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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장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달랐다

장인(匠人)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오래 전에 사라진 기술자들을 느낌도 나고, 명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2010년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남자주인공 김주원(현빈 분)이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트레이닝복”이라고 한 대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저자가 있다. 바로 노동 및 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리처드 세넷 교수다. 그의 책 ‘장인’ 에서“장인의식(craftsmanship)은 면면히 이어지는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며,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려는 욕구다. 장인노동은 숙련 육체노동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 스며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의사, 예술가들의 일에도 장인의식이 살아있다. 아이를 기르는 일도 장인의 실기(實技, craft)처럼 연습해서 숙달하면 더 나아진다.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장인은 어떤 역사를 거쳐 현재의 우리에게 도달한 것일까? 그들의 작업장도 함께 살펴보자.

1. 중세 장인의 작업장

“중세 장인의 권위는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데 있었다. 초기 기독교는 처음부터 장인을 존엄한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리스도가 목수의 아들이었다는 것은 신학자에게나 평신도에게나 준엄한 사실이었고, 그리스도의 초라한 탄생은 신이 뜻하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징표였다. …. 중세 초기에 기독교도 장인이 기거하던 곳이자 마음의 고향은 수도원이었다. 예컨대 지금의 스위스 땅에 자리 잡고 있는 성 골 대수도원(Abbey of Saint Gall)과 같은 곳이다. …. 12~13세기에 도시가 발달하자 작업장은 예전과 달리 성(聖)과 속(俗)이 뒤섞인 공간으로 변했다. …. 장인들의 동업조합인 길드는 왕은 죽지 않는다는 왕권 영속성의 원리를 세속적인 차원에서 실현한 자치단체였다. …. 종합적으로 볼 때, 중세 장인은 지금의 우리 시대와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그는 일거리를 찾아 이주 노동자 생활을 했지만, 기능의 공유를 통해서 안정성을 추구했던 면도 있었다. 그의 기술은 윤리적 행동과 직결돼 있었다. …. 하지만 이 중세 장인의 작업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세 작업장이 몰락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위의 문제였다.” (책 ‘장인’, 리처드 세넷 저)

중세 시대 장인들은 기독교의 수도원에서 작업을 했다. 그 후 도시가 발달하자 종교와 속세가 섞인 곳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작업장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기술이 전수되는 과정이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에서 예술이 갈라져나오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장인이 예술가가 되어갔다.

2. 예술가의 등장

“첼리니의 이야기에서 실기와 예술의 대조적인 모습을 사회학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다. 첫째, 이 두 가지는 행위 주체가 다르다. 예술은 일을 지휘하고 좌우하는 행위자가 한 사람인 반면, 실기(직업으로서의 실기)는 행위자들의 집단이 주체다. 둘째, 시간이 다르다. 예술은 돌발적인 반면, 실기는 천천히 변화한다. 셋째, 자율성 면에서 놀라우리만큼 확연하게 구분된다. 홀로 일하는 독창적인 예술가는 장인 집단에 비해서 별로 자율성을 누리지 못했다. 몰이해를 당하거나 완고한 권력에 더 많이 의존해야 했던 만큼, 더 취약한 존재기반에서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소수의 직업적 예술가 대열에 끼지 못한 채 예술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 르네상스기 예술가는 독창성을 홀로 걷는 길을 열었지만, 그들에게는 작업장이 필요했다. 조수들도 마스터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분명히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새로 등장한 마스터의 실력은 실기 자체가 아니라 남 다른 특징과 독창성으로 내용이 변했다.”(책 ‘장인’, 리처드 세넷 저)

이전의 장인들은 실기를 중요시했다. 여기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갈라져 나왔다. 이들은 실기가 아닌 예술을 하였다. 독창성을 주장하는 이들이었는데,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불사해야 했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한 예술가들은 거친 사회로부터 잠시 피해있으면서 충전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작업장을 사용하였다.

3. 지식(명인 비밀)의 단절

“…. 악기 제작의 명인들을 보면,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나 과르니에리 델 제수(Guarneri del Gesu)와 같은 마스터의 비밀은 실제로 그들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묻혀버렸다.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끝없는 실험을 통해서 이 명인들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들의 작업장에 있었던 어떤 특징이 지식 이전을 가로막았던 게 분명하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바이올린 제작을 시작하기 한 세기 전에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가 현악기의 울림통 앞판과 뒤판, 줄감개 상자를 깎아 만드는 제작 표준을 확립했는데, 스트라디바리도 이 전통을 따랐다. ….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죽기 전에 가업을 두 아들, 오모보노(Omobono)와 프란체스코(Francesco)에게 물려줬다. 두 아들은 성년에 들어서도 결혼마저 잊은 채 아버지의 수제자 겸 상속인으로 그 집에서 살았다. 이들은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가업을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스트라디바리는 두 아들 중 누구에게도 악기 명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했고, 가르칠 수도 없었다. …. 이러한 현상을 집약해 말하면, 마스터의 개성과 독창성이 좌우하는 작업장에서는 암묵적 지식이 거의 지식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일단 마스터가 죽고 나면 그의 총체적인 작업 속에 결합해둔 온갖 실마리와 작업조치, 통찰력을 다시 복원할 수 없다. 그더러 암묵적 지식을 명문화해 놓으라고 요구할 방도가 없는 탓이다.”(책 ‘장인’, 리처드 세넷 저)

장인이 자신의 지식을 전수하곤 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명품 악기들이다. 아버지는 명품을 만들어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그것을 잇지 못했다. 장인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제대로 풀어놓지 않으면, 후대로 기술이 전수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오히려 이들이 말없이 침묵하고 있을 때 더욱 권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장인이 설정한 절대적 표준과 경험적 표준 두 가지를 달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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