의 성향에 따라 유독 파란만장한 부침을 겪어왔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탄생 100주년만큼은 그의 음악적 성과를 오롯이 기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국의 병원 침대에 누워 죽음을 앞두었던 때, 작곡가 윤이상은 다음과 같이 절절한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통영에서 자랐고, 고향의 귀중한 정서적인 기억을 온몸에 지닌 채, 그 정신과 예술적 기량을 담아 평생 작품을 써 왔습니다. 통영의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내겐 음악으로 들렸지요. 고향에 가게 되면, 그때가 되면, 나는 통영의 흙에 입을 대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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