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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 제주에서 깻잎 농사짓는 강순희·김만호 씨

강순희 씨는 "내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게 농사지으면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했다. "농한기가 없어서 파닥파닥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농사꾼은 부지런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내가 나가서 이걸 해야지' 하면 만사 제치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때 해야 하는 농사일을 방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고 하고자 하는 일을 주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고, 그게 남편과 동의가 되니까 같이 할 수 있어요."

제주 생드르구좌공동체에서 깻잎 농사짓는 강순희·김만호 씨

"정당한 대가를 받고 정의롭게 살고 싶어요.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농산물 가격은 25년 전이랑 똑같다면 이건 부당한 거잖아요. 그러면 농민은 어떻게 살라고. 열심히 산 데 따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게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정의가 아닌가 싶어요. 또 요즘 나라 상황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게 해괴망측하잖아요.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농사지으면서 병든 잎은 따 버리기도 하면서 좋은 걸 만들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러면 언젠가는 결국 좋은 게 나와요. 우리 사회도 그러면 좋겠어요. 단, 노력을 해야지, '다 그런 거지' 하면 안 돼요."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우리는 성격은 달라도 농사는 맞아서 해요"

제주 구좌읍 김녕리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강순희·김만호 부부를 만났다. 인사할 때부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부부의 손은 쉬지 않았다.

"지난 10월 태풍 '차바' 때문에 하우스 비닐이 다 걷히고 피해가 심했어요. 그거 수습하느라 이제야 정신 차리는 거예요."

이날 김만호 씨는 이웃이 비닐하우스 고치는 걸 도우러 갔다. 자연이 할퀴고 간 자리를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정돈하고 있었다.

올해 마흔여덟 살인 강순희 씨와 쉰한 살인 김만호 씨는 모두 제주 출신. 애월읍 상가리가 고향인 강순희 씨와 이곳 김녕 사람인 김만호 씨는 농민회 안 젊은 사람들끼리 만든 청년모임에서 만났다.

"농촌에서 농사지으려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남편을 보고는 '아, 이 사람이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차렸어요. 학교 다니면서 내가 엄마 속을 썩이고 하니깐 우리 엄마가 '키 큰 남자만 데려오면 결혼시켜 줄게'라고 했거든요. 내가 작아 놓으니깐. 그래 갖고 결혼했죠."

1994년 결혼하고는 김만호 씨의 부모님과 함께 관행농으로 마늘, 양파 등을 주로 지었다. 그러다 농사를 분리하고 2000년부터 친환경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를 시작할 때 부모님이 반대했어요. 농사가 너무 힘드니까 직장 다니는 게 맞지 않으냐고 해서요. 반대하는데도 일을 거들면서 배워 가기 시작했죠. 그런데 농약을 막 치는 데 거부감이 많이 들었어요. 부모님이 동네에서 배추 농사를 잘 짓는 사람들이었는데, 잘 짓는다는 건 소출이 좋고 잘 판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봄배추를 심었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 약을 쳐요. 배추가 다 자라는 데 100일 정도 걸리니까 적어도 스무 번은 치는 거예요. 농약을 처음 칠 때는 냄새가 싫다가도 익숙해지면 냄새를 못 느낄 정도가 돼요. 그게 안 맞더라고요."

농부들이 친환경 유기농사를 시작하는 계기에는 공통점이 많다.

"친환경으로 깻잎 농사를 하다 보면은 곰팡이병으로 잎이 썩거나 포기가 비는 경우가 많이 생겨요." 김만호 씨는 밭고랑을 다니며 병든 잎과 포기를 따고 뽑는다.

깻잎 줄기의 마디가 선명하게 보이는가? 아래에서 세 번째 마디까지에 나는 잎은 다 버리고 그 윗마디에 나는 잎부터 물품으로 낸다. "하나 둘 셋, 이거까지는 딱 버려야 돼요."

잘 자란 깻잎은 똑똑 따서 30장씩 봉지에 넣는다.

그 뒤 지역에서 친환경 유기농사 짓는 사람이 하나둘씩 모여서 생드르영농조합을 만들었다.

"제주는 섬이라서 물류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한살림을 알게 되고 공급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한살림운동의 지향 등을 공유하게 된 거죠."

김만호 씨는 친환경농업은 자체적으로 규제가 심하고 원칙이 엄격하다 보니 "'아이고 못 하겠다' 포기하고 다시 관행농사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사람들의 의식은 높아졌어요. 생산자가 재생산되는 구조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지켜 가는 거예요. 동네에서도 친환경농사 다 알죠.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왔어도 이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그만큼 어려워요."

그렇게 다들 안 하려는 걸 해 온 동력이 대체 무엇인가.

"농민이 생태적인 공간에서 경제활동 등 모든 걸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너무 힘들고 사회구조 자체가 그렇지 않은 모습이 없잖아 있더라도 나는 그게 더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 생각을 버리지 못했죠."

김만호 씨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몇 가지가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하나는 가족, 또 하나는 일하고 관계를 맺는 거요. 나머지는 이 길을 가기 위한 플러스알파일 뿐이죠. 가다 보면 본보기도 있을 거고 갈등도 하겠죠. 그래도 내가 선택한 건 이거예요. 끝까지 갈 겁니다."

강순희 씨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성격은 달라도 농사는 맞아서 해요."

수확에 열중하다 보니 생각지 않게 부부가 맞절을 하게 됐다. "우리는 모든 걸 같이 결정하고 같이 해요. 처음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인증 같은 거 받을 때도 하나는 남편 이름으로, 새로 하는 건 내 이름으로 하고 그래요." 강순희 씨의 말을 들으니 부부가 같은 높이로 허리를 숙인 게 우연이 아닌 듯도 하다.

채소 썩히지 않아 좋아

부부는 깻잎을 주로 하면서 당근, 적채, 얼갈이, 시금치 등의 채소류를 조금씩 짓고 있다. 깻잎만 한살림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친환경 학교급식 재료로 낸다.

"친환경 학교급식 초기에는 한살림에도 물건을 내지 않을 때라 되게 막막했어요. 2004년에 학교급식이 시작되면서 해마다 공급량을 늘려 가긴 했지만 다 소비가 안 돼 갖고 어려웠지요."

그래서 강순희 씨는 "한살림 생산자가 되니까 채소를 썩히지 않아 좋다"고 한다.

전에는 친환경제제가 없어서 진딧물이 생기면 그냥 폐작해야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 친환경농사를 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껴서 밭에 짚을 깔고 그러다가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됐어요. 친환경제제 쪽에 전문성을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들은 '농민이 제제 만들고 하는 건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이거 쓰는 게 시간도 아끼고 더 경제적이다'라고 해요. 그거에 동화되기 시작한 거죠. 문제는 관행농사에 비해서 비용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부담이 되는데, 할 수 없는 거죠."

레몬은 잎에서도 향이 짙게 나서 천연 방향제로 좋을 것 같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 레몬 나무를 심어 놨어요. 내년 3월에 수확을 기대하고 있어요."

손가락 굵기만 한 당근은 한창 크는 중. 내년 2월 정도에 수확할 것이다.

요즘 부부의 주된 일과는 깻잎 수확.

"줄기의 세 마디까지 나는 잎은 따 버려야 해요. 네 마디부터가 상품이 되는 거예요."

한 하우스에 7, 8, 9월 순차적으로 파종하는데 냉해가 없으면 내년 봄까지 간다고 한다. 그러나 부부는 냉해를 많이 입는 편이라 2월 말에서 3월 초가 되면 다시 파종하고 4월부터 수확한다.

"보통 1년에 두 번 주기로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7~8월에 파종한 건 40일, 그 밖에는 50일에서 두 달 정도 지나면 수확할 수 있어요. 깻잎은 여름에 잘 자라는 작물이에요. 그래서 여름에는 500평 하우스 전부에 농사짓는 게 아니라 300평 정도만 해서 생산량을 맞춰요."

따뜻한 제주와 냉해라니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온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추워도 바람이 많이 불면 냉해가 얼마 없는데, 춥고 바람이 막 불다가 따뜻해지면 바람이 팍 잦잖아요? 새벽녘에 어깨가 싸한 느낌이 나면 분명히 냉해가 와요. 그때 온도계를 보면 한 2~3℃에도 오더라고요."

반복되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한살림에 요청하기도 했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엄청 부지런히 했어도 자연재해가 오면 그냥 무너져요."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가 깻잎 생산지로는 후발 주자예요. 충남 아산 지역에서 먼저 했죠. 그래서 소비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아산 물품이 먼저 공급돼요. 무 같은 경우는 제주에선 겨울에 나고 다른 데선 봄이나 여름에 나니까 생산 시기가 겹치지 않아요. 그런데 깻잎은 그렇지 않으니까 산지를 구별하지 말고 같이 가면 좋겠어요. 우리가 한살림에 공급한 지 7~8년 됐거든요. 이제는 생산지를 동등하게 대해 주면 좋겠어요."

'제주니까 당연히 귤 농사를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부부는 귤은 기르지 않는다. "여기 김녕은 귤을 그다지 안 해요. 구좌 지역에 귤 농가가 제일 없다고 보면 돼요." 이건 김만호 씨 후배가 먹으라고 준 극조생 감귤.

강순희 씨가 간식으로 토박이 물고구마를 구워 주었다. 토박이의 맛은 이렇게 진하단 말인가!

사람에 힘입어 나아가자

강순희 씨는 "내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게 농사지으면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했다.

"농한기가 없어서 파닥파닥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농사꾼은 부지런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내가 나가서 이걸 해야지' 하면 만사 제치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때 해야 하는 농사일을 방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고 하고자 하는 일을 주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고, 그게 남편과 동의가 되니까 같이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강순희 씨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로서 농민회 활동을 거의 30년 동안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까 토박이씨앗을 지키는 일을 7~8년 동안 하고 있어요. 채종포 일곱 곳에서 30~40가지 씨앗을 수확해 가지고 지역 주민들과 나누죠."

올해에는 제주KBS와 함께 토박이씨앗을 활용한 음식을 선보이는 <보물섬 - 셰프의 살레>라는 방송 프로그램도 했다.

"우리가 농사지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사와 같이 요리해 보는 방송을 여덟 번 하고 11월에 마무리했어요. 우리끼리만 하던 일을 제주도민들과 같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주더라고요."

지역 주민들은 농민회 활동을 하는 부부를 어떻게 바라볼까.

"애기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여기 살았고, 나도 결혼한 뒤로는 여기를 떠나 보지 않았어요. 지역 주민들과 쭉 같이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냥 인정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보니 '이 친구들이 농민운동하고 데모하고 했지만 얘네가 얘기했던 게 다 옳구나' 싶으니까요."

강순희 씨는 "이웃들이 우리가 '박근혜 절대 안 된다'라고 누누이 얘기할 때는 말을 안 듣다가 이제 '아이고, 그때 들을걸' 한다"고 했다.

"어떤 정책이든 정치 문제든 돌이켜 보니깐 '얘네 말이 맞더라' 그렇게 되는 거죠. 이제는 우리만이 아니라 같이 활동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근데 친환경이나 이런 거는 '어휴, 그렇게 어려운 걸 왜 하냐' 하죠. 농민들이 더 친환경농사를 하지 말라고 해요. 돈을 못 벌어서."

강순희 씨는 여성농민의 지위를 향상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지금이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4차 개정 기간이거든요. 전에는 여성농업인 전담 부서가 있었어요. 전담 인력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담당 부서가 없다 보니깐 우리 얘기를 들어줄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적으로 여성농민 관련 전담 부서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거죠. 또 여성농민 행복바우처 사업을 지자체에만 맡기지 말고 법제화해서 중앙에서 제대로 지원하라고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살림 30주년을 함께하는 생산자로서 하는 생각을 물었다.

"한살림 생산자라고 해서 생각이 다 똑같진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의무 교육도 있는 거고. 다양한 생각이 있긴 하지만 같은 지향과 가치를 갖고 가면 좋겠고, 어디 가나 있을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를 잘 조율해 가면 좋겠어요. 우리같이 좁은 지역에서도 다양한 요구가 분출하는데 그런 게 얼마나 많겠어요?"

또 하나, 사람에 대해 더 열려 있으면 좋겠다.

"규정이나 규약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조합원이나 생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가입할 수 있게끔 하고, 대신 훈련과 교육을 잘하는 체제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발을 담가야지 밖에서는 비판이나 비난밖에 할 수 없다고 보거든요. 누군가 새로 들어오면 '내 몫을 잘라먹는 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가면 좋겠어요. 사람이 힘이잖아요."

원래 비어 있던 들판이 아니다. 태풍이 쓸고 간 당근밭이다. "이번에 태풍 피해가 컸어요. 그래도 농사지으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땅은 자연재해에 망가졌다가도 어느 순간 햇빛과 땅심으로 다시 살아나잖아요. 우리도 그러면 좋겠어요."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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