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낭만닥터' 유감

72세로 3개월 미만의 여명을 통보 받은 말기 폐암 환자의 인공심장 교체수술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종류의 수술은 처음부터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에 성공한 의사에게 박수를 보내기보다 환자 입장에서 최선을 생각하지 않은 의사로 비난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김사부는 선택권을 환자에게 넘깁니다. 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라도 퀄리티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곤 수술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워딩입니다. 오히려 퀄리티를 생각한다면 수술 받지 않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 비온뒤
  • 입력 2017.01.03 12:03
  • 수정 2018.01.04 14:12
ⓒSBS

의학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동맥에서 피가 튀는 등 수술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하고 실감 나는 영상을 보여줍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한석규 등 배우들의 명연기도 일품입니다. 어려운 의학용어나 질병들에 대한 설명도 정확했고 병원 내부의 어두운 구석도 솔직하게 잘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은 세속에 찌든 의사들의 권력암투 가운데에도 꿋꿋하게 인술을 베푸는 주인공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는가 봅니다.

17회째인 오늘이 하이라이트입니다. 병원 이사장인 신회장의 인공심장 교체수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김사부는 시골병원 외과의사지만 한때 미국 클리블런드 클리닉에서 심장수술을 했던 최고의 외과의사입니다. 클리블런드 클리닉은 미국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지를 통해 미국 최고의 심장병원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이 제대로 공부하고 대본을 쓰신 듯 합니다. 그러나 수술은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환자는 72세입니다. 2년 전 인공심장수술을 이식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환자의 심장은 떼어내고 기계로 된 인공심장이 이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체외형 심실보조장치입니다. 환자의 병든 심장은 그대로 가슴 속에 있습니다. 단지 심장의 좌심실 펌프기능을 도와주는 장치가 외부에서 삽입됩니다.

튜브를 통해 연결된 배터리 등 장비를 몸에 24시간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처음엔 배터리만 갈아 끼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엔 장비 자체가 잘못돼 몽땅 교체하는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기 폐암을 진단받습니다. 김사부는 3개월 미만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미 간으로 폐암세포들이 잔뜩 전이되어 있었습니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CT 사진도 실제 간으로 전이된 것을 잘 골랐더군요.

드라마에선 수술을 선택했고 이것이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할까요?

드디어 어제 수술이 시작됐습니다. 결과는 오늘 나올 예정입니다. 수술에 성공하면 김사부를 비롯한 정의로운 의사들은 뜨고 암투에 찌든 권력지향형 부패의사들은 몰락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과연 수술은 성공할까요?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시청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내가 혹은 내 부모가 저런 상황이라면 수술을 감행하는 게 옳은가 하는 점입니다.

드라마에선 수술을 선택했고 이것이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할까요?

72세로 3개월 미만의 여명을 통보 받은 말기 폐암 환자의 인공심장 교체수술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런 케이스는 아직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설정입니다.

두 명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심장수술 전문가인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김준석 교수와 폐암수술 전문가인 원자력병원 이해원 박사입니다.

두 분 모두 "노"라고 말합니다.

인공심장 이식수술은 체외형 보조장치라도 흉골을 톱으로 썰어 열어야 하는 큰 수술입니다. 게다가 재수술이므로 어제 방송에서 보신 것처럼 조직끼리 들러 붙어있는 이른바 유착이 심해 수술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심장을 멈춘 상태에서 외부로 피를 빼어내 산소를 공급하는 체외순환기란 기계를 돌려야 합니다.

당연히 전신 마취를 해야 합니다. 보통 7-8시간 이상 걸립니다. 정상인이라도 매우 부담스러운 수술입니다. 한 달 가량 입원해야 합니다.

퇴원해도 상처가 아물고 기운을 회복하려면 두세 달이 더 소요됩니다.

그런데 환자는 말기 폐암입니다. 임종 직전 두 세 달 동안 극심한 호흡곤란 등 불편한 증세를 겪게 됩니다.

설령 수술이 잘 되어도 수술 상처가 아물 무렵 환자는 숨을 헐떡이며 죽기 직전 상태에 놓여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모든 시청자들이 오늘 방송을 보면서 수술의 성공을 기원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종류의 수술은 처음부터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종류의 수술은 처음부터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에 성공한 의사에게 박수를 보내기보다 환자 입장에서 최선을 생각하지 않은 의사로 비난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김사부는 선택권을 환자에게 넘깁니다. 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라도 퀄리티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곤 수술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워딩입니다.

오히려 퀄리티를 생각한다면 수술 받지 않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환자의 선택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의사는 방관자로 남기보다 환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조언해야 합니다. 물론 인공심장이 박동을 멈춘다면 환자는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환자는 비록 휠체어는 타고 있지만 호흡기 등 장치도 없고 말도 잘하고 몸을 움직이는 등 가벼운 일상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인공심장이 곧 멈추게 될만한 어떠한 설명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단 며칠만이라도 온전한 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거나 꼭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하는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미리 인공심장 교체수술을 받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이미 3개월 시한부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가 의미 없는 말기폐암이란 뜻입니다. 이래저래 수술을 받아야 할 당위성이 떨어집니다.

수술장에 들어서는 순간 환자는 의미 없는 경로로 접어들기 때문입니다. 워낙 부담이 큰 수술이라 수술장에서 숨질 확률도 매우 높습니다.

설령 수술이 잘 되어도 온 몸에 도관을 덕지덕지 꽂은 채 중환자실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곤 말기 폐암의 고통으로 숨져야 합니다.

게다가 이 수술은 매우 비쌉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됩니다.

게다가 이 수술은 매우 비쌉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됩니다. 최소 1억5천만원이 소요됩니다. 드라마에서 환자는 큰 부자라 치료비는 문제가 안됩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종류의 수술이 보통 사람들에게 강요된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일류대학 병원일수록 이런저런 비싼 최신 치료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들은 여유가 없음에도 치료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치료비 때문에 거절했다간 나중에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 환자가 얻은 이익이 별 것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요?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재미를 위한 선의의 과장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낭만닥터 김사부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제작진들의 노력에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병원과 의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애써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오늘 방송에선 꼭 수술에 성공하길 빕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즐겨 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내가 실제 상황에서 같은 입장이라면 드라마와 달리 생각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해보지 않은 치료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의학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일류병원 의사들일수록 공격적인 최신 치료를 권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엔 돈을 벌겠다는 이유보다 학문적 업적 쌓기와 명성에 대한 집착이 크게 작용합니다.

드라마에서도 넌지시 암시합니다. 펠로우 동주가 동료 인범을 수술팀에 합류하도록 권유할 때 말합니다. "너도 이런 (전대미문의) 수술에 이름 올리면 커리어에 도움될 거야"라고 말이죠.

때로는 아무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에게 최선이 곧 환자에게 최선은 아닙니다. 공격적인 최신 치료가 때론 환자에게 손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는 항상 환자의 입장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드라마에서처럼 6시간에 집착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과대포장됐음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수술은 빨리 하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거 장비가 시원치 않았을 땐 심장이식수술시 6시간이란 시간제한이 금과옥조였으나 요즘 체외순환장비는 하루 종일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7시간을 하더라도 꼼꼼하게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따라서 김사부가 말하는 6시간에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낭만닥터 김사부 #드라마 #방송 #홍혜걸 #의학 #수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