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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의 하이재킹을 경계한다

시민혁명의 운명은 다음 대통령에게 달렸다. 국가 개조의 비전과 실천 의지를 가진 자만이 다음 대통령에 나설 자격이 있다. 비전도 전략도 없는 사람이 정치공학으로 대통령이 되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다. 대선후보들은 광장의 요구가 초현실적 비리와 부정에 가담 또는 용인한 박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광장의 요구는 그런 초상식적인 재앙의 토양이 된 낡은 체제와의 결별이다.

ⓒ뉴스1

튀니지에서 2011년 12월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이집트·리비아·예멘까지 포함한 4개 아랍 국가들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튀니지 대통령 벤 알리는 23년,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36년, 리비아의 카다피는 42년, 예멘의 압둘라 살레는 33년 장기독재를 누리다 비운의 종말을 맞았다. '아랍의 봄'에 가장 뜨거웠던 시민혁명의 '성지', 카이로의 광화문광장이 타흐리르광장이다.

'아랍의 봄'에 세계는 열광했다. 마침내 아랍·중동이 중세적 후진정치에서 현대적 민주주의로 이행한다는 기대가 높았다. 그렇게 세계를 흥분시킨 아랍의 시민혁명은 5년이 지난 오늘 어떤 모습인가. 한마디로 시민혁명의 환희는 어이없게도 무력과 혼란에 하이재킹당했다. 그중에서도 아랍·중동 정치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례가 이집트다.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서만 100~200명의 희생자를 내고 시민들이 쟁취한 민주주의는 군부 쿠데타에 하이재킹당했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 1000여 명의 피가 그 테르미도르(반동)의 제단에 뿌려졌다.

이집트의 '아랍의 봄'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로 무함마드 무르시를 대통령에 선출했었다. 무슬림형제당 소속인 무르시는 모든 주요 정책을 이슬람원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강행했다. 세속주의 성향의 시민들이 구름처럼 거리로 몰려나와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 틈을 타서 국방장관 겸 군 총사령관 압델 엘시시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재빨리 군복을 벗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96.9%라는 수상쩍은 득표로 당선되었다. 이집트는 지금 신사복을 입은 엘시시의 군사독재하에 신음하고 있다. 시민혁명이 성공한 것으로 보였던 나머지 세 나라, 리비아와 튀니지와 예멘은 부족 간, 지역 간 '내전'에 준하는 극심한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

시민이 쟁취한 민주주의를 군부가 가로챈 사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1960년 4·19 학생혁명은 박정희 소장의 군사 쿠데타가 하이재킹했다. 박정희는 대장 계급을 달고 군문을 떠나 63년 대선에서 상대 윤보선 후보를 15만6000표 차로 제치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79년까지 장기집권하다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시해되었다. 박정희 독재의 비극적인 종말로 열린 80년 '서울의 봄'은 전두환의 쿠데타로 막을 내리고 87년까지 그의 문민으로 위장된 군사독재가 계속되었다. 전두환의 '서울의 봄' 탈취는 300여 명 광주시민의 희생 위에 성취되었다.

'최순실 게이트'의 치욕을 청산하는 절차가 국회, 법정,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순간, 한국과 중동에서 일어난 시민혁명 하이재킹의 불길한 사례를 회고하는 것은 전국적으로 통산 700만 명이 참가한 우리의 촛불혁명의 성과가 허무하게 증발되는 사태를 경고하기 위해서다. 군부 쿠데타의 시대는 벌써 지났다.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을 기각해도 광화문광장의 성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촛불민심으로 탄핵된 박 대통령은 헌재에서 승소해도 그를 기다리는 것은 무늬만의 대통령, 대통령으로서의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대통령이라는 자리' 뿐이다. 그래도 헌재에 말한다: "헌법을 포함한 법의 궁극에 있는 것은 정치다. 그리고 정치는 광장에서 표출되는 그런 민심에서 출발한다."

시민혁명의 운명은 다음 대통령에게 달렸다. 국가 개조의 비전과 실천 의지를 가진 자만이 다음 대통령에 나설 자격이 있다. 비전도 전략도 없는 사람이 정치공학으로 대통령이 되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다.

대선후보들은 광장의 요구가 초현실적 비리와 부정에 가담 또는 용인한 박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광장의 요구는 그런 초상식적인 재앙의 토양이 된 낡은 체제와의 결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 권력분담형 개헌, 저질 패거리 정치 청산, 권력과의 유착에 길들여진 재벌의 뼛속까지의 개혁,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 한마디로 사회·문화·경제질서를 포괄하는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다.

내년 대선은 한국의 미래가 걸린 혁명 상황에서 치러진다. 혁명에 대한 테르미도르(반동)는 군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의 공범관계를 깡그리 부인하는 것도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반동의 몸부림이다. 새누리당 친박들, 더불어민주당의 친노 패거리들의 추태 수준의 정치도 시민혁명을 위협한다. 다음 대통령이 광장에서 나타난 어젠다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그거야말로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시민혁명의 하이재킹이다. 국민들도 2017 대선에서는 지역·당파·계층·남녀를 초월한 똑똑한 투표로 박근혜 같지 않은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중고생 수준의 판단 능력을 가진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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