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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짝다리 논란'에는 굉장히 익숙한 데가 있다

ⓒ오센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김유정의 ‘태도’ 논란

“최근 온라인으로 제기된 공식 석상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모두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의 태도에서 비롯된 논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항상 신뢰해주신 팬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사 역시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이와 관련해 많은 분들께 심려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지난 22일 아이에이치큐(iHQ)가 발표한 사과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들은 이렇게 고개를 깊게 숙이는 것일까. 이유를 알고 보면 허탈하다. 19일 열린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시사회 현장.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른 주연배우들, 감독과 함께 무대 위에 올라간 배우 김유정은 짝다리를 짚었고, 감독이 마이크를 잡고 관객에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손톱을 매만지다가 옆에 서 있던 김윤혜에게 제 손톱을 보여줬다. 누리꾼(네티즌)들은 이런 김유정의 모습이 함께 서 있던 차태현이나 서현진 등의 다른 선배 배우들에 비해 산만하고 무성의한 태도였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물론 그 순간이 보는 사람에 따라선 다소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있었던 다른 순간들은 회자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같은 날 옆 상영관에서 시사회를 본 한 누리꾼은, 김유정 태도 논란이 불거지자 무슨 소리냐며 자신이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동영상 속 김유정은 연신 웃는 낯으로 다른 배우들의 말에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는 팬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객석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이런 영상이 ‘자신이 아끼는 연예인의 잘못을 무작정 감싸고 보는 팬들의 실드’ 정도로 여겨지는 동안, 짝다리를 짚고 손거스러미를 정리하는 10여초는 인터넷에서 반복 재생된다. 찰나의 순간은 졸지에 본질로 돌변한다. 몇몇 기자들은 게으르게 해당 논란을 퍼 옮기며 트래픽 장사를 했고, 누리꾼들의 말 뒤에 숨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러니 행실을 바르게 했었어야지.

논란을 다룬 기사 밑에는 험악한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인기를 얻더니 건방져진 것”이라는 추측부터, “아는 기자가 있는데 원래 버릇이 없다더라”는 ‘카더라’ 통신, 홍콩 일정 중 얻은 감기 몸살로 일정을 취소했다는 것도 “죄다 동정표를 얻기 위한 수작이 아니냐”는 넘겨짚기, “돈을 그만큼 벌면 조금 힘들고 지치더라도 성의 있게 굴어야 한다”는 ‘받은 만큼 일하라’는 요구까지. 사과문이 나온 이후라고 댓글이 딱히 온화해진 건 아니다. “본인의 자필 사과문이 아니라 회사 명의로 사과문을 낸 걸 보니 진정성이 없다”는 말부터 시작해 “이번 일로 인성이 다 드러난 거다”라며 인성 문제까지 운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뭘 이런 걸 문제 삼느냐”는 다른 이의 지적에 “그럼 지금 내가 별거 아닌 일로 트집 잡는다는 이야기냐. 기분 나쁘다”고 대응하는 이도 있다.

혹자는 말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짝다리를 짚으면 태도 지적을 받는 게 당연한데 하물며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연예인이니 지적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서비스업에서 친절이 생명인 것을 모르느냐고.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쉬지 않고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에 가슴 아파하고,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못한 채 직장 상사의 사생활 침해와 부당한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우리 자신을 안쓰럽게 여긴다. 거의 모든 노동이 감정노동의 성격을 지니게 된 세태에 대해 분노하고, 남에게 굽실거리지 않고도 존엄을 챙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연예인이 나에게 감정노동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격분하는 것은 왜일까? “나는 네가 누리는 부와 인기를 가능하게 한 소비자 ‘대중’이니, 난 내가 받아야 할 몫을 챙기겠어”라는 소비자 심리와, “나는 감정노동 하는데 왜 쟤는 안 해?”라는 불행의 평등주의가 폭력적으로 결합된 결과가 아닐까? 모두가 감정노동을 덜 강요받는 세상으로 함께 가자는 게 아니라, 나도 강요받으니 너도 강요받아야 한다는 소모적인 평등주의. 그리고 그런 요구는 대체로 때리기 만만한 젊은 여자 연예인에게 몰린다.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스타덤에 오른 10대 여자 연예인과, 성격대로 지르는 것을 콘셉트로 대중을 만나 온 데뷔 35년차 남자 연예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문화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이경규가 방송을 하다 말고 피곤하다며 숫제 자리에 드러누울 때, 사람들은 그 행동에 ‘눕방’이라는 용어를 붙여가며 박수를 치고 웃었다. 그가 <제이티비시> ‘한끼 줍쇼’에서 시민과 대화를 나누려는 강호동의 집요함에 치를 떨며 시민의 말을 빨리 끊고 정리하려 들 때 사람들은 그걸 ‘빨리 찍고 빨리 쉬려는 극도의 실용주의’로 이해한다.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리엄 갤러거가 “음악은 ×나 예전에 끝났어.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야. 그러니까 빌어먹을 티셔츠나 사라고”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록스타의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으로 평가받을 때, 짝다리를 짚은 여자 연예인은 인성을 의심당한다. 왜 누군가의 육체 피로나 거침없는 언행은 용인되고 누구는 용인되지 못하는가?

이런 논란을 겪는 여자 연예인이 김유정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올 한 해 내내 우리는 대중과 미디어가 젊은 여자 연예인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려 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브래지어 없이 티셔츠 차림으로 사진을 찍은(것으로 추정되는) 설리에게 손가락질하며 ‘관심병 환자’로 몰아세웠고, 누리꾼의 댓글에 건조하고 단호하게 답을 한 하연수를 “둥글게 말했으면 별문제가 없었던 걸 까칠하게 굴어서 문제를 키운” 사람이라 평가했으며,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여배우’라는 단어는 여성혐오적 단어이니 사용하지 말자고 이야기한 배우 이주영에게 비난을 퍼붓는 한편, <문화방송>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개인기도 없고 숫기도 없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의 방송 태도를 질타했다. 젊은 여자 연예인은 신체와 옷차림, 언어와 생각, 대중 앞에서 재롱 부리는 것을 버거워하는 태도를 차례로 평가받았다.

남자 연예인이라고 대중으로부터 비판과 시정 요구를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제작발표회에서 여자 배우들에 대한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가 항의를 받고 자성과 학습을 비롯한 재발 방지를 약속한 배우 김윤석이나, 팬 사인회에서 자신에게 반말을 한 여자 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장난을 쳤다가 사과 요구를 받은 방탄소년단 등의 예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명백한 편견을 조장하는 언어 사용을 중단해 달라’거나 ‘타인의 신체 자결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게 본질이었다면, 여자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조금 다른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설리의 노브라 차림이, 아이린의 숫기 없음이, 김유정의 짝다리가 누구를 공격하거나 그릇된 사회적 편견을 조장한 적 있는가?

그렇다면 결국 인성까지 논하는 저 요구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늘 공손하고 고분고분하고 웃어야 하는 연예인이 감히 내 기분을 나쁘게 했어’인 것이다. 물론 노브라를, 개인기 없음을, 짝다리를 보고 기분이 나쁠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상대의 인성을 논하며 마녀사냥을 하는 일이 정당화되는 게 아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시즌3의 한 장면.(위 영상) 레드(케이트 멀그루)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파이퍼(테일러 실링)를 외면한다. 파이퍼는 레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 거짓말일 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많은 문화권에선 타인의 품위를 진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요.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한국에선 그런 걸 ‘기분’이라고 부른대요.” 파이퍼의 말을 들은 레드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러시아에선 그런 걸 ‘개소리’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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