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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나디아 블라스가 유색 인종 여성만 사진에 담는 이유

  • 김도훈
  • 입력 2016.12.15 09:56
  • 수정 2016.12.15 09:57

자매, 연인, 친구 등 가까운 여성간의 관계를 묶어주는 특별한 친근함이 있다. 부드러운 무언의 제스처 – 손 잡기, 등 마사지, 침대에서의 포옹 – 를 통해 드러나는 온기가 있다.

사진가 니디아 블라스는 2013년에 젊은 여성들을 멘터링하기 시작했을 때, 작지만 느껴지는 신호들에서 드러나는 여성들 사이의 육체적 감정 표현에 감동 받아 그걸 사진에 담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들의 우정, 그들이 서로를 돕고 아끼고 서로의 차이를 기리는 방식에 영감을 받았다. 그걸 탐구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이 이미지들에은 포옹이나 서로 기대는 등 두 사람 사이의 육체적 친밀함이 자주 등장한다.” 블라스가 허핑턴 포스트에 설명했다.

이 젊은 여성들은 블라스의 ‘금을 자아낸 소녀들 The Girls Who Spun Gold’ 시리즈의 주제가 되었다. 여성들의 질척질척함, 부드러움, 힘을 담고 있다. 낭만적이고 초현실적인 이 사진들은 노래 한곡, 키스 한 번이 엄청난 개인적 변화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시기의 여성들이 삶을 강렬하게 경험하는 것을 담고 있다.

한 사진은 네 여성과 아기 하나가 목가적 들판에서 놀고 있다. 그들의 포즈는 르네상스 시기 작품을 닮았다. 여성이 다른 여성의 입에 연기를 불어넣는 사진은 키스라는 평범한 행동을 마치 다른 세상 같은 현기증나는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 여성이 발로 다른 여성의 얼굴을 마사지하는 사진은 여성들이 갖는 육체적 관계를 조금 과장해서 보여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행동이 조금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담긴 신뢰와 다정함의 느낌을 전달하려 했다. 내게 있어 이건 여성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언어의 중요한 요소다.”

블라스는 자신이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의 중심에 시인 겸 활동가인 오드리 로드의 ‘에로틱’의 컨셉이 있다고 한다. 보통은 에로티시즘을 육체성과 섹슈얼리티와 연관짓지만, 로드는 이 단어의 그리스어 뿌리 에로스, 즉 ‘혼돈에서 태어나 창조적 힘과 조화를 다 담은, 사랑의 모든 면의 화신’으로 돌아갔다. 로드의 에로티시즘은 성욕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표현하지 않은 감정의 힘에 기반한, 지극히 여성적이며 영적인 지식을 함축한다.

“내가 말하는 에로틱은 여성의 생명력의 행사이다. 힘을 얻은 창조적인 에너지의 행사이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 역사, 춤, 사랑, 일, 삶으로 그에 대한 지식과 사용법을 되찾고 있다.” 로드가 ‘Sister Outsider’에서 썼다.

로드가 말했고 블라스의 이미지에서 배어나오는 에로티시즘은 그저 연인들 사이에 튀는 불꽃만이 아니다. 어머니와 딸 사이, 친한 친구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이것은 섹스 없는 친밀감, 조건없는 사랑, 말없는 웃음의 느낌이다.

블라스는 함께 있는 여성들의 이런 소중함을 전하는 사진들에 어렸을 때부터 노출되었다. “내가 자랐던 집들에는 가족과 선조들의 이미지가 가득했다. 그 사진들은 이런 위대함에 대한 감각을 내 안에 새겨놓았다.”

“내 자신의 모습이 비친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아기일 때, 대학을 졸업했을 때의 모습을 보았다. 근면한 노동자, 애정과 힘과 건강을 가진 사람인 그들을 보았다. 아름다운 흑인 여성, 어린이, 남성들을 보았다. 그들은 아주 밝은 색부터 짙은 색까지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는 친근한 가족 이미지가 가득했지만, 블라스가 자라며 사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자, 흑인 여성의 진짜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얼마나 드문지 깨닫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블라스의 주제 선택에 지금도 영향을 준다.

“나는 우리가 문자 그대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유색 여성이 유색 여성을 촬영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오직 유색 여성만 찍고 있다.”

블라스는 사진과 유색 인종 사이의 추하고 차별적인 관계를 잘 알고 있다. J. T. 질리가 19세기에 흑인과 백인의 육체적 특징을 비교하여 백인이 우월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흑인의 몸을 찍었던 것을 예로 든다.

그러나 블라스는 그 사진들의 원래 의도는 전복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촬영될지 말지를 결정할 수도 없었고, 어떻게 촬영될지도 정할 수 없었지만, 되쏘아보는 눈빛은 정말이지 강력하다. 그 눈빛이 저항이었다. 그게 촬영 대상들의 경험을 정당화하고 표현하는 기회다.”

전혀 다른 상황에서 블라스는 본다는 단순한 행위로 마음을 바꾼다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사진을 통해 인간 사이의 연결의 힘을 긍정한다.

블라스의 사진은 젊은 여성에게선 부정되곤 하는 복잡함을 한껏 보여준다. 특히 아직도 제한적인 형태로 정형화되곤 하는 유색 인종 여성들을 잘 보여준다. 블라스는 그들을 전사, 어머니, 사이렌, 성자로 묘사하며, 특정인의 스냅샷보다는 신화적 명상 같은 사진을 만든다.

블라스 자신이 18세에 어머니가 되어 지금 11세의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녀의 공감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된 것이 사진가로서의 관점에 영향을 주었는지 묻자 블라스는 “나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고 답했다.

맹렬하고 부드럽고, 열렬하고 자신없는 블라스의 젊은 피사체들은 우리의 세계와 거의 비슷한 꿈의 세계에 존재한다. 임신한 배에서 꿀이 떨어지고, 소녀들은 수치심 대신 경탄을 품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바라본다. 친구들은 서로 끌어안고 말없이 여성만이 이해하는 언어로 소통한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Photographer Nydia Blas Only Makes Images Of Women Of Colo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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