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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사회적 해악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과 성향을 수집, 분석, 관리한 것으로 '민간인 사찰'에 해당한다. 그동안 정부의 민간인사찰이 여러 차례 문제되었다. 법원도 이러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국가배상이 필요한 불법행위임을 확인하였다. 범죄인도 아니고 국가안보에 해악을 끼치지도 않는 민간인의 활동과 성향을 감시하는 것은 해당 국민을 범죄인이나 간첩으로 취급한다는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은 법률적 근거 없이 자행되는 국가감시로 불법행위가 되어 반드시 형사적, 민사적 책임이 부과되어야 한다.

  • 이준일
  • 입력 2017.01.02 05:46
  • 수정 2018.01.03 14:12
ⓒ뉴스1

정부가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인사들의 성향을 분석하여 관리하면서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에서 고의적으로 배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이 되고 있다. 청와대가 주도하여 작성하고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관리와 집행을 맡았다는 혐의가 수사의 대상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반발하여 문화예술인들은 두 달 가깝게 광화문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이어가고 있어 신속한 수사가 요구된다.

헌법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헌법 제22조 제1항) 표현(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와 함께 규정된 '검열금지원칙'(헌법 제21조 제2항)은 예술의 자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술의 자유는 예술적 창작물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표현을 포함하여 표현의 자유에서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검열은 표현물이 표현되기 전에 그 내용을 심사하여 표현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선별한 뒤 표현될 수 없는 표현물의 표현을 금지하는 사전검열을 내용으로 한다. 사전검열의 주체는 주로 국가인데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사전검열금지를 위반하는 입법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위헌으로 선언해왔다. 대표적으로 영화ㆍ음반 등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영상물등급보류제도를 들 수 있다.

헌법이 사전검열을 금지하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chilling effect) 때문이다. 사전검열은 표현이 금지된 내용을 설정함으로써 그 자체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만 사전검열을 의식한 표현주체들이 미리 사전검열을 의식하면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헌법은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헌법 제23조 제4항). 하지만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표현의 금지는 사전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의 취지에 비추어 사전검열의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표현물이 실제로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에 대해 끼치는 해악의 결과를 제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표현물이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에 대해 끼치는 해악은 추상적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어야 하고, 표현물과 해악 사이에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주지하듯이 미국 연방대법원도 '명백하고 현존하는(clear and present) 해악'의 원칙을 고안해서 표현물의 규제를 엄격하게 제한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에 의한 검열뿐만 아니라 국가가 아닌 사인, 특히 단체에 의한 검열이 문제되고 있다. 예컨대 특정한 영화제를 주도하는 단체가 특정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는 것이다. 헌법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규율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상호간의 관계도 규율하기 때문에 국가가 아닌 사인에 의한 검열도 입법에 의해 금지될 필요가 있다. 국가에 의한 검열은 직접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간접적이고 정책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의 명단을 작성하여 그들에 대한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배제하면 그들의 문화예술활동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문화예술은 창작 단계에서부터 공연 단계까지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의 배제는 문화예술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받기 위하여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내용의 표현물을 창작할 수밖에 없고, 정부가 주도하는 전시나 공연 행사에 창작물을 전시하거나 공연하려면 정부의 기획의도에 맞는 내용의 표현물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묘한 사전검열의 기제다.

게다가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과 성향을 수집, 분석, 관리한 것으로 '민간인 사찰'에 해당한다. 그동안 정부의 민간인사찰이 여러 차례 문제되었다. 법원도 이러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국가배상이 필요한 불법행위임을 확인하였다. 헌법은 명시적으로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거의 자유(헌법 제16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헌법 제17조), 통신의 비밀(헌법 제18조)을 보장함으로써 개인의 비밀영역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여 국민에게 국가의 감시를 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암묵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물론 국가는 범죄예방이나 국가안보를 위하여 법률에 근거하여 감시의 권한을 예외적으로 부여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권한은 범죄수사나 국가안보의 목적에 엄격하게 국한되어야 한다. 따라서 범죄인도 아니고 국가안보에 해악을 끼치지도 않는 민간인의 활동과 성향을 감시하는 것은 해당 국민을 범죄인이나 간첩으로 취급한다는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은 법률적 근거 없이 자행되는 국가감시로 불법행위가 되어 반드시 형사적, 민사적 책임이 부과되어야 한다.

정부가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를 주도하여 만들고 관리했다면 이것은 헌법상 금지된 사전검열이며 민간인사찰에 해당하는 문화농단이다. 대통령이 여러 가지 헌법위반으로 탄핵소추가 되어 있는 지금 이러한 헌법위반 행위는 헌법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반드시 시정이 필요하다.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집행을 주도한 공무원들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화예술은 공동체의 정신이자 영혼이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교묘하게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의 기제를 작동시키고 문화예술인을 은밀하게 사찰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신과 영혼을 파괴하고자 했던 행위를 규명하여 그 주도세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민주적 공동체의 가치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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