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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중국인이었다

일본에 저항하다가 귀향을 간 최익현이 중국을 기리는 글씨를 새겨놓은 것을 두고 오늘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역사 의식의 결여라고 본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모두 이중국적자들이다. 그들은 중국인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이었다. 중국 황제의 신하이면서 동시에 조선왕의 신하였다. 이는 전혀 모순되는 일이 아니었다.

  • 최범
  • 입력 2016.12.29 12:31
  • 수정 2017.12.30 14:12
ⓒWolfgang Kaehler via Getty Images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었다.

"심지어는 일본이 온 강토를 짓밟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당시 우국지사로 온 국민의 추앙을 받던 면암 최익현이 일본에 쫒겨 흑산도로 귀양을 가서 흑산도 바위벽에 새겨놓은 글도 '기봉강산(箕封江山) 홍무일월(洪武日月)'이라 할 정도로 실존하지 않는 명(明)이 실존하는 그 어떤 대국보다 더 실존적이었다. 기봉강산은 중국인 은나라 기자가 만들어준 나라가 바로 조선이란 말이고, 명나라 주원장의 연호인 홍무를 앞세운 홍무일월은 주원장의 나라인 명의 해와 달이 바로 조선을 비추는 해와 달이라는 의미다. 조선은 애초에 중국이 만들어준 나라이고 조선의 해와 달은 조선의 해와 달이 아니라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그 중국, 명나라의 해와 달이라는 것이다."

- 송복, <특혜와 책임>, 195쪽

나는 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에 저항하다가 귀향을 간 최익현이 중국을 기리는 글씨를 새겨놓은 것을 두고 오늘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역사 의식의 결여라고 본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모두 이중국적자들이다. 그들은 중국인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이었다. 중국 황제의 신하이면서 동시에 조선왕의 신하였다. 이는 전혀 모순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국민국가적 잣대를 들이대어 비판하는 것은 웃기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1910-45년 동안의 한국인들은 일본인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이었고, 현재의 한국인들은 미국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 아닌가.

나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지녀왔던 복합적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절대로 중국인도,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단 정체성은 형식논리학과 같은 모순률이 적용되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아니라, 언제나 중국인인 한국인, 일본인인 한국인, 미국인인 한국인이었고 또 현재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서 민족 정기가 말살되었는가. 웃기는 소리 그만하자. 우리가 지켜야 할 민족 정기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중국인이며 일본인이며 미국인이며 한국인이다. 얼마나 좋은가? 우리의 다중 정체성, 우리의 혼합 정체성을 인정하자. 제발 민족 정체성과 관련한 정신병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보자.(참고로 저는 프랑스인이기도 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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