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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파리 기후협정에서 탈퇴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박세회
  • 입력 2016.12.30 12:16
  • 수정 2017.12.31 14:12

도널드 트럼프가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할 거라는 예측이 퍼지면서 국제사회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가 뻥 차버릴 예정이라는 그 파리 기후협약조차 실은 '가냘프고 연약한 인류의 마지막 사다리'에 불과한데 말이다.

(업데이트 2017년 6월 1일,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할 예정이다'(CNN))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절대 280ppm을 넘지 않았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900년대 이후 급격하게 치솟더니, 2016년에는 기후학자들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기던 연평균 400ppm을 넘어섰다. 서울을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가 기상 관측 이후 최고 기온을 거의 매년 갱신해 나가는 추세 속에서 지난 7월 쿠웨이트의 낮 최고 기온은 54도를 넘었다. 20세기에 해수면은 17cm 높아 졌지만, 아마 21세기에는 미터 단위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말 '마지막'이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합의된 교토의정서 이후 흐지부지한 시기를 지나 2012년부터 이어진 사실상의 기후협약 공백기를 거쳐, 각국 정상은 2015년 12월 어렵게 파리에 모여 겨우겨우 가냘픈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자. 목표 달성을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일지는 자발적으로 국내에서 비준받아 제출하자." 희미한 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있던 교토의정서조차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게'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자발적?

한 환경 단체에서 파리 협약 이후 지금까지 각 국가에서 자발적 비준을 거친 탄소 배출 억제 계획안을 그대로 모델링 해봤더니 기온이 2100년까지 2.7도나 상승하더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아래 지도는 지구의 기온이 평균 2도 올라갔을 때 물에 잠기는 뉴욕시의 주거지역을 파랗게 표시한 것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파리 기후협약에서 197개국은 과거 교토의정서에서 목표로 한 '탈 탄소'가 아닌, 21세기 말까지 '순 배출량 제로(Net Zero)'를 이룰 것을 목표로 합의했다. 카본브리프 등은 지난해부터 그 '순 배출량'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왜? 순 배출량이란 결국 화석 연료를 쓰고, 거기서 나온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처리해 배출량과 처리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화석연료를 아예 쓰지 않는 '탈 탄소'와는 다른 얘기다. 결국, 쓸 수 있는 건 다 쓰겠다는 것.

전 세계, 특히 미국의 셰일(Shale)가스 열풍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다. 1998년 미국 석유 가스 회사 미첼 에너지개발의 조지 미첼 회장이 셰일 암석층을 부숴 석유와 가스를 분리해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프래킹'이라는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하루 셰일가스 생산량이 10년 새 20배나 급증하며 미국 전역에 셰일 혁명이 일어났다. 이 혁명으로 미국은 정말 많은 걸 얻었다. 유가가 낮아지면서 2008년 금융 위기로 침체되어 있던 경기가 살아났다. 저유가 경쟁의 시작으로 중동이 가지고 있던 화석연료의 패권도 반쯤 뺏어왔다. 이것은 전체 수출의 60%가 천연자원인 러시아와 중남미의 산유국 베네수엘라 등을 압박하는 카드가 됐다. 미국이 셰일 가스를 포기할까? 그런 일은 이 세계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셰일가스라는 건 사실 전 세계 거의 어디에나(우리나라 제외) 묻혀 있다. 미국은 물론 셰일이 매장되어 있으나 아직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한 비산유국 입장에서도 미래에 있을지 모를 기회를 태생부터 차단하는 '탈 탄소'를 목표로 택하기보단, 슬며시 뒷문을 열어주는 '순 배출량 제로'의 길을 택하는 게 이득이라 여겼을 것이다.

영국의 과학 논문 잡지 '네이처'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셰일가스의 저렴한 가격이 소비 동인으로 작용해 2050년까지 천연가스의 소비 총량이 셰일가스가 등장하기 전의 예상치보다 2.7배나 급증할 것이며, 이 값싼 연료가 태양열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까지 대체할 것이고, 그 결과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역시 기존의 화석연료만을 사용할 때보다 최고 11%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교토의정서가 물거품이 되었듯, 파리 협약도 반드시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미국이 발을 빼면 가장 많이 배출하는 중국이 발을 뺄 것이고 일본은 이들의 눈치를 볼 것이다.

관련기사 : 주요 6개국은 결국 '기후'에서만은 트럼프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대체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 이제야 우리는 눈앞의 원인이 아니라 근인, 좀 더 '근본적인 원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캐나다의 작가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변화라는 요인 뒤에 '자본주의'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하며 '관리된 역성장'을 주장했다. '관리된 역성장'이란 예컨대 '친환경 소비'가 아니라 '더 적은 소비'에 합의하고 과학의 시계를 조금 뒤로 돌리는 것이다. 전 지구적 합의가 필요한 그녀의 이상은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눈여겨볼 포인트는 있다. 과학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맹신적인 태도를 꼬집은 점이다.

렉스 틸러슨.

트럼프가 이번에 국무장관으로 지목한 바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 회사 CEO 렉스 틸러슨은 "우리는 적응할 것이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별일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틸러슨의 주장처럼 거대 기업들은 과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실제로 셰일가스의 생산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탄소를 모아 땅속 깊은 곳에다가 숨겨두면 그만이라고 말하며, '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에너지 과학적 사고의 나선이다.

과학으로 문제가 생기면 과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셰일 가스를 추출하고는 셰일 가스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가두는 법을 연구한다. 지반 아래에 가둬 놓은 이산화탄소가 혹시 터지면 아마 그때는 좀 더 깊은 곳에 더 단단하게 숨기는 법을 연구하겠지. 어쩌면 이제 우리는 문제가 애초에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에 모든 논의의 초점을 맞추도록 사고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에 기고한 글을 편집 수정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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