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알트 라이트'와 '네오나치'는 같으면서도 다른 구석이 있다

  • 박세회
  • 입력 2016.12.28 09:57
  • 수정 2016.12.30 08:40

최근까지 여러 매체에 실린 '알트라이트'를 수식하는 표현을 모으면 대략 '백인 지상주의자로 이슬람과 유대인 중남미 이민자를 증오하고, 동성애를 혐오하며, 종족민족주의를 추앙하고, 남성 우월주의적 성향을 띤다'는 결론에 이른다. 흔히 우리 나라에선 '대안 우파'로 불리는 이들 알트라이트(Alt-right, Alternative right)가 미국 언론의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면서 엄청난 혼란이 일었다. 수년 동안 미국의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요즘 말로 '짤방'을 프로필 사진에 걸어놓고 제각각 활동하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던 집단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

그동안 오프라인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이 바닥 유명 인사는 '아메리칸 컨서버티브(The American Conservative)'라는 잡지에서조차 너무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후 '얼터너티브 라이트(Alternative Right)'라는 이름의 온라인 잡지를 창간한 리처드 스펜서 그리고 대안 우파를 위한 플랫폼을 자처하는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Breitbart News)'의 대표였던 스티브 배넌 정도다. 사실 미디어는 이들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무시했을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미디어들이 알트라이트에게 적법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드물게 벌어지는 그들의 집회를 다룰지 말지를 두고 수년간 논의했다'며 난감했던 그간의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일간베스트'를 꽤 오랫동안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라고 칭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우리가 수면 아래 있던 이들의 추악한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데는 도널드 트럼프 덕이 크다. 트럼프가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 '범죄자'라 칭하며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는 공약으로 대선 출사표를 던지자 지하에 있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한 손을 들어 나치 시대의 거수경례를 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헤일 트럼프!".

알트 라이트 전도사인 리처드 스펜서의 강연.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제럴드 마틴'이라고 실명을 밝힌 한 알트라이트는 "한평생 주류 정치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아마 2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알트라이트라며 '뉴욕 타임스'에서 실명을 밝힐 사람을 찾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의 마틴 씨는 자랑스레 사진까지 찍었다. 갓 도래한 트럼프의 시대에 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알트라이트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트럼프의 주가가 한층 오르고 난 후다. 세계 최대 통신사 중 하나인 어소시에이티드 프레스(AP)의 기사 작성 지침을 총괄하는 존 다니주스키 부사장은 지난 11월, 기자들에게 "알트라이트라는 단어가 백인 우월주의의 완곡한 표현으로 쓰이지 않도록 구분을 명확히 하고 주의를 기울여라"라고 당부했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정확하게 백인 우월주의의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 '알트라이트'가 아닌 '백인 민족주의자'로 표기해야 한다는 뜻일 테다. 이는 알트라이트의 전략과 본질을 꿰뚫는 해석이다. 그는 "그들이 자기 자신을 '알트라이트'로 정의하도록 미디어의 역할을 제한할 게 아니라, 그들의 실질적인 신념과 철학 그리고 타인의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행동, 소속, 역사와 그 위치 등을 정확히 서술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알트라이트라는 용어를 '신념을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는 선전용 단어'로 정의했다. 물론 AP가 대놓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언급한 '백인 민족주의'가 환기하는 명확한 함의 중 하나는 '나치'다.

참고로 '개구리 페페'는 알트라이트가 가장 사랑하는 캐럭터다.

현재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몇몇 주류 언론은 아예 알트라이트 옆에 괄호를 치고 '네오나치(Neo-Nazi)'라는 말을 병기하고 있다. 그것이 알트라이트가 지닌 신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주의 사이트인 '제저벨스닷컴'에 따르면 네오나치라는 말만으로는 그들의 본질을 다 담지 못한다. 알트라이트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백인 남성 이성애자가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다. 알트라이트를 '네오나치'라고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이 세력이 가진 미소지니(여성 혐오)적 면모와 이성애 우월주의를 모두 담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알트라이트의 '본질'에 대한 사유가 꼭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재특회의 회장인 '사쿠라이 마코토'.

인종 갈등이 없음에도 항상 불만에 가득 찬 일본과 한국의 넷우익과 일간베스트, 동유럽에 불고 있는 반이민 신민족주의 역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기회 확대로 인한 피해 의식에서 비롯한 여성 혐오, 인도적 이민자 정책에 반기를 드는 배타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 기존 사회의 제도권에서 우위를 점하던 사람들이 약자에 대한 균형 정책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그 화살을 약자들에게 돌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각국의 정치인들이 이들을 이용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몇몇 정치인은 벌써 이런 극단적인 움직임을 '이용하기는 좋지만 다루기 어려운 세력'으로 파악한 듯 보인다. 트럼프는 당선 후 "(알트라이트는)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거리를 뒀고, 트럼프가 백악관 수석전략 자리에 임명한 알트라이트계의 카스트로, 스티븐 배넌 역시 자신을 '백인 민족주의자'가 아닌 그냥 '민족주의자'로 정의하며 비난을 피하고 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재특회 #넷우익 #일간베스트 #일베 #알트 라이트 #개구리페페 #페페 #국제 #미국 #극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