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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게이인 나에게 준 아주 특별한 선물

내 친할머니는 평생 아주 고되게 일하셨다. 8명의 자녀들에게 음식, 옷,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직업을 가지셨다. 알루미늄 제조사 알코아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하신 할아버지도 여러 직업을 가지셨다. 십여 년 전에 알츠하이머 병 합병증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은 결혼 후 56년 동안 같이 사셨다.

나는 작년 여름에 결혼했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작은 결혼식이었고 우리는 조촐하게 치르려 했다. 그게 잘 되지 않아 우리는 완전히 공개적인 식을 올렸다. 나는 일부러 가족들을 많이 초대하지 않았다. 내 혈육들은 형제 자매, 나와 가장 가깝고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들인 사촌 한 명, 이모 한 명이 전부였다.

나는 내 섹슈얼리티를 숨기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의 부탁으로 작은 고향 마을을 방문할 때면 늘 얼버무렸다. 내 남편 데이비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가족 모임이나 연말에 아무도 집에 데려가지 않았다. 사실 나는 가족들 중 유일한 ‘싱글’이었고, 명절에 우리 가족의 작은 집에 모일 때면 나는 소파에서 자곤 했다.

추수감사절에 할머니가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장식 용품 상자를 받았다. 살림을 줄이고 계셨는데 버리기는 싫으셨던 것이다. 그 중에는 내가 여러 해에 걸쳐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드린 물건들도 있었다.

추수감사절에 에릭의 할머니가 보낸 크리스마스 장식. 지난 1998년에 에릭이 할머니에게 선물한 것이다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메모를 적어 함께 보내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다. 내 이모들 중에는 여러 해 동안 ‘특별한 친구’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계시다는 건 가족들을 통해서 들었지만, 우리는 그 주제는 피했다. 찾아뵐 때면 얼버무렸고, 내 연애 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중성 대명사를 썼다.

추수감사절에 보내신 메모에서 할머니는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안 쓰고, ‘페이스북’도 안 하지만, 데비 고모가 내 결혼식에 대해 들려주었다고 쓰셨다. 할머니는 내 소식이 그리웠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데이비드를 만난 이후로는 작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게 전부였다. 데이비드를 만나기 전에는 매달 한 번 정도는 편지를 쓰려 했었다.

데이비드가 내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나는 데이비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뭔가를 적어 보낼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메모를 읽고 나서 나는 이를 악물고 말씀을 드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더 이상 숨을 수는 없다. 나는 우리 크리스마스 카드에 메모를 넣어 보냈다.

편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할머니,

더 빨리 편지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저는 브루클린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저 올해 여름에 결혼했어요. 결혼식은 아주 조촐했고 가까운 친구들, 엄마 아빠, 형제 자매들만 초대했어요. 내가 게이인 것, 게이 결혼에 대해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랐어요. 엄마, 아빠, 우리 가족에게 있어 편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아요. 로체스터에서 나이지리아 남자랑 결혼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들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어요. 데이비드는 사회복지사고 가끔 모델로 일해요. 저는 일 외에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데이비드와 함께 쇼에 자주 가요. 편지 더 자주 드릴게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회사에서 할머니에게 바로 보내도록 주문했으니 곧 받으실 거예요.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사랑해요,

에릭

에릭과 데이비드가 할머니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

내 새 성도 적었다.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 내 손은 떨렸다. 할머니는 어떻게 반응하실까? 내가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는 걸 엄마 아빠가 알면 뭐라고 하실까. 두 분 모두 아직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실망스키지 않았다. 곧 답장이 왔다.

할머니의 답장

에릭과 친구에게,

네가 보낸 선물 두 개를 12월 9일 금요일에 받았다. 아직 열어 보지 않았어. 크리스마스 선물은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열어보거든. 정말 고맙다. 근처 사는 손주들보다 너에게서 더 자주 소식을 듣는다. 앤서니는 2주에 한 번 정도 전화하고, 10월에 결혼식 때문에 왔을 때 나를 만나러 왔어.

나는 컴퓨터가 없고, 이메일, 페이스북을 쓰지 않아서, 데비 고모가 페이스북에서 네 결혼식을 보고 얘기해줘서 알았어. 너희 엄마도 말이 없더구나. 하루는 네 아빠가 혼자 찾아왔어. 네 아빠는 모든 걸 다 받아들이고, 자기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어.

내가 85년을 사는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는 상상도 못하겠어. 너희 할아버지가 11년 전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우리는 56년 동안 부부로 살았지. 신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만드셨고 받아들이기 더 힘든 일들이 있다.

여기선 잘 지내고 있고, 나는 매일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지낸단다.

지금도 월요일에는 카드를, 화요일에는 셔플 보드를 하고 한 달에 두 번씩 춤을 춰. 아일랜드 가수를 보러 온타리오의 세인트 캐서린스에 버스를 타고 다녀왔단다. 어제는 버스를 타고 모리스버그에 가서 연극을 봤어.

여기에 눈이 3인치가 내려서 아침 8시쯤에 차를 옮겼어.

사랑, 행복, 기도를 담아, 할머니가.

추신 – 다시 한 번 고맙다.

2016년 추수감사절에 할머니가 에릭에게 보낸 천사 캔들 홀더

내가 들었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안도감이었던 것 같다. 눈물도 조금 났다. 내 삶이 어떤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특히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다양성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편지가 ‘에릭과 친구에게’로 시작하는 것만 봐도 눈물과 웃음이 났다. 돌아가신 고모에겐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았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가족의 중요한 부분인 그 ‘친구’를 사랑한다.

나는 이제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 데이비드를 두고 갈 필요가 없고, 할머니가 오실 때 숨게 할 필요도 없어서 기쁘다. 데이비드가 나온 우리 가족 사진을 할머니에게 보낼 수도 있다. 데이비드를 만난 이후 이 모든 것이 내겐 골칫거리였다. 내 형제 자매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늘 가족 사진을 찍어서 할머니께 한 장 보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거짓말하는 게 싫다. 숨는 게 싫다. 이제 다 공개할 수 있다.

그게 할머니가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난 이제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참석하러 간다.

허핑턴포스트US의 A Special Gift From My Grandmothe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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