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투표권' 없는 동물을 위한 정치 | 오바마, 트럼프 그리고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당선 후 이웃주민에게 선물로 받은 진돗개 새롬이, 희망이를 청와대로 데려가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새누리당과의 회의에서 비선실세 논란에 대해 '청와대 실세끼리 다툰다고 하는데, 진짜 실세는 진돗개'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이렇듯 알려진 '진돗개 사랑'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 중에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행보를 보인 사례는 없다. 오히려 2016년 여름에는 '반려동물 산업'을 육성해야 할 신산업으로 규정하고 동물경매업을 신설하고 반려동물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다고 발표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 이형주
  • 입력 2016.12.23 10:18
  • 수정 2017.12.24 14:12

지난 2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극과 대서양 일대 해안에서 석유 시추를 영구적으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미국 연방 정부가 소유한 북극 바다 면적의 98퍼센트에 해당하는 바다 41㎢에서 석유 시추가 금지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는 이번 조치로 북극곰, 바다코끼리, 일각고래 등의 야생동물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빙하가 사라지면서 위기에 처한 북극곰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이번 조치는 기후변화가 허구에 불과하며 환경규제가 일자리를 없앤다고 주장해 온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반환경정책을 대비한 행보라고 풀이된다.

빙하의 감소는 북극곰의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바마는 지난 8월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하와이 인근의 해양보호구역을 현재의 네 배인 150㎢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한반도 면적의 7개나 되는 규모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상업적인 어업과 채굴은 금지된다. 오바마는 임기 중 26건의 국립기념물을 지정하거나 확대했다. 최근에는 워싱턴의 세계야생동물기금(WWF) 빌딩 안에 퇴임 후 사무실을 마련했다고 전해져 본격적으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관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동물'과 '정치'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동물보호활동가나 단체가 정치적 견해를 갖거나 어떤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 혹은 비판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모든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동물과 정치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물의 처우를 보장하고, 부당한 이용이나 학대행위에서 보호할 수 있는 법 또한 다른 법과 마찬가지로 국회에서 의결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환경과 생태, 생명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는 그대로 정책에 투영되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동물에게 돌아간다.

동물의 복지와 권리 주장하는 네덜란드의 '동물당'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우리보다 앞선 서구사회에는 동물복지와 권리를 주장하는 정당이 존재하는 국가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네덜란드의 '동물당(Party for the Animals, Partij voor de Dieren; PvdD)'이다. 20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물당은 하원의원 150석 중 2석, 상원의원 71석 중 2석을 차지하고 있는 엄연한 원내정당이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하기도 했다. 동물당은 당의 목표가 정치적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치 활동을 통해 다른 당과 의회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사람-동물-자연당(People-Animals-Nature, PAN), 호주의 동물정의당(Animal Justice Party)도 각 한 자리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영국의 동물복지당(Animal Welfare Party), 미국의 인도주의당(Humane Party)을 비롯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핀란드, 사이프러스 등에서 동물의 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활동 중이다. 이 정당들이 단지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한 경제와 복지정책, 안전한 환경과 먹거리 보장, 직접 민주주의 실현 등 다양한 의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당뿐 아니라, 외국에서는 동물보호단체도 동물복지의식이 있는 후보를 검증, 지지하는 활동을 활발히 한다. 미국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경우 '휴메인 소사이어티 정치기금(Humane Society Legislative Fund)'을 운영한다. 동물관련 법률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기구는 민주당, 공화당, 무소속 등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의원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선거 때에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동물보호에 가장 우호적이라고 판단되는 후보를 선정하고 지지를 호소한다.

네덜란드 동물당의 로고

동물, 환경친화적 정치한 오바마 대통령, 과연 트럼프는?

대통령의 동물과 생명권에 대한 인식은 관련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친환경적 정책기조로 환경단체들의 환영을 받았다. 동물보호정책 면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2013년 퍼피밀(Puppy-mill,반려견 번식업장)을 규제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동물을 파는 판매자도 생산업 허가를 받도록 하고, 외국에서 들여온 강아지를 되팔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동물복지법 개정이 있다. 같은 해에는 핏불 등 맹도견의 사육을 금지하는 '특정견종에 대한 법률(Breed-Specific Legislation)'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많은 동물보호단체의 환영을 받았다. 미국질병관리본부(CDC)가 20년 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가 사람을 무는 확률과 특정 견종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특종 견종에 대한 차별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개와 관련된 사고는 특정 종의 사육을 금지하는 대신 '지역사회 중심의 접근'를 토대로 한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문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든 침팬지 종을 멸종위기종으로 등재해,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에서 침팬지를 사용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6년 8월 NIH는 소유하고 있던 실험용 침팬지를 모두 은퇴시켜 보호소에서 여생을 보내게 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에는 동물실험을 최소화하는 내용의 독성물질규제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강경한 정책을 펼쳤다. 2013년에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 미국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행정집행 명령권한)을 발휘해 야생동물 밀렵을 단속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대통령 밑에 태스크포스 팀과 자문위원회를 꾸렸다. 2015년 9월에는 중국 대통령과 상아의 국제거래를 종식시키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고, 2016년에는 상아의 미국 내 거래를 금지했다.

반려동물용품점에서 반려견 '보'의 생일선물을 고르는 오바마 대통령 © The White House

트럼프 당선인의 아들 도널드 주니어 트럼프((좌)와 에릭 트럼프(우)가 3년 전 아프리카에서 사냥한 표범의 사체를 들고 찍은 사진

반면, 2016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에는 선거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기후변화를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환경규제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나 경쟁자였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는 달리 동물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의 두 아들은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해 전리품을 가져오는 '트로피 사냥'을 즐기며, 직접 죽인 코끼리, 표범 등 멸종위기종 동물의 사체를 자랑스럽게 들고 찍은 사진을 공개해 대중의 비난을 받아 왔다.

당선 후에도 정치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행사의 일환으로 1백만 달러를 지불하고 트럼프의 아들들과 아프리카로 트로피 사냥을 떠나는 이벤트를 내걸어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농무부(USDA) 인수위원회 책임자로 반려견 번식업, 서커스 등에 대해 '미국의 전통적 문화'라며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온 기관의 기관장을 임명해 동물보호와는 전면적으로 대치되는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에너지 환경 분야에도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인사들을 내정했다. 환경보호청(EPA) 청장 내정자 스캇 프루잇은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변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소송을 주도한 인물이다.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던 박대통령, 동물보호 행보는 '전무'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당선 후 이웃주민에게 선물로 받은 진돗개 새롬이, 희망이를 청와대로 데려가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새누리당과의 회의에서 비선실세 논란에 대해 '청와대 실세끼리 다툰다고 하는데, 진짜 실세는 진돗개'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2015년에는 새롬이와 희망이가 낳은 강아지 다섯 마리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지인에게 분양한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17일 경향신문는 청와대가 박대통령의 반려견인 진돗개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하라고 압력을 넣어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IOC를 설득하러 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렇듯 알려진 '진돗개 사랑'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이 임기 중에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행보를 보인 사례는 없다. 오히려 2016년 여름에는 '반려동물 산업'을 육성해야 할 신산업으로 규정하고 동물경매업을 신설하고 반려동물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다고 발표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설악산에 서식하는 산양의 보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밀어붙이는 반환경적 정책으로 비난 받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 박근혜 페이스북

2016년 우리는 또다시 앞으로 5년간 나라를 맡길 사람을 뽑게 된다. 정부의 정책이 동물의 생사와 직결되는데도 불구하고, 동물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믿는 정치인을 검증해 투표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후보자에게 동물복지 정책을 요구하고, 단지 표심을 얻기 위한 허언이 아니라 당선되고 나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야 한다.

꼭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동물보호법 등 동물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은 어렵게 발의되더라도 다른 안건에 밀려 논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 5월 SBS '동물농장'을 통해 '강아지 공장'의 참혹한 현실이 알려져 큰 논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발의된 14건의 동물보호법 개정안 중 단 하나도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전화나 이메일, SNS등을 통해 동물관련 법안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동물의 행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생명 존엄성이 짓밟히는 사회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인간동물도, 비인간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물건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생명을 위한 한 표'를 준비하자.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동물 #동물복지 #오바마 #박근혜 #트럼프 #동물당 #이형주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