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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대선' 87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문재인(등 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대선후보가 권력을 잡고 싶어하는 욕망-욕구를 인정-존중해야 한다. 그것을 전제로 '양자가 합의가능한' 해법을 시도해야 한다. 정치연합은 본질적으로 '지분연합'이다. 지분연합을 전제하되 더욱 진일보한 형태는 가치와 정책에 기반한, 공동정부이다. 문재인 후보는 '87년 김대중'이 아니라, '97년 김대중'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1) 상대방의 지분을 보장하는 + 2)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따위가 아니라) 정치적 담판에 의한 + 3) 가치와 정책의 공통점에 기반한 공동정부의 구성이다. 1997년 김종필은 차기 대통령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했다. 2017년 안철수는 다르다.

  • 최병천
  • 입력 2016.12.18 07:29
  • 수정 2017.12.19 14:12
ⓒ연합뉴스

87년 6월 항쟁의 핵심 투쟁목표는 '직선제'였다. 87년 6월 항쟁 이전에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일종의 시민배심원단에서 뽑았다.

근데 이 회의체 구성원의 임명권을 전두환이 갖고 있었으니, 전두환이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임명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85년 총선에서 당시 선명야당을 표방한 신한민주당(신민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총선공약으로 내걸고 돌풍을 일으킨다. 이후 직선제 개헌을 둘러싼 개헌 국면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호헌을 선언한다. 그게 '4.13 호헌 조치'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호헌(=독재)세력과 개헌(=민주화)세력의 일대 격전이 벌어지게 된다. 그게 바로 6월 항쟁이었다. 박종철 열사 고문은폐사건과 시위 중 최루탄에 사망한 이한열 열사 문제는 이런 정치적 맥락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초기에 '직선제 개헌' 국면을 주도한 이들은 85년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킨 김영삼-김대중이었다. 그리고 이후 85년~87년까지 학생운동과 시민들이 가세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

광장-촛불-가투 민주주의는 구체제 세력을 무너뜨리는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일은 할 수 없다. 그것은 '국본'이든 '촛불시민회의'든 '촛불 시민투쟁위원회'든 명칭과 형식을 무엇으로 하든 마찬가지이다.

구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는 1)정치권력과 2)비전-컨텐츠-솔루션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특히 첫번째 '정치권력'의 문제는 오직 정당-대통령 후보만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촛불시민의회'를 추진하던 와글이 정말 기존 정당에 의한 촛불의 배신을 걱정했다면, 본인들이 평소 소개했던 것처럼, 스페인의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스스로 정당을 만들었어야 한다. 촛불이며 정당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조직은 없다. 둘 중 하나가 돼야 한다. 촛불이면 촛불, 정당이면 정당. 다만, 한국은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처럼 비례대표 의석비율이 높지 않기에 '촛불당'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결국 '정당'을 바꿔야 한다.)

8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은 따로 출마했다. 당시 김대중은 '4자 필승론'을 주장했다. 노태우가 TK(대구경북), 김영삼이 PK(부산경남), 김종필이 충청, 그리고 자신이 호남+수도권에서 득표할 것이기에 승리한다는 논리였다.

87년 12월 대선은, 노태우 36%,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로 끝났다. 결국 국민들 1/3 살짝 넘는 지지를 받은 노태우가 당선됐다. '군부독재 세력'이 '민주적'으로 재집권하는 순간이었다.

2016년 촛불혁명의 임무는 박근혜 탄핵과 개혁의 에너지를 만드는 것까지이다. 나머지는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그리고 대선 후보들의 몫이다.

87년 김영삼이 양보하는게 옳았을까? 아니면 김대중이 양보하는게 옳았을까? 둘 다 해답이 아니다. 김영삼-김대중이 권력을 잡고 싶어하는 욕망-욕구를 인정해줘야 한다.

2017년 대선의 경우, 선택가능한 경우의 수는 4가지이다.

1) 첫째, 처음부터 아예 '패배를 각오하고' 문재인-안철수는 따로 나온다. 반기문이 승리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2) 둘째, 문재인, 안철수가 따로 나온다. 그리고 반기문에게 이기는 것은 '운-재수'에 맡긴다. 패배하면 '문-안 책임'이 아니라 운-재수가 없어서라고 평가한다.

3) 셋째, 지지율이 앞서는 '문'은 양보할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안'을 온갖 협박-욕설-비난을 퍼부어 양보를 요구하며, 주저앉히려고 노력한다. 물론, 안철수와 국민의당도 피선거권이 있지만 그런 민주주의적 원칙은 전혀 게의치 않고, 파쇼적 분위기를 조성해서 게 거품을 물며 압박하고, 만일 정권교체에 실패하면 다시 안 후보 때문에 정권교체에 실패했다고 '저주'를 퍼붓는다.

4) 넷째, 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이 그랬던 것처럼, 대선후보 지지율이 5% 미만이던 김종필을 존중해서 내각 구성권의 약 1/3을 보장해주는 정치적 담판과 합의를 하는 경우이다.

문재인(등 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대선후보가 권력을 잡고 싶어하는 욕망-욕구를 인정-존중해야 한다. 그것을 전제로 '양자가 합의가능한' 해법을 시도해야 한다.

정치연합은 본질적으로 '지분연합'이다. 지분연합을 전제하되 더욱 진일보한 형태는 가치와 정책에 기반한, 공동정부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의원의 정책 중 창업국가론, 공정거래 강화, 관치교육(=교육부) 해체 및 교육자치권 강화, 혁신형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정책 생태계 조성 등은 민주당의 가치와 정책에 어긋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진일보한-구체적인 정책들이다.

문재인 후보는 '87년 김대중'이 아니라, '97년 김대중'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1) 상대방의 지분을 보장하는 + 2)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따위가 아니라) 정치적 담판에 의한 + 3) 가치와 정책의 공통점에 기반한 공동정부의 구성이다.

1997년 김종필은 차기 대통령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했다. 2017년 안철수는 다르다.

2022년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기대와 욕망을 존중해줘야 한다.(존중이되, 보장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공동정부의 성공이 이뤄질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럴 경우 '문-안 정치연합' 혹은 '문-안 공동정부'에 가장 못마땅해 할 사람들은 1) 첫째, 새누리당 친박-비박-반기문이고 2) 둘째, 재벌-보수언론이고 3) 셋째, 문 주변에 있는 친노 측근들이다.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나눠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연합에 의한 공동정부의 본질은 독식이 아닌, 권력분점이다. )

즉, 독식을 원하는 주변 측근들은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1) 촛불 열기에 올라타서 ⇒ 2) 운에 맡기며 ⇒ 3) 정권교체를 이룬 다음에 ⇒ 4) '독식'을 하고 싶어할 것이다.

결국,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측근들의 소극성과 반대를 제압하는) 문재인 후보 자신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이다.

헌재 판결은 2월 말~ 3월 초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헌재 판결이 나오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만 한다. 일정이 정신없이 빨리 가게 될 것이다. 정치적 담판에 의한 후보단일화와 가치와 정책에 기반한 공동정부를 실제로 성사하려면,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

의석수가 많고 지지율이 높은 대선후보가 딱 그만큼에 비례해서 더 큰 정치적 책임이 있는 법이다. 2017년 정권교체의 향배는 안철수의 양보 여부가 아니라 문재인의 정치력에 의해 더 많이 규정될 것이다.

6월 항쟁의 꿈이 군부독재 세력인 노태우의 재집권으로 마무리된 '87년 김대중'이 될 것인가?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97년 김대중'이 될 것인가?

2017년은 87년 6월항쟁이 있은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 시절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역사적 선택'이 다시 돌아왔다. 이렇든 저렇든 문재인 후보의 몫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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