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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머 아이콘인 배우 자자 가보가 99세로 영면하다

  • 김도훈
  • 입력 2016.12.19 11:08
  • 수정 2016.12.19 11:09

자자 가보가 99세의 나이로 숨졌다. 배우이자 사교계 명사였던 가보는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TMZ가 보도했다.

전성기 시절 가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하나였다. 보란듯이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섹시한 이미지를 가졌던 그녀는 60년 이상 대중의 시선을 받으며 살았다. 가보는 말년에는 세상의 이목에서 물러섰지만, 옛 헐리우드의 매력을 지닌 존재로 남았다.

군인과 유럽 보석 상속녀의 딸로 태어난 사리 가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917년 2월 6일에 태어났다(그녀의 출생 년도는 커리어 내내 논란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자자라고 불렀던 가보는 1934년에 유명한 오페라 가수 리하르트 타우버의 눈에 띄어 수퍼 스타덤의 길에 올랐다.

가보는 ‘러블리 투 룩 앳’(1952), ‘물랑 루즈’(1952), ‘악당의 죽음’(1956), ‘외계에서 온 여왕’(1958), 오손 웰스의 ‘악의 손길’(1958) 등으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지만, 가장 유명해진 것은 당시 헐리우드의 최고 스타들과 떠들썩한 로맨스를 벌여서였다.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고급 창녀’라는 괴상한 별명이 붙기까지 했다.

그녀의 남편 9명 중에는 – 가보는 8명이라고 주장했다 – 터키 외교관, 호텔계의 거물 콘래드 힐튼(함께 프란세스카 힐튼을 낳았다), 배우 조지 샌더스 등이 있다. 션 코너리, JFK, 리처드 버튼 등과 염문을 뿌리기도 해, 킴 카다시안이라도 부러워할 정도로 태블로이드를 장식했다.

“모든 여성은 평생 최소 한 번은 결혼해 봐야 한다. 그건 필수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미세스’가 되는데, 결혼이 잘 안 풀린다 해도 그걸 뺏기진 않기 때문이다.” 가보가 1970년에 낸 책 ‘남자를 잡고, 지키고, 없애는 법’에 쓴 내용이다.

화려한 영화 출연과 유명한 로맨스들 외에도, 가보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요기 베라와도 같은 재치있는 명언들로 인기를 얻었다. “나는 훌륭한 주부(housekeeper)다. 남자와 헤어질 때마다 그의 집(house)을 갖는다(keep).”, “나는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 남성을 원한다. 백만장자에게 바라기엔 너무 무리한 것인가?” 등이다.

가보의 특이한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아마 1989년의 체포였을 것이다. 흰 롤스로이스 코니시를 무면허로 몰고 가던 그녀를 감히 멈춰 세운 비벌리 힐스 경찰을 때렸던 것이다. 그녀는 감옥에서 사흘을 보냈고, 2년 뒤 합의를 거쳤다.

1986년에는 마지막 남편이 된 프레데릭 폰 알할트 왕자와 결혼했다. 독일 왕실의 양자였고 그녀보다 약 서른 살이 어렸다. 결혼 생활을 하며 그녀는 안할트 공주, 색소니 공작 부인의 지위를 유지했다. 언제나 되고 싶어했던 공주가 된 것이다.

2002년에 가보는 교통 사고로 크게 다쳐 여생을 휠체어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사고로 건강이 크게 나빠지게 되었다. 3년 뒤에는 뇌졸중을 앓기도 했다. 2011년 1월에 의사들은 혈전 감염 때문에 그녀의 오른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 뒤로 그녀는 침대에서 생활하며 폰 안할트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2016년 2월에 가보는 영양보급관과 관련된 폐 감염으로 다시 입원했다. 폰 안할트의 도움으로 그녀는 집에 돌아가 3월의 관 교체 수술을 준비했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지만 폰 안할트는 그녀가 100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우리의 집에서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싶다. 그녀가 자기 어머니처럼 살아가길 바란다. 그녀의 어머니는 103살까지 사셨다.” 그가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에 한 말이다.

가보는 평생 자신의 딸과 쉽지 않은 관계였다. 딸 프란세스카는 2015년 1월에 67세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프란세스카가 죽기 5년 전, 폰 안할트는 자신과 자자의 명의로 프란세스카를 사기와 위조로 고소했다. 가보가 법정에 출석하거나 자신의 외동딸을 고소하고 싶다는 진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해 나중에 고소는 취하되었다. 프란세스카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공주가 되고 싶어서 사악한 여왕과 결혼했다.”

자자 가보는 개인적인 삶이 화면 속의 연기 만큼이나 흥미로운, 셀러브리티의 새 시대를 열었다. 말년에는 건강 문제와 비극으로 얼룩졌지만 – 가까운 친구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죽자 그녀는 “다음은 나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녀는 힘들여 만들어 낸 아름답고 태평한 헝가리 공주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아름답거나 똑똑한 것보다도 여성에게 더욱 중요한 건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가보가 쓴 글이다.

이제 와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 그녀는 즐거움을 많이 주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허핑턴포스트US의 Zsa Zsa Gabor, Actress And Glamour Icon, Dead At 99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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