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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완전 해체만이 답이다

전경련은 한마디로 박정희 시대와 함께 시효를 다한 조직이다. 그 시대를 넘어 억지로 존재하려니 케이스포츠재단, 미르재단 등의 모금을 사실상 주선하고 어버이연합을 지원하는 등의 무리수가 나온다. 임직원들과 주변 연구자들에 대한 보수는 점점 후해진다. 조직이 사명을 잃고 나면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 이원재
  • 입력 2016.12.28 11:33
  • 수정 2017.12.29 14:12
ⓒNews1

비영리단체가 남의 돈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 취지와 기대효과와 다른 방식의 사회공헌사업과의 차별성까지를 상세하게 쓴 기획서가 필요하다. 기부할 만한 기업을 직접 찾아가 잘 설명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회의를 하고 며칠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보다 돈 구하는 일이 더 오래 걸리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십년 경험의 베테랑 활동가도, 사회복지 현장을 누비던 성직자도 기부자 앞에서는 가슴을 졸이며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단 한 군데 비영리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만은 예외다.

전경련은 회원사들의 회비와 소유한 건물의 임대료 수입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그 정확한 액수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회비가 연간 500억원대로 알려져 있지만 추정일 뿐이다. 서울 여의도에 수천억원대 건물을 소유하며 연간 300억원대 임대사업을 하지만 외부 감사도 받지 않는다. 법인 정관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수입조차 알려지지 않으니 지출내역은 말할 것도 없이 비밀이다. 회원사들에도 정부에도 시민들에게도 모두 비밀이다. 그냥 쓴다.

전경련은 1961년 설립된 '경제재건 촉진회'로 출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쿠데타 뒤 기업주들이 부정축재자 처벌 등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그 뒤 전경련은 박정희 정권과 손잡고 재벌 중심의 경제개발계획에 적극 협조했고, 회원사들은 가장 큰 수혜자가 됐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전경련의 1대 회장이다.

전경련은 한마디로 박정희 시대와 함께 시효를 다한 조직이다. 그 시대를 넘어 억지로 존재하려니 케이스포츠재단, 미르재단 등의 모금을 사실상 주선하고 어버이연합을 지원하는 등의 무리수가 나온다. 임직원들과 주변 연구자들에 대한 보수는 점점 후해진다. 조직이 사명을 잃고 나면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미국 '헤리티지'처럼 바꾸자고 말한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최근 몇 년 동안 헤리티지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점사업인 '오바마케어'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정책적으로 비판한 게 아니다. 직접 50만달러를 투입해 오바마케어 예산 삭감에 서명하지 않은 의원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을 공격하는 광고를 냈다. 100명의 공화당 의원이 타깃이 된 정치공세였다. 헤리티지는 이미 정책연구의 쟁기를 놓았다. 대신 극우보수세력에 실탄과 무기를 공급하는 진지가 됐다.

전경련이 그런 진지로 변신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어버이연합을 지원하고, 특정 정치세력의 성공을 위해 모금을 돕는 역할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전경련을 떳떳하게 유지할 방법은 없다. 엘지그룹도 27일 탈퇴를 공식화했다. 이제 전경련에 남은 유일한 길은 잔여 자산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배분사업을 벌이는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재단은 기존 전경련의 사업방향을 모두 버려야 하며, 엄격한 기준을 갖추고 독립적인 인사들로 이사회를 새로 꾸려 스스로 사명을 정하고 운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재단법인의 취지에 맞게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기업 대변 기능, 정책연구 기능, 직접 사업 기능은 완전히 없애고 배분사업만 남겨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완전 해산하는 것이 옳다. 남은 자산은 사회에 헌납해 몇년간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데 사용해 없애 버리는 것도 좋겠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했다. 전경련은 역사 속에 여백으로만 남는 게 최선이다. 무엇을 더 하더라도, 그만큼 오명만 남기게 될 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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