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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난동과 '고객은 왕'

블랙 컨슈머란 단어가 생긴 지도 몇 년 되었는데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일선의 직원들에게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방어권은 주지 않고 블랙 컨슈머들이 요구하란 대로 다 들어주는 식으로 조용히 잠재우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러니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들이 줄어들 리가 있나. 오히려 더 장려하는 쪽으로 인센티브가 형성되어 '진상짓'을 '스마트한 소비'라고 포장하는 족속들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결국 현장의 직원에게 자기 방어권이 없다는 점이 이번 일의 가장 큰 문제다. 만약 그러한 일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 권리를 가지고 회사에서 책임을 져준다면 어느 직원이 거기서 단호하게 나서지 않겠는가?

  • 김영준
  • 입력 2016.12.22 05:55
  • 수정 2017.12.23 14:12

모 중소기업 아들래미의 기내 난동이 화제(?)이다 보니 몇몇 분들께서 모 항공사의 승객 진압 매뉴얼이 없는 점과 한국 항공사들의 승무원을 뽑는 기준에 대해서 문제를 지적하신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해당 항공사만의 문제도 아니요 승무원 채용의 문제 또한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이것은 한국 기업들(+공공기관까지)의 문화와 노동자에 대한 보호권 미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다.

한국 기업들이 대고객 서비스라는 마인드가 생겨난 것이 아마 90년대 즈음부터일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일선에서 고객들과 접하며 마주하는 직원들에게 서비스 교육이라고 가르친 것이 소위 말하는 '고객은 왕'이다.

이게 그저 관념적인 용어로 쓰인 게 아니라 정말로 중세시대 왕처럼 모시고자 하는 경쟁으로 이어져 자사 직원으로 하여금 소비자에 대한 굴종만을 강요하고 교육했다.

기업에서 중요한 일 하는 사람들이 자기 파트를 일컬어 '전쟁터에 있다'라고 표현하지만 일선에서 대고객 서비스를 행하는 직원의 경우 정말로 그 전쟁터의 최전선에 위치한 소총수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경영을 지휘하는 경영진들은 최전선의 고충 따위는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뒷선에 앉아서 '나가서 목숨을 바쳐라'라는 식으로 지금의 서비스업과 과잉 친절을 강요한 셈이다.

이러한 직종의 대표주자가 바로 콜센터 상담사이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하루에 수 많은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것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희롱과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직원들에게 고용기업은 그 방어할 권리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성희롱과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해 고객에게 '끊겠습니다'라고 했다간 내부 징계 + 재계약 거부라는 막대한 불이익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에 콜센터 상담사란 직업이 생긴 지가 몇 년인데 이제서야 겨우 몇몇 기관에서 상담사들이 자기방어를 허락하는 내부 매뉴얼이 마련된 상황이다.

다른 서비스업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블랙 컨슈머란 단어가 생긴 지도 몇 년 되었는데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일선의 직원들에게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방어권은 주지 않고 블랙 컨슈머들이 요구하란 대로 다 들어주는 식으로 조용히 잠재우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러니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들이 줄어들 리가 있나. 오히려 더 장려하는 쪽으로 인센티브가 형성되어 '진상짓'을 '스마트한 소비'라고 포장하는 족속들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자, 다시 기내 난동 사건으로 돌아와보자. 승무원이 그 난동을 부린 사람에게 테이저건을 겨누고 있었지만 아마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테이저건을 사용하게 따로 교육을 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했다가 만약 소송 걸리면 회사 이미지에도 문제 있고 그런 식으로 기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힘 센 직원이 제압을 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팔이라도 잘못 꺾어서 그 진상을 부린 사람이 진단서 끊어서(2주짜리 진단서 받기 참 쉽다) 클레임이라도 걸고 직원과 회사에 소송을 걸면 해당 직원은 참 피곤해진다.

결국 현장의 직원에게 자기 방어권이 없다는 점이 이번 일의 가장 큰 문제다. 만약 그러한 일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 권리를 가지고 회사에서 책임을 져준다면 어느 직원이 거기서 단호하게 나서지 않겠는가?

이 일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의 고루한 서비스 마인드가 일소되기를 바라며 서비스 최일선 직원에게 친절과 고객에 대한 굴종을 강요하는 문화가 사라지길 바라는 바이다. 꼭 보면 전쟁을 모르는 애들이 전쟁과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것처럼 서비스 모르는 임원들이 이런 굴종에 집착하더라. 언제까지 치킨호크로 살 것인가?

그리고 지난 11월에 김부겸 의원이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아는데 법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보호장치가 더 생겨서 지금의 기형적인 서비스가 아닌 서비스 직종의 사람과 고객이 1:1로 대등하게 서비스를 주고 받는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

만약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특히 기업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은 기내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계속 벌어지고 반복될 것이다. 그것은 승무원에게 테이저 건과 수갑을 준다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다.

덧붙임 1)

하긴 로열 패밀리가 자사 직원을 일하는 중에 무릎 꿇리는 회사인데 그런 교육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있었다면 그 로열 패밀리부터 제압했었겠지.

덧붙임 2)

많은 분들이 기내 난동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있지만 아마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알 거다. 저 정도가 딱 한국의 표준이라는 것을.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요상하게도 한국의 소비자들은 돈을 냈다는 이유로 무제한적인 권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돈을 내고 서비스를 제공받았는데 내가 거기서 뭘 더 얻지 않으면 '나의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아마 대부분은 자신은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 믿고 있기에 본인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 분들도 이번 기내 난동사건을 보며 '저 나쁜 놈'하고 열심히 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기내 난동사건의 주범이 자신이 뭘 잘못하는지도 모르고 저지른 것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어머니, 아버지, 당신 그리고 나다. 원래 사람이란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가까운 사람에게 관대한 법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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