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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마시며 나눌 만한 맥주에 관한 이야기 3가지

우리나라에서 만든 맥주 맛이 다른 나라의 맥주에 비해 뒤처진다는 기사가 몇 년 전부터 나왔다. 그 때문일까? 해외산 맥주의 시장점유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세계일보 기사에 따르면, 2011년 5844만 달러였던 맥주 수입액은 2015년 1억 4168만 달러로 거의 3배 가까이 뛰었다.동아일보는 이들 해외산 맥주 중 아사히 캔(500ML), 칭타오 캔(500ML), 산토리 더프리미엄 몰츠 캔(500ML), 하이네켄 캔(500ML), 파울라너 헤페 캔(500ML) 순으로 1위부터 5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해외산 맥주를 많이 마시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종 맥주의 유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오래 전 맥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맥주의 역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1. 수천 년 전에 맥주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물과 곡물의 결합은 인간에게 취기, 혹은 황홀감을 경험케 한다. 먼 옛날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신의 작품, 즉 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이런 변신을 담당하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닌카시(NINKASI). 그 이름은 “나의 입을 채워주는 당신”이라는 뜻이다. 그녀의 숭배자들 덕분에 우리는 당시 맥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 고고학자들은 “닌카시에게 바치는 노래”가 적힌 진흙판을 발견했다. 기원전 1800년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노래는 훨씬 이전부터 불려진 것으로 보인다. 양조의 여신을 찬양하는 구절 외에 그 노래를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수천 년 된 맥주의 레시피가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구절은 특히 중요하다. ‘닌카시, 커다란 주걱으로 반죽을 젓는 자여, 구덩이에 바피르와 (대추야자) 꿀을 넣고 섞는구나.’ 수메르의 바피르는 보릿가루로 구워 만든 일종의 빵이다. 이 빵을 단지 안에 넣고 물을 부어 적신 후, 다른 재료를 추가하면 발효가 일어난다. 아마도 수천 년 전에 맥주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기본 원리는 빵을 물에 던져 넣는 것이다.”(책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조너선 헤네시, 마이클 스미스 글, 아론 맥코넬 그림, 톰 오르지코우스키 레터링)

수천 년 전 지금의 이라크 지역 사람들은 이미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맥주를 좋아하던 당시 사람들은 양조의 여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덕분에 어떻게 옛날 사람들이 맥주를 만들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맥주는 빵을 물에 빠뜨려 만들었다. 맥주 제조법이 생각보다 쉽지만, 이것을 발견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2. 순수한 맥주에 관한 법도 있었다.

“순수한 맥주에 관한 법(원래는 대체곡물금지법)이라고 불리는 맥주 순수령이 1447년 뮌헨에서 시작되었다. 목적은 맥주를 많이, 그리고 꾸준하게 공급해서, 교회와 지방정부의 재정을 원활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맥주순수령은 바이에른 전역에 적용되었다. 이 법은 맥주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모든 첨가물을 금지했다. 표현은 명확했다. 맥주는 물, 보리, 홉 세가지로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자 맥주는 보리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여러 곡물을 섞어 맥주를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격이나 수급 상황이 변하면, 워트를 만들 때 다른 곡물을 넣곤 했기 때문이었다. 맥주순수령은 빵을 만들 밀과 호밀을 아끼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 법령은 맥주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한다. 오늘날 독일 남부에는 맥주에서 보리의 존재가 거의 절대적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양조장이들은 별난 재료를 다 넣어보고 있었다. 맥주가 부패하는 걸 막고, 또 독특한 맛을 내보려고, 아마씨 기름이나 메밀, 달걀, 굴껍질, 황소나 송아지의 발, 재 같은 것을 이용했다. 그 밖에 별 희한한 것들이 들어갔을 것이고… 처음에 영국인들은 홉의 맛을 역겹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일과 맥주를 구분하던 당시 표현을 따르면, 영국인들은 홉을 뺀 에일을 마셨다. 홉 넣은 맥주는 플랑더른 사람이나 네덜란드인, 독일인 그리고 이민자들이나 마셨다.” (책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조너선 헤네시, 마이클 스미스 글, 아론 맥코넬 그림, 톰 오르지코우스키 레터링)

지금은 맥주가 보리로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보리로만 만들어야 한다고 법이 만들어지면서 이렇게 정해졌다. 당장 먹을 빵도 못 만드는데, 술을 만들어 먹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빵의 재료를 아끼기 위해서 보리로 유도를 한 것이다. 우리의 상황에 빗대어 말하자면, 주식인 쌀로 술 담가 먹는 것을 금지한 법이 생긴 것이다.

3. 맥주 생산 규모를 놓고 다투다 런던 맥주 홍수 사건까지 터졌다.

“생산 방법을 제대로 개선하지도 못한 채, 불어나는 수요에 맞춰 생산 규모를 늘려야 했다. 하지만 산업화에는 산업재해 역시 따랐다. 19세기 초, 런던에서는 누가 생산 규모가 큰지를 놓고 맥주 부호들이 서로 치열하게 다툼을 벌였다. 1814년 10월 17일, 양조장의 야심이 엔지니어링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 빈민 주택가 바로 한가둔에에 헨리 뮥스 앤 컴퍼니의 호스슈 양조장이 있었는데, 저녁 6시경 3500배럴의 포터가 담긴 거대한 통이 터져버렸다. 550톤이 넘는 맥주가 마치 해일처럼 주택가를 휩쓸었고, 근처에 사는 여자와 아이 8명이 죽었다. 포터 덕분에 아일랜드에서도 맥주를 산업적 규모로 양조하게 된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값싼 맥주를 꾸준히 만들었는데, 영국의 내무성 관리가 “간신히 마실만”하다고 말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서 기네스는 자신의 맥주가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는 1759년 더블린의 한 양조장과 9000년 임대 계약을 맺는다. 맥주 품질에 대한 평가가 하늘로 치솟으면서, 기네스의 엑스트라 스타우트 포터의 인기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책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조너선 헤네시, 마이클 스미스 글, 아론 맥코넬 그림, 톰 오르지코우스키 레터링)

19세기 초에 이르러 맥주가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간다.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그런데 항상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영국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550톤이나 되는 맥주를 저장하고 있던 통이 터지면서 주변에 살던 8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수요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공급을 늘리는 과정에서 경쟁이 벌어져 생긴 일이었다. 맥주를 널리 보급하는 일조차 조심스럽게 해야 했다. 아마 대부분의 일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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