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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아가씨는 '시집갈 나이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이고,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이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경계선에는 바로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말하지만 아저씨는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주머니와는 달리 결혼 여부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 기무상
  • 입력 2016.12.16 05:21
  • 수정 2017.12.17 14:12
ⓒballyscanlon via Getty Images

2016년의 마지막 달이다. 나는 요즘 그 무엇보다도 운동을 가장 열심히 하고 있다. 동성 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각자가 목표로 하는 체중을 만들어보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 둘 다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직장 근처에 있는 피트니스센터로 가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리고 나서 샤워실로 가 샤워를 한 후, 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어느 한 여성이 샤워실로 들어오더니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가 참 운동을 열심히 하네." 아마도 내가 60분 동안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모습을 보신 모양이다. 그러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하고 바로 나가버렸다.

벗은 몸으로 샤워실에 홀로 남겨진 나는 '뭐지?'하는 생각이 들며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내 기분이 나쁜 거지? 방금 전에 일어났던 그 상황 속의 어떤 요소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걸까?

먼저, 벌거벗은 사람에게 "실례지만,"이라는 말도 없이 말을 걸어 실례를 범했다는 점, 또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을 했다는 점, 그리고 가장 내가 불편했던 것은 바로 나를 굳이 아가씨와 아줌마라는 카테고리로 구분하려 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은 아가씨와 아줌마라는 호칭 중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아마도 아가씨로 불리길 바랄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아가씨는 아줌마보다 어리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아가씨는 '시집갈 나이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이고,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이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경계선에는 바로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말하지만 아저씨는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주머니와는 달리 결혼 여부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32세이다. 결혼할 나이기도 하고,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 중에서 결혼한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이미 결혼했어야 할 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내 나이는 아가씨라 하기도, 아줌마라 하기도 매우 애매한 것 같다. 사실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을 하는 여성들의 평균 나이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그것은 또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어제의 아줌마가 오늘의 아가씨가 될 수도 있고, 또 결혼으로만 따져보았을 때 아줌마보다 10살 많은 아가씨가 있을 수도 있다. 아줌마와 아가씨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무례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와 같은 성 소수자에게는 결혼이라는 기준을 현재로썬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사용하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니 억지로 끼워 맞춰본다면, 나는 아줌마인가, 아가씨인가. 나와 내 애인의 생활을 보면 이건 정말 부부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니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고 있는 지금으로서 동성 결혼이 법으로 인정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인정해주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한국 사람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나에게 말을 걸고 나가신 분은 별 뜻 없이 던진 말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혹시 또 그분과 샤워실에서 마주치게 되어 나에게 같은 말을 한다면, "저 아줌마예요."라고 말해야겠다. 그리고 행여나 더 구체적으로 물어본다면, 예를 들어 "언제 결혼했어요? 몇 살인데? 애는 있수?"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려야겠다. "네, 저는 현재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여자와 여자가 부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서로 평생을 아끼고 사랑할 것이고 법으로 인정이 되든 안되는 영원히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겁니다. 그러니 저는 아가씨라기보다는 아줌마라고 해야겠지요."

하루빨리 내 애인과 결혼해서 법적으로도 아줌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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