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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 징역구형이 지식인에게 주는 경고

지식인들이 이 문제가 사법처리로 가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진지하고 용기있게 대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지식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주변인들은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도 평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무시전략을 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점을 볼 때, 지식인들의 학문적 공론장 역할은 거의 하지를 못했고, 따라서 이번 사태가 사법처리로 이어진 데에는 지식인들의 책임방기가 있었고 이것은 지식인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12.27 09:26
  • 수정 2017.12.28 14:12
ⓒ뿌리와이파리

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지난 12월 20일, 1년 동안 끌어왔던 박유하 고소사건에 대한 결심공판이 있었다. 검찰은 박유하 교수에게 징역 3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박유하 교수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매춘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자발적으로 돈을 벌 목적으로 위안부로 갔다고 자신의 책에 서술했다"며 "이같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보았다.

또한 검찰은 "박 교수는 '매춘' '동지' '자발' 등 표현의 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반 대중을 상대로 출판한 도서에서 이 같은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사실을 왜곡했다"며 "이는 미필적 고의를 넘어서서 확정적 고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유하 교수의 변호인 측은 "검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박 교수가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서술했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박 교수를 비난한 것이 이 사건"이라며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변론했다.

최후진술에서 박유하 교수는 "책을 통해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법정에 들어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등 고소자들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이 구형으론 부족하다"며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박 교수를 엄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어쩌다가 이런 사태가 발생했으며 어떻게 처리되는 것이 바람직했을까? 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몇 가지 의견을 달고자 한다.

첫째, 할머니들이 박유하를 사실왜곡에 따른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일부 지식인들은 '학문의 자유'를 근거로, 사법처리를 반대하며 학문적 공론장을 통해 이 문제가 풀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절차적으로 학문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겠지만, 내용적으로 사실왜곡에 따른 명예훼손을 정당화할 만큼, 무한정한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 학문인가? 즉, '제국주의 성노예 피해할머니들'을 '제국의 위안부'로 만드는 게 학문의 자유인가 하는 고민이 든다.

또한 역으로 오죽했으면 궁박한 처지에 몰린 할머니들이 고소를 했겠는가? '학문의 자유'와 '학문적 공론장'을 구십 먹은 고령의 할머니들에게 요구하는 게 옳은 일인가? 학문의 자유와 학문적 공론장은 할머니가 아닌 지식인들의 몫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도 회의가 든다.

지식인들이 이 문제가 사법처리로 가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진지하고 용기있게 대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지식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주변인들은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도 평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무시전략을 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점을 볼 때, 지식인들의 학문적 공론장 역할은 거의 하지를 못했고, 따라서 이번 사태가 사법처리로 이어진 데에는 지식인들의 책임방기가 있었고 이것은 지식인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박유하 교수가 일본을 '제국'으로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제국의 위안부'로 본 것은, '제국'과 '제국주의'의 차이를 몰라서일 것이다.

둘째, 엄밀하지 못한 박유하 교수의 학문적 접근 태도에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박유하교수가 처음부터 학문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제국"(empire)과 "제국주의"(imperialism)를 구별해서, 일본이 "제국"인지, "제국주의"인지를 명확히 분별했다면, 일본을 '제국'으로 보거나 "성노예 피해 할머니"를 "제국의 위안부"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박교수가 인문학과 함께 사회과학적 학문적 적실성을 갖는 접근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당연히 책 제목을 "일본제국주의 성노예 피해자들"로 정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연 "제국의 위안부"인가? 아니면 "일본 제국주의 성노예 피해자"인가? 근대 일본은 '제국'일까? 아니면 '제국주의'일까? 이 문제가 학문적으로 간단치 않은 논쟁사항인 만큼, 심사숙고하고 철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근대 일본은 '제국'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제국주의'로 전락한 국가이다.

유럽 정치학계의 석학으로 <제국: 평천하의 논리>를 쓴 헤어프리트 뮌클러 교수와 아시아의 석학으로 <제국의 구조>를 쓴 가라타니 고진 교수 그리고 <제국의 미래>를 쓴 에이미 추아 교수 등에 의하면, '제국'은 '제국주의'와 확실히 구별된다. 그리고 이들 석학들은 공통적으로 근대 일본이 마이클 도일이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 부른 '문명의 단계'를 넘지 못해 제국단계의 도달에 실패하여 제국주의로 전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국'은, 일반적으로 로마 제국처럼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어 '강제적 팽창단계'에서 '문명의 공고화단계'로 이행에 성공하면서 민족과 지방정부 등을 차별하지 않아 주변국의 지지와 동의 및 추종에 의해 보편적 가치를 통한 지배에 성공한 황제의 나라이다.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이념'을 기초로 소중화를 자처하면서 명을 제국으로 추종한 사례를 보면, 제국과 주변국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조금 알 수 있다. 주변국은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제국의 품에 편입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팽창단계에서 문명의 공고화 단계로 이행하는 데 실패하여(즉,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지 못해) 주변국과 식민지 민중의 저항에 놓여 있는 나라이다. 즉, '제국주의'는 제국을 추구하지만 보편적 가치를 통한 지배에 실패한 황제의 나라다.

석학들은 공통적으로 근대 일본 정부는, '환대'와 '관용'과 같은 제국의 이념이 없이, 너무 짧은 지배경험 그리고 강제와 폭력사용으로 제국주의의 팽창단계를 밀어붙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등장한 위안부, 징용, 징집, 식민지배 등 국가폭력의 상처를 사후적으로도 보상하고, 정당화하며 합법화하는데 실패한 제국주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 있다.

박교수가 석학들의 일본 제국주의 규정을 수용했더라면 '제국의 위안부'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성노예 피해자'라로 규정하고, 그런 관점에서 근대 일본정부의 문제점을 봐야 했을 것이다. 특히, 박유하 교수는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번역할 만큼, 학문적 인연도 있었다는 점에서 석학들의 언급을 엄밀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제국과 제국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일본을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으로 보고 있는 박 교수의 내면화된 시각은, 근본적으로 피해 할머니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박 교수는 책속에서 '일본제국'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일본 제국주의'란 표현을 극도로 쓰지 않고 있다. 당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식민지배 청산의 해법도 일본이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이라는 시각에서 매우 소극적으로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 즉, 위안부 피해 문제를 '제국주의 일본정부의 구조적이며 미시적인 악행 그 자체'에서 다루지 않고, 아주 예외적인 일탈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결국 1910년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제병탄사건을 제국의 팽창관점에서 강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국제법상 하자가 없는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조치로 보느냐 아니면 문명의 공고화단계에 실패한 제국주의 관점에서 강제침탈에 의한 병탄으로 국제법상 불법적인 무효조치로 볼 것인가 하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당연 박교수는 '제국주의 일본'이 아닌 '제국 일본'으로 보고 있어 일본을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로 보는 피해할머니들과 충돌한다.

또한 일본을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으로 보는 박교수의 시각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도 피해 할머니들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박 교수는 1910년 사건을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의 시각에서 국제법상 합법적인 병합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 역시 제국주의의 불법침탈이 아니며 따라서 국가의 사죄와 배상이 불필요한 예외적인 도의적 문제로 보고 있다.

즉, 박교수는 1910년 식민지 지배가 일본의 합법적 조치였기 때문에, 국가와 정부차원이 아닌 정치인 개인 혹은 범국민적 차원에서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 위로와 사과와 보상으로 처리하면 되는 문제로 본다. 하지만 일본을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로 보는 피해 할머니들은 당연 국가의 불법성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법적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국가배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셋째, 박유하 교수의 철저하지 못한 기술적인 방법론의 문제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우선, 박교수는 위안부 피해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본 정부의 구조적 강제성과 함께 미시적 차원에서 강제 동원된 위안부의 존재 가능성을 일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박교수는 정작 국가의 강제동원의 범위를 철학자 '푸코'가 말한 명제대로, '훈육에 따른 자발적 수용과 선택'(궁박한 처지에서 강제매춘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길들여진 몸)까지 폭넓게 확대하지 않고, 사기·약취유인·강간의 경우로만 매우 제한적으로, 예외적 사례로만 다루려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박교수는 일본을 제국으로 보기에, 제국주의 국가가 저지르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일은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는 식민지 조선의 업자나 포주들이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박 교수는 자신의 시각과 반대되는 위안부 피해할머니와 '정대협'을 비판한다. 하지만 박교수는 자신의 시각이 옳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방법론적으로 엄밀하게, 성노예 피해 할머니라고 증언하는 사례수보다 위안부가 군인과 동지적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되는 '더 많은 사례수'를 반증해 보여주는 일이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박교수는 이것에 실패하고 있다. 실패한 배경은 박교수가 일본이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임을 입증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유하 교수는 왜 정대협을 비판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 정대협이, 박 교수의 시각대로 일본을 위한 병사의 위안과 애국을 위한 동지로서의 위안부가 아닌 식민지 민중을 압살한 제국주의 일본 정부를 위해 강제 동원되어 성노예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피해 할머니와 정대협은 일본이 합법적인 '제국의 동원'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악행'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폭로하며, 피해 할머니들이 제국주의 일본 정부에 의해 인권이 부서진 상처받고 벌거벗은 '호모 사케르'인 성노예자임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오랫동안 유학해서 쌓아올린 박 교수의 시각은 종전의 주류시각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적 시각과 다른 일본 주류적 입장을 내면화한 '제국의 시각'에서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 시각에서 박교수는 제국주의에 약탈당하는 성노예 피해자보다 제국에 봉사하는 위안부임과 미개한 조선을 문명화하는 일본(또 다른 식민지근대화론)을 입증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피해할머니들이 헐벗은 몸을 통해, 근대 일본은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라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민중들과 피해할머니들은 근대 일본 정부가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라고 헐벗은 몸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사법처리를 막지는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이번 사건의 교훈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다. 한국 지식인들의 진지한 반성과 반론 그리고 공론화를 기대한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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