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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매일경제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승용차에 장착된 타이어 한 개(본)가 지면에 맞닿는 면적은 엽서 한 장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엽서 네 장 면적으로 자동차 운전의 상당 부분이 결정되는 셈이다. 타이어는 애초에 러버 휠(고무 바퀴)로 불리다가 타이어(tire), 즉 피곤하다(tired)로 이름이 바뀌었다. 자동차 가장 아래에서 온갖 피곤함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이어의 조상 격인 바퀴는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인간은 왜 바퀴를 발명했을까? 그리고 바퀴의 발명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바퀴의 역사는 만만치 않다.

1. 콜럼버스 항해 전 미주 사람들은 바퀴를 사용하지 않았다.

“북미와 남미에 살던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항해 전만해도 바퀴를 운송 기관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짐을 직접 등에 져 나르거나, 트래보이스(Travois)라는 기구에 실어 날랐다. 트래보이스는 막대 한 쌍을 간격을 두고 개에 묶어서 땅 위로 끌고 가게 하는 장치였는데, 안데스 지방에서는 라마로 짐을 나르기도 했다. 인류학자, 고고학자, 역사학자를 비롯해 콜럼버스 이전 사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바퀴 달린 이동수단이 없는 이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물었다.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킨 문명이 바퀴처럼 귀중한 것을 어떻게 발명하지 못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바퀴 달린 장난감은 만들 줄 아는 상황에서 말이다.”(책 ‘바퀴, 세계를 굴리다’, 리처드 불리엣 저)

참 특이한 경우다. 남부 멕시코 지역에서 1900년 전에 점토로 만든 강아지 모양의 장난감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분명 바퀴를 이용하였다. 운송수단으로 바퀴를 사용하지 않은 멕시코 남부의 트레스 사포테스(Tres Zapotes) 지방에 살았던 올메크(Olmec)인이 그랬다. 도시 생활을 하고 기본적인 문자와 역법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올메크인 외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바퀴를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수단을 활용해 짐을 나르는 일은 생각보다 흔했다.

2. 메소포타미아에는 바퀴가 있었지만 이웃 나라인 이집트에는 없었다.

“두 문화가 서로 접촉했고 “이 시기 근동의 복잡한 혁신”을 공유했음이 드러났는데도, 기원전 3000년에서 1300년 사이에 이 두 사회 중 오직 하나에만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존재한다면, 피곳의 주장은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바퀴가 있었지만 이집트에는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제안하는 바는, 메소포타미아의 바퀴는 왕이나 사제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탄생했지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집트에서도 파라오는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것보다 훨씬 거창한 사원과 피라미드를 짓도록 명령하여 그 위용을 과시했다. 또한 넓고 잔잔한 나일강은, 때때로 파라오와 함께 묻기도 하는 왕실 배와 바지선에 장대한 길을 제공한다. 그러나 급류가 몰아치는 봄철 홍수는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왕실 배가 다니기에 지나치게 사납게 만든다.”(책 ‘바퀴, 세계를 굴리다’, 리처드 불리엣 저)

흥미로운 지적이다. 대개 바퀴는 경제적 이유로 사용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설명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바퀴가 과시와 의례를 위해 사용된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행사를 치르면서 행렬이 이동하는 것을 떠올리면 바퀴의 역할이 이해가 간다. 다만 이집트의 경우 굳이 땅에서 그것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일강이 워낙 넓고 고요했기 때문에 안전한 길 역할을 담당했다.

3. 중세 시대 네 바퀴 달린 수레는 여성만 이용했다.

“1400년 유럽의 귀족은 성별에 따라 사륜수레를 타는 일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노약자가 아니라면 남성은 말을 타고 바퀴를 피했다. 그러나 귀족 여성은 여행을 할 때면 수행인과 함께 사륜수레로 이동했다. 이런 구분은 15세기와 16세기를 지나는 동안 사라진다. …. 중세시대 유럽의 운송수단을 연구하는 학자는 여성만 사륜수레에 타고 남성은 타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 그러나 왜 16세기를 전환점으로 하여 세기말 무렵 마차가 귀족 남성들에게 점점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역사서는 없다. 일부 저자는 새 기술이 16세기 이동수단을 더 기능적이고 안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책 ‘바퀴, 세계를 굴리다’, 리처드 불리엣 저)

1600년 무렵 귀족 남성들도 여성들처럼 마차를 탔다.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로 사정이 여전히 안 좋았기에 이런 현상이 안락함 때문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이 마차를 타기 시작했을까? 1529년 오스만의 첫 비엔나 포위 작전 이후로 유럽은 전장이 된다. 새로운 화약무기가 등장했고, 기사들은 쇠퇴하였다. 이때 사륜수레를 원형으로 배치하여 포대로 사용하는 후스파의 전법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차가 빠르고 가벼운 남성적인 이동수단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전쟁 이후로 귀족 남성들이 마차에 관심을 갖고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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