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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외아들 결혼식 상견례에 가려고 옷을 훔쳤다

  • 원성윤
  • 입력 2017.01.04 12:28
  • 수정 2017.01.04 12:29
Suits
Suits ⓒRobert Pitman via Getty Images

아버지는 돈이 궁했다.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일용직으로 일하며 외아들을 번듯이 키워낸 50대 아버지 A씨는 아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가 부담됐다.

A씨는 살기가 팍팍해 제 한 몸 꾸밀 겨를이 없어 낡아 빠진 옷을 걸친 자신의 초라한 행색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직장에 취직하고, 마음 맞는 짝을 만나 결혼을 앞둔 기특한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상견례를 며칠 앞두고 아버지의 두 손에 새 옷 사 입으라며 20만원을 쥐여줬다.

A씨는 그 돈을 들고 비교적 저렴한 옷을 파는 대형마트 의류판매장을 지난달 16일 저녁 찾았다.

그 돈으로 아들에게 줄 1만여원 상당의 화장품을 먼저 산 A씨는 아들 이름으로 현금영수증까지 착실히 끊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초라한 행색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의류매장을 돌며 옷을 십수번 들었다 놨다 고민했다.

아버지의 눈길은 옷의 멋스럼보다는 옷에 달린 가격표를 향했을 것이다.

10만원도 안되는 9만9천원짜리 외투를 겨우 고른 A씨는 의류매장 종업원에게 "다른 곳 둘러보고 이 옷을 살테니 기다려달라"며 자리를 떴다.

종업원은 외투를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A씨가 오지 않자 화장실을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마침 그때 매장을 다시 찾은 A씨는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는 순간의 잘못된 마음에 옷을 훔쳐 달아났다.

A씨에게는 아들이 준 돈이 있었지만, 옷을 훔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나이를 먹고, 최근 막노동 일거리도 떨어져 홀로 살던 집의 월세 15만원을 낼 길이 없던 A씨는 최근 아들의 신혼집에 잠시 들어가 살고 있었다.

아들의 신혼집에 계속 얹혀살 수 없어 하루빨리 나오려고 발버둥 치던 A씨에게 외투값 9만9천원은 큰돈이었던 셈이다.

경찰에게 붙잡힌 A씨는 죄를 빌며 내지 않은 옷값을 치렀으나 불구속 입건됐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에서는 A씨를 돕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경찰서로 빗발쳤다.

1남 1녀 자녀들의 손주를 보는 재미에 살고 있다는 포항의 한 할아버지는 "나도 넉넉하지 않지만, 훔친 옷값을 내가 내주고 싶다"고 담당 형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옷값을 이미 치렀다"는 형사의 답변에 이 할아버지는 "상견례에 입을 옷도 없었으면 결혼식에 입을 양복도 없을 것 아니냐"며 양복 한 벌이라도 사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도의 한 여성은 "A씨의 아들 결혼식에 축의금이라도 전달하고 싶다"며 "도움의 뜻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A씨는 "잘못을 저지른 저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네요.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며 "그러나 저보다 어려움 사람도 세상에 많은데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도움을 정중히 거절했다.

스스로 "염치없다"고 말한 A씨는 "오히려 제가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겠다"고 다짐해 전화기를 붙잡고 소식을 전한 형사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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