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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년 전 이완용을 찌른 이재명의 유언이 다시 주목받은 이유

107년 전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사건이 일어났다.

명동성당.

이날 이완용 당시 총리대신은 명동성당을 방문해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참석했다. 오전 11시 무렵 그는 성당 문을 나섰고 그가 인력거에 타자마자 한 남성이 이완용을 향해 달려들어 세 차례 칼로 찔렀다.

남성은 이완용이 쓰러지자 만세를 부른 뒤 담배를 피웠다. 이 남성은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이재명이다.

딱 107년 전 오늘 서울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는 만세를 부른 직후 현장에서 체포됐고 이듬해 사형을 선고받은 뒤 순국했다.

당시 이재명은 이완용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이완용은 중상을 입은 채 숨이 붙어 있었다. 이완용은 중태를 입었으나 수술 후 이듬해 2월 14일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이재명은 친일 매국노들을 암살하는 것이 국권 수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완용은 그의 실질적인 첫 목표였다.

역사적인 날, 역사적인 사건을 기리자는 뜻이었을까? 22일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 의사'가 화두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기개있는 행동만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순국 직전 남겼다는 유언이 107년이 지난 지금 놀라운 우연을 불러왔다는 이유가 더 컸다.

"나의 생명은 빼앗더라도 나의 충성된 혼은 뺏지 못한다.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생전의 한을 기어이 설욕하리라."

그런데 마침 12월 22일이 이재명 성남시장의 생일이었던 것(!).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겠다"는 그의 유언과 묘하게 궤가 맞았던 것이다. 대선 후보로서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이 이전보다 높아짐에 따라 107년 전의 사건이 새롭게 주목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금도 명동성당에는 이날 의거의 내용을 적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h/t 뽐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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