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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권력에 굴복했던 사례 4가지

작년 11월 10일, ‘TV조선’은 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그 중 특히 눈에 띈 내용은 청와대가 법원을 통제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난 부분이었다.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하다", "견제수단이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 같은 메모들이 비망록에 담겨 있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청와대가 '삼권분립'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잠시 헷갈리셨던 모양이다. 하긴 그 말을 헷갈리는 것을 넘어 아예 삭제해 버렸던 사례가 우리 역사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사 독재 시절, 사법부는 정권의 압박에 굴복했고, 판결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여기 그 부끄러운 역사 중 대표적 사례 4가지를 뽑아보았다. 역사가 반복될지 극복될지 지켜볼 일이다.

1. 깽판 놓기 : 이승만 정권의 방식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의사대로 판결을 관철시키는 방식은 주로 '시위대 동원'이었다. 정체불명의 이름을 가진 단체가 정권 입맛과 다른 판결을 내린 법정에 난입해 테러를 가하면 법관들은 신체적인 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혼란'을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해 공포 분위기 속에서 사법부의 굴복을 유도하는 것이 이승만 정권의 방식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민호 의원 석방 결의안 사태와 진보당 조봉암 사형 사건이다. 1952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구속되었던 야당 서민호 의원에 대해 국회에서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법원에서 이를 집행하자 '백골단', '땃벌떼' 등의 정체불명 단체가 석방을 집행한 법관의 하숙집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부산, 경남 지역에 계엄령을(당시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선포한 후 야당 의원들이 탄 버스를 견인해버렸다. 이승만 정권은 1959년 조봉암 사건 때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테러로 법관을 협박해 결국 사형 언도를 이끌어낸다. 노골적인 탄압의 시절이었다.

"헌법정신에 따르면 국회에서 석방결의안이 통과되면 지체 없이 석방해야 하는데도 검찰은 석방지휘를 하지 않았다. 결국...안윤출 부장판사는...구속집행정지를 내려 서 의원을 석방했다. '백골단'. '땃벌떼', '민중자결단' 등 정체불명의 단체가 이끄는 시위대가 다시 법원으로 몰려와 "안윤출을 죽여라"라고 외친 것이나 안 판사의 하숙집이 피습된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이 혼란을 빌미로 부산•경남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이 탄 버스를 크레인으로 견인하는 등 상상 밖의 초강수를 두면서...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서민호는 물론 재구속 되었고, 그 사건은 계엄 선포 이전에 일어난 일임에도 군사법원으로 이관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책 '사법부: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저)

2. 밥줄 끊기 : 박정희 정권의 방식

박정희 정권이 법관들을 길들이는 방식 중 하나는 '밥줄 끊기'였다. 10년마다 법관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재임용 제도'를 악용해, 정권이 심사의 전권을 쥐고 마음에 안 드는 법관들을 퇴출시켜 나갔다. 본래 제헌헌법 제79조에 규정되어 있던 법관 재임용 제도는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던 법관들을 내보내기 위한 취지가 강했으나(책 '우리 헌법의 탄생', 이영록 저) 훗날 독재정권의 뜻을 사법부에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자주 악용되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에 따라 모든 법관을 새로 임명하며 대법원 판사 9명, 일반 판사 41명을 '대방출'하는데, 개중엔 '형이 야당 의원이라' 혹은 '부친이 납북되어서' 재임용을 못 준다는 황당한 사유도 있었다. 물론 본심은 정권이 기획한 시국 사건에 대해 소신껏 판결한 법관들을 조직에서 내보내기 위함이었다. 통제는 약간은 치사하지만 보다 확실하게 이뤄졌던 것이다.

"사법파동 당시 계엄령까지 생각했던 박정희는 진짜 계엄령을 선포한 뒤 사법부를 선보았다. 박정희는 1973년 3월 말 새 헌법에 따라 모든 법관을 새로 임명했다. 법관 재임명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껄끄러운 법관들을 걸러내는 작업이었다...이건호 판사와 변모 판사는 부친의 신원이 문제가 되었고, 강인애 판사는 야당 강골인 형 강근호 의원 때문에 해직된 것으로 보인다...이때 해직된 판사들은 대개 법관 경력 10년이 안 된 판사들이었는데, 유신정권은 이들을 변호사 개업지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계속 못살게 굴었다."(책 '사법부: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저)

3. 권한 박탈 : 박정희 정권의 방식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으로의 개헌 뒤, 1974년 처음으로 내린 긴급조치 1호에 다음과 같은 규정을 집어넣는다. "긴급조치를 비방한 사람은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여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은 함께 발표한 긴급조치 2호에선 긴급조치 위반자 심판을 전담하는 비상보통군법회의, 비상고등군법회의를 따로 설치할 것을 명령한다. 정권이 특정 형사사건을 심판할 권한을 멋대로 법관들에게서 뺏어가 버린 것이다. 재임용으로 한 차례 조직을 솎아낸 후 남은 판사들조차 유신 헌법 하 시국사건 판결을 전담할 수 없었다. 법정엔 법관 대신 별 셋의 심판관, 영관급 장교 법무사, 중앙정보부 요원이 대신 앉아있게 된다. 검찰의 공소장이 그대로 판결문이 되던 시절이었다.

"긴급조치 위반자에 대한 재판은 신속히 진행되었다. 긴급조치 1호의 첫 번째 위반자 장준하와 백기완 두 피고에 대한 재판은 기소에서 선고까지 겨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검찰의 구형 다음 날 구형량 그대로 선고가 이루어지는 군법회의를 가리켜 한승헌 변호사는 "대한민국의 '정찰제'는 백화점의 상(商) 관행이 아닌 군법회의 판결에서 최초로 확립되었다"라고 야유했다...군인재판장이 재판하는 법정을 보며 변호인이나 방청객들은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라고 분노를 터뜨리기도 하고 "그러길래 재판이 아니라 '회의'일 뿐"이라고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책 '사법부: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저)

4. 안기부-사법부의 은밀한 동거 : 전두환 정권의 방식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처럼 멋대로 계엄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88올림픽 유치를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책 '사법부: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저). 그래서 전두환 정권은 군인 대신 안기부 요원들에게 권한을 실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1963년 개정된 중앙정보부법에 의해 안기부는 자신들이 수사해 검찰에 보낸 사건에 대해선 그야말로 전권을 쥐고 있었다. 이른바 '안보수사조정권'에 의해, 검찰이 정보, 공안 사건에 대한 불기소 여부를 안기부와 '협의'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안기부는 이 권한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협의'를 사실상 '허가제'로 만들기 위해 안기부는 이른바 '조정관'을 법원에 출입시키며,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사,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내린 내린 법관에 대한 신상조사, 윗선을 통한 압력 등을 행사하게 된다. 이러한 사정으로 사법부는 극도의 불신 대상이 되었다. 판사를 향해 고무신짝이 날라가는 일이 빈번했다고 하니 알만한 일이다.

"중앙정보부(중정)-안기부는 자신들은 재판에 개입하거나 부당하게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조정'했을 뿐이란다. 이 조정 업무를 담당한 자가 바로 '조정관'인데, 법원에서는 때로 이들을 신문사의 출입기자에 빗대어 '관선기자'라 불렀다. 중정-안기부가 조작하거나 부풀린 수많은 사건은 모두 사법부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조정관은 중정-안기부의 이런 목적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평소 사법부의 동향을 관찰하고 문제점이 파악되면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을 했다. 이따금 사법부 전체의 개편이 있다든지 큰 사안이 발생하면 조정관 차원을 넘어 안기부의 특정 부서나 특별팀이 개입하거나 지휘라인이 움직이기도 했다. 지금 국정원에 남아 있는 사법 관련 보고서는 조정관들이 늘 상부로 올리던 보고서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책 '사법부: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저)

법관을 향해 정권이 직접적인 '테러'를 하던 시절에서 직제와 뒷조사를 이용해 은밀한 '협박'을 하던 시절까지, 사법부의 독립성은 다양한 경로로 침해 받아 왔다. 그러나 사법부만이 피해자는 아니었다. 그런 사법부에 의해 억울한 판결을 받아야 했던 사람의 피해 또한 심각했다. 그리고 약 30년 만에 나타난 비망록 속의 암울한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사법부에게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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