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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하이쿠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하이쿠(俳句)는 일본 정형시의 일종이다. 시적 압축이 상당하다. 17자로 이루어져있다. 안도현 시인은 한 컬럼에서 “하이쿠의 역사는 1000년 가까이 되는데, 일본에는 1000개에 가까운 동호인 모임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표현양식이 오랜 세월 동안 형식과 작법이 변하지 않고 내려오고 있다는 건 예술사에서 드문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정도로 오래 되고 탄탄한 기반을 가진 문화라면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하이쿠에 대한 이해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하이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1. 반드시 계절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하이쿠는 5,7,5의 음수율을 가진 겨우 17자로 짜인 일본의 정형시다. 그 짧은 시에 반드시 ‘계절을 나타내는 낱말(季語)’이 들어가야 한다. 에도시대의 대표적 작가인 마쓰오 바쇼(1644~1694)의 작품 하나를 보자. ‘날은 춥지만 둘이서 자는 밤은 든든하여라’ 계절을 나타내는 계어인 ‘추운’ 날의 스산함이 이 짧은 시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추위가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건 바로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책 ‘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 저)

짧고 간결하지만 하이쿠에는 규칙이 있다. 17자라는 것, 그리고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또한 끊어 읽는 맛이 있어야 한다. 제멋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하이쿠 맛이 안 날 듯싶다. 철저한 규칙성이 있기 때문에 촌철살인의 글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2. 에도 시대에 무사들이 시인으로 변신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죽은 뒤 새로운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세습적 군사 독재체제인 바쿠후(幕府)를 새로 열면서 기존의 계급구조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무사 계급도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이전과 같은 대규모 전투도 점차 줄었기 때문에 무사들의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무사와 승려 계급은 문자속이 있던 계급이었다. 이들 가운데 시인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면서 전쟁 이전의 정형시인 렌카(連歌)가 에도 시대에 단가 형태로 바뀌었다. 그것이 바로 하이쿠렌카, 즉 하이쿠였다. 그리고 그 대표적 시인이 바로 마쓰오 바쇼였다.” (책 ‘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 저)

오랜 전쟁, 전투가 끝나고 에도 시대에는 무사들의 역할이 애매했다. 이들 중 일부는 시인으로 변신을 하였다. 이들에 의해 기존 정형시가 짧은 하이쿠로 변형되었다. 단칼에 승부를 보았던 무사들이라 긴 호흡보다는 짧은 호흡을 선호했을지 모르겠다. 이때부터 일본 시의 대명사는 하이쿠가 되었다.

3. 전업 시인이 생겼고 많은 시를 창작했다.

“감흥에 따라 단편적으로 창작되었던 조선의 시조와 달리 하이쿠는 전문작가들이 일본 곳곳을 순례하면서 지속적으로 지어냈다. 그래서 한 작가가 수천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들은 일종의 음유시인과도 같았다. 그런 전통은 그대로 근현대까지 이어져 일본 문화에 그야말로 전문가객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노하우가 축적되면 될수록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작품들이 생산되었다.”(책 ‘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 저)

우리가 접하는 조선의 시들은 대부분 관리들이 남긴 것들이다. 전업 시인은 아니었다. 흥에 겨워 남기거나 때로는 유배를 떠나며, 인생의 변곡점에서 시를 짓곤 했다. 전업 작가에 비해 양이나 질적으로 앞서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일본은 우리와 달랐다. 하이쿠 전문 작가들이 여럿 등장했다. 전국을 누비며 작품을 남겼다.

4. 일본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이쿠는 일본 문학 전체를 특징짓는 경향이 되었고 심지어 현대의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소단박(輕小短薄), 즉 가볍고 작고 짧으며 얇은 것은 전 세계를 석권한 일본 가전제품의 개성이 되었다. 지금이야 일본의 가전산업이 다소 위축되었지만 지난 50여 년 동안 일본의 가전제품이 세계에서 사랑받았던 힘이 경소단박에서 나왔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이쿠는 문화라는 것이 비단 시문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일반에까지 퍼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규정하는 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 일본의 하이쿠는 감정의 절제와 극도의 단순화를 내면화한다. 이것이 일본인의 사고와 감성을 이룬다.” (책 ‘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 저)

소니가 대표적인 경소단박 제조기업이다. 워크맨이나 베타 VCR 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다른 기업의 같은 종류 제품에 비해 압도적으로 얇고 가벼웠다. 그만큼 고장이 잘 난다는 불평도 간혹 있었지만 제품의 이미지는 최첨단 그 자체였다. 감정의 절제와 극도의 단순화를 모토로 하는 하이쿠가 영향을 미친 셈이다. 문학은 한 국가, 한 민족에게 중요한 정신적 영향을 미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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