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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조지 마이클을 잃은 것이 특히 안타까운 이유

  • 김도훈
  • 입력 2016.12.28 11:05
  • 수정 2017.02.06 09:49

2016년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했던 악마인 유독한 남성성이 큰 승리를 거둔 해였다. 미국에서는 수백만의 남녀 유권자가 성폭력 전력을 자랑하는 것은 그저 ‘라커 룸 대화’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그게 아니라 해도, 최소한 강간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괜찮다고 여겼다.

2016년의 정치 및 사회 담론은 컴퓨터 스크린 뒤에 숨어서 자기들이 정한 유족하고 낡은 기준에 맞춰 살지 않는 여성들에게 벌을 주려 하는, 억울해 하는 불안정한 남성 군단이 지배했다.

2016년에 정치인들은 비관행적인 젠더의 미국인들을 공중 화장실 사용에 대한 진흙탕 싸움에 끌고 들어갔다가, 노스 캐롤라이나 선거구에서 자신의 힘을 굳히려는 비민주적 시도로 증오 범죄 법안 HB2를 없애겠다는 약속을 마지막 순간에 버렸다.

크리스마스에 팝 아이콘 조지 마이클이 세상을 뜬 것이 너무나 슬픈 이유는 어쩌면 이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올해 프린스와 데이비드 보위가 사망한 것이 유독 아프게 느껴지는 것도 이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여러 모로 올해의 분노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미국과 전세계 사람들의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 사회 및 정치적 불화,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언뜻 보면 이 두 가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한 번에 단 한 가지 주제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모두가 믿는 것 같은 소셜 미디어의 세상에서, 레너드 코헨, 앨런 릭먼, 자자 가보르 같은 전설을 잃는 것이 슬프긴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하기란 참 쉽다.

그러나 대중 문화의 세계는 저속하고 정치의 세계는 그와는 다른 높은 영역이라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리석으며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지금은 스스로를 ‘대안 우파’라고 부르고 있는 여성혐오 백인 국수주의자들이 처음으로 터져 나온 것이 2014년에 시작된 게이머게이트라는 것보다 이를 더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는 없을 것이다. 폴 페이그가 젠더를 바꿔 리메이크한 ‘고스트버스터즈’에 대한 폭력적인 반발도 마찬가지다. ‘대안 우파’의 주요 인물인 마일로 이아노풀로스가 트위터에서 주도한 배우 레슬리 존스에 대한 공격은 정말 추했다.

그러므로 올 한해 동안의 대중 문화의 우울한 순간들의 배경 음악이 되었던(안타깝게도 체인스모커스는 2016년에 제일 많이 들린 백인 남성들의 헛소리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정치적 혼란의 렌즈를 통해 대중 문화를 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두 세계는 종종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두 세계는 서로 힘과 깊이를 주고받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지금 모습을 더욱 온전히 보여준다.

미국 정치와 문화에서 유독한 남성성이 우월한 자리를 재확인하는 것을 지켜보기란 정말 괴로웠다. 보위, 프린스, 조지 마이클 같은 아티스트들을 잃음으로써 우리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런 가치들에 반대하고, 남성이란 이래야 한다, 이런 남성만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에 침을 뱉고, 전통적 남성성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부합하지 않는 정체성을 고집한 주요 인물들을 잃은 것은 더욱 더 괴로운 일이었다.

이 세 명의 뮤지션을 유독한 생각들에 대한 흠결없는 전사로 봐야 한다, 그들의 개인적 행동에 의문을 던지지 말고 추켜세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양성 외계인 같았던 데이비드 보위, 창의적인 젠더로 열정을 요란하게 표현했던 슈퍼스타 프린스, 퀴어임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아이콘 조지 마이클를 알았던 것이 나에겐 굉장한 자신감과 힘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순응하지 않는 사상과 정체성을 무시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문화 속에서 그들은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의 존재는 즐겁고 신나며, 계몽적이면서 펑크적이었다.

사회가 제시한 선택지와는 다른 존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런 아티스트들 덕분에 깨달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곡 ‘Faith’의 도입부의 교회 오르간 소리 직후에 데님과 가죽을 입은 조지 마이클이 엉덩이를 흔드는 것이 초월적이며 황홀한, 거의 복음과도 같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니다. 1987년의 ‘Faith’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가 얼마나 체제 전복적이었는지를 느끼지 못하기가 쉽다.

그는 1998년에야 커밍아웃을 당했지만, 그전에도 전통적 이성애의 과시적 요소를 종종 비틀곤 했다. ‘Faith’ 비디오에서 로커빌리 기타에 맞춰 마이클은 80년대 초반의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옷을 입고 걸어다닌다. 재킷부터 선글라스, 주크박스까지 이 비디오의 모든 면은 퀴어스럽다. 약 4분 동안 비디오는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조지 마이클은 시청자를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상징이 의미 없어지는 지점까지 오즈의 마법사처럼 끌고 간다.

마이클이 남성다운 패션 심볼을 뒤튼 것은 게이 남성들 사이에서는 유해한 남성성에 대한 모독이었다. 이런 위험한 심볼을 전유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오해받곤 하는 이성애자 남성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랜도 펄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 전역의 게이 남성들은 자신들도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고 소셜 미디어에서 떠들어 댔다(물론 이성적 정당방위의 이름을 내걸었다). 에미넴 앨범을 처음으로 산 백인 8학년생 같이 차려 입은 이아노풀로스는 순회 연설 중 트랜스 학생의 사진을 보여주고, 밀워키의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청중들에게 “나는 지금도 이 사람과 섹스를 할 용의가 거의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가 트랜스젠더가 되기에 실패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문장력도 형편없고 인간으로서도 말종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게이라고 밝힌다. 그는 2015년 11월에 브레이트바트에 기고한 글에서 ‘LGBT’에서 ‘T’를 빼자고 주장했다(링크는 걸지 않겠다. 검색도 권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는 저 세 아티스트들 중 조지 마이클이 가장 매혹적이었다. 그는 젊은 게이 남성들이 추구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남성성을 자신의 페르소나에 포함시켰지만, 이성애 규범성의 예외로 행동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고 그 남성성을 자신의 퀴어성에 맞도록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가 남성성의 의미를 비틀었던 것이 별로 놀랍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문화계의 여러 퀴어 인사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밑작업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성애 남성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미지를 사용해 ‘이성애자로 보이게’ 했던 것은 옷만 조금 다르게 입으면 그가 게이라는 모든 루머를 무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12개월을 돌아보면 전통적 남성성의 허약한 잔재가 다시 힘을 얻고, 가질 자격도 없었던 문화적 기반을 탈환하기 위하여 사회적, 정치적 테러리즘에 가까운 공세를 펼친 것은 실망스럽고 괴로운 일이었으나 놀랍지는 않았다. 문화가 온갖 방법으로 전통적 남성성을 보장하고 지원해 왔다는 것도 우리를 낙담하게 만든다. 2016년은 온갖 악을 행한 자들을 용서하기 위한 핑계를 찾아주는 해였다. 그 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죄인들이다. 그러므로 조지 마이클, 프린스, 데이비드 보위와 같은 인물의 상실을 애도하는 것은 우리가 허용한 퇴보를 애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조지 마이클이 평화롭게 숨졌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가 앞으로도 쭉 평화롭게 쉬길 바란다.

나는 미국, 여러 미국인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을지 말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허핑턴포스트US의 Trying To Keep The Faith: Why Losing George Michael Hurts Especially Badly In 2016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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