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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얼굴 없는 천사들'은 왜 정체를 숨길까?

  • 박세회
  • 입력 2016.12.31 06:55
  • 수정 2016.12.31 06:56

연말연시면 소외 계층을 도우려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줄을 잇는다. 일반 회사원 연봉을 훌쩍 넘는 금액을 선뜻 내놓고도 그들은 한사코 얼굴을 숨긴다.

매번 거액을 기부해온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1억2천만원이 든 돈 봉투를 전하고 떠났다. 그는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등록해주겠다는 공동모금회 직원 권유도 거절했다.

17년째 남몰래 선행하는 '전주 얼굴 없는 천사'도 올해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5천21만7천940원을 담은 상자를 놓고 자취를 감췄다.

취재진이 천사의 얼굴을 밝히려 진을 치기도 했지만, 그는 단 한 차례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천사들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기부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기부하면서 얻는 행복과 만족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천사들은 기부를 통해 기쁨이나 행복을 느껴 스스로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설명이다.

그들은 기부로 '내가 남을 도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회에 훈기를 불어넣는 구성원임을 자각한다.

신원을 밝히고 선행을 이어갈 수 있지만, 이웃을 도우려는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길 바란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떤 기부든 선행이라는 토대는 같지만, 얼굴과 존재감을 알릴 목적으로 하는 기부와 선을 긋고 싶어하는 심리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얼굴 없는 천사들은 신원을 감춤으로써 자신이 순수한 목적으로 남을 돕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스스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 같다"며 "실제로 방학 중 자원봉사를 하지 않은 학생보다 봉사를 한 학생의 행복감이 더욱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 선행.

선행하는 데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받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형편도 넉넉하지 않으면서 오지랖 넓게 남을 돕는다는 편견 등이다.

우연한 계기로 기부 사실이 알려진 서울의 한 얼굴 없는 천사는 무일푼으로 상경해 힘들게 건축자재 소매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도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와 옷감 도매업을 운영하지만, 점포가 불탄 적이 있어 여유로운 형편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곽 교수는 "풍족한 상황에서 남을 돕는 일을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기부하는 데는 일부 불편한 시선이 따른다"며 "그런 편견과 눈총이 싫어 얼굴을 숨기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세밑 한파에도 전국에서 수많은 얼굴 없는 천사가 예년과 다름없이 몰래 다녀갔다.

전북의 한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기부는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가능한 것이다"며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많지 않은 금액이라도 나눔을 실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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