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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은 이렇게나 비슷했다

2017학년도 대학교 정시 모집이 1월 4일 마감되었다. 수많은 고3, 재수생, 부모들이 함께 고생하던 1년이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그런데 이들에게 ‘왜 대학을 가는가?’라고 물어보면 어떤 답이 나올까? ‘남들이 다 가서, 안 가면 뒤처지니까, 취업 때문에…’ 등등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 현재의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기회를 주는 책이 있다. 좋은 답이 나올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1. 재능과 노력으로 가난과 편견을 이겨내기 어려워진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도널드 헬러 교수는 “학업성취도는 가장 낮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학업 성취도가 가장 높고 경제적으로는 가장 빈곤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의미심장한 말은 그러나 우리에게 어떤 한 학생의 대학 진학 가능성을 높이거나 낮추는 유불리(충분한 재력 혹은 불충분한 재력, 안정된 가정 혹은 결손가장, 학교의 경쟁력 등)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자랐지만 좋은 고등학교에 다닌 학생이 변변찮은 고등학교에 다닌 학생보다 대학 진학에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보다 경제적 여건이 좋은 학생들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진학률이 상당히 뒤처져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자료를 어떤 식으로 쪼개보더라도 기회의 확대라는 이 진보적인 이야기는 그 속도가 분명히 느려지거나 정체되고 있다. 오늘날의 미국이 과연 재능과 노력으로 가난과 편견을 이겨낼 수 있는 평등한 기회의 나라인지에 대해서는 의심할 만한 근거가 충분한 셈이다.” (책 ‘왜 대학에 가는가’, 앤드루 델반코 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서울 지역만 놓고 보았을 때 “서울대학교에서 특목고(32.3%)와 자사고(22.2%), 강남 3구 일반고(21.0%) 출신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75.5%”였다. 학업 성취와 학생의 가정 환경이 중요한 상관 관계를 가지는 셈이다. 어쩌면 전세계적인 현상일지 모른다. 대학에서 심도 있는 공부를 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셈이다.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2. 대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일반화는 모든 대학에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전 학생들은 문학이나 예술 같은 ‘쓸모 없는’ 과목에서 몰려나와 경제학 같은 ‘시장성 있는’ 과목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지금도 그런 이동은 계속되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은 실제로 무엇이 무엇에 이로운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학생들이 졸업 후의 미래를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명문대도 예외는 아니다. …. 불행히도 많은 대학들은 좋은 운을 타고난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베풀며 살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지 못함으로써, 불안에 나포된 학생들에게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실은 공동체 자체의 이념이기도 할) 대학 이념의 핵심에 자리한 통찰 중 하나는 남을 돕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돕는 길이라는 것이다. …. ‘시장에 나온 대학들’(2003)이라는 시의적절한 제목의 저서에서 하버드대 전임 총장 데릭 복은 젠크스와 리스먼의 논평을 거의 똑같이 반복했다. “교수들은 오늘날 학부생들을 민주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한때 교양교육의 기본 목표라 일컬어지던 과제였으며 지금 이 순간 미국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과제인데도 말이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이 문장들을 각주로 달았다.” (책 ‘왜 대학에 가는가’, 앤드루 델반코 저)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제기되는 문제다.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탐구하며 문제의식을 키워나가는 곳이 아니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대학은 학생들을 민주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데 주력해야 함에도, 그런 노력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시도를 하는 일부 교수들은 오히려 시대착오적 인물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3. 대학 강의실도 새로운 교수법으로 진화해나가고 있다.

“강의실 내에서의 작은 변화가 굉장한 결과를 가져온 사례도 있다. 이제는 웹사이트와 블로그, SNS 등을 통해 정보를 퍼뜨리는 것이 용이해졌기 때문에, 작은 변화는 특정 강의실의 학생들에게는 물론이고 다른 강의실이나 다른 대학으로도 퍼져나가기 쉽다. 하버드대 물리학과의 에릭 마주르 교수는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암기하기에 치중하는 것을 깨닫고는 1시간 길이의 일방적인 강의 방식을 폐기했다. 대신 짦은 단위의 설명과, 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주어진 문제를 10분 동안 풀게 하는 방식을 병행했다. 그런 다음 학생들이 조별 연구 결과를 전자 피드백 장치를 통해 제출하면, 교수는 방금 한 설명을 학생들이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파악한다. 만일 상당수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진도를 나가기 전에 앞으로 돌아가 설명을 보충하고 다시 학생들끼리 토론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강의 규모에 상관없이) 교수의 독백적인 강의에 대화적인 요소를 다시 심어 넣을 수 있다.” (책 ‘왜 대학에 가는가’, 앤드루 델반코 저)

서울대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의 비결이 교수의 강의 내용을 숨소리까지 그대로 베껴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라고 하여 사회에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강의 방식 때문이다. 대학 교실에는 일방적인 교수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우리보다 덜 했을 듯싶지만) 미국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하버드대 에릭 마주르 교수처럼 새로운 시도가 중요하다. 그는 SNS 등을 활용해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고 이해 정도를 파악하며 토론을 시키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대학 강의실에 다시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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