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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이별한 어떤 부모들의 이야기

집이 없어서 친구네 얹혀 사는 엄마가 어떻게 아이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는 아빠가 무슨 수로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정부가 이들을 위해서 한 일은 집이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워줄 보육원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내레이션을 쓰던 중, 원고에 넣었다가 뺀 문장이 있다. "이 정부의 정책이 유도하는 건 뭘까요? '아이 많이 낳으세요'라고 말하는 건지, '능력이 없으면 낳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건지 헷갈립니다."

  • 장수연
  • 입력 2016.12.14 09:02
  • 수정 2017.12.15 14:12
ⓒKTSDESIGN via Getty Images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집에 가는 날' 제작 후기

현재 우리 나라엔 14,000여 명의 아이들이 아동양육시설(이하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아이들 중 상당수는 연고자가 있다. 부모의 사망이나 교도소 수감, 아동학대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부모가 일을 할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이 많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던 건 1-2년 전쯤이었다. 작은 식사 자리에서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이신 서천석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였다. 나는 충격을 넘어 경악했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할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시설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부모라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이 21세기에, 이 돈 많은 대한민국에서,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심지어 많다니,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가.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화가 났다. 한동안 이 이야기에 사로잡혀 지냈다.

나는 저출산/보육 문제가 노동 문제와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하나를 떼 놓고 다른 하나를 풀 방법은 없다. 아이 키울 돈을 벌기 위해 아이와 이별하는 부모, 이건 우리 나라의 저출산/보육 문제가 어떻게 노동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지 않은가. 저임금, 불안한 고용, 긴 노동시간, 직장 내 보육시설 등 육아와 관련한 많은 이슈가 여기에 녹아 있다.

2016년 가을, MBC 창사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걸 해야겠다고,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겁이 났다. 어느 부모가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할까. 제 손으로 아이를 보육원에 맡긴 이야기를. 갖가지 통로로 인터뷰 해줄 부모를 찾으면서, 끝끝내 인터뷰이를 못 찾을 경우를 대비해 다른 아이템을 동시에 진행했다. 섭외 되면 이것, 안 되면 저것, 그렇게 생각하고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할 타이밍에서, 극적으로 두 명의 부모가 인터뷰를 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기간을 통틀어, 그 전화를 받았던 순간이 제일 기뻤다.

집이 없어서 친구네 얹혀 사는 엄마가 어떻게 아이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는 아빠가 무슨 수로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5년 전 이혼을 하고 두 아들을 보육원에 맡긴 엄마 A씨와, 택시 운전을 하며 혼자서 세 남매를 키우다가 10여년 전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긴 아빠 B씨가 메인 사례자였다.

A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돌아서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자기 손으로 직접 아이들 짐을 싸던 그 밤을 설명하면서, 그녀는 오열했다. 나 역시, 내 울음 소리가 녹음기에 들어갈까 입을 틀어막으며 끅끅거렸다. A씨의 아들은 6살 때 보육원에 갔고, 8살 때 우울증이 왔다고 한다. "엄마, 왜 우린 떨어져서 살아야 돼? 나 엄마 말 잘 들을게, 힘들게 안 할게, 나 데리고 가면 안 돼?"라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그녀는 엄마도 너랑 같은 마음이라고, 그렇지만 엄마가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같이 살 날을 꿈 꾸면서 참아 보자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집이 없어서 친한 언니네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지금 감정을 못 이겨서 아이들을 데려오면, 결국 또 다시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게 될 테니까, 가슴 아프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다시는 내 손으로 아이들을 거기 데려가지 않으리라, 다시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이 악물고 버텼어요."

택시기사인 B씨는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방식으로 근무를 한다. 사납금을 제하고 그가 가져가는 돈은 10년 전엔 120만원, 지금은 150만원 정도이다. 일하는 날 그는 새벽 3시에 나와서 밤10시에 운행을 마무리한다. 이혼을 하고 한동안 B씨는 운전을 하면서 2-3시간에 한 번씩 집에 들러 막내아이 기저귀를 갈아 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면서 생활했다. 집에는 아이들끼리만 있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동사무소 직원이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길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시설도 잘 돼 있고, 공부도 잘 시켜 준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아이들도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고, 저도 전보다 훨씬 수월하고요."

집이 없어서 친구네 얹혀 사는 엄마가 어떻게 아이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는 아빠가 무슨 수로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정부가 이들을 위해서 한 일은 집이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워줄 보육원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 정부의 정책이 유도하는 건 뭘까요? '아이 많이 낳으세요'라고 말하는 건지, '능력이 없으면 낳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건지 헷갈립니다.

내레이션을 쓰던 중, 원고에 넣었다가 뺀 문장이 있다. "이 정부의 정책이 유도하는 건 뭘까요? '아이 많이 낳으세요'라고 말하는 건지, '능력이 없으면 낳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건지 헷갈립니다."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서 다른 말로 고쳤지만,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였다. 정말 출산율이 높아지길 원한다면, 사람들이 아이 낳을 생각이 들게 해야 할 것 아닌가. 경제력이 부족한 부모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낳는가. 취재하면서 만났던 한 보육원 원장이, 분노를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아이 많이 낳으라고 할 게 아니라, 낳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게 해 줘야지요. 생명은 소중한 거잖아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든 아이들은 잘 자랄 수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 아이들 보면 얼마나 예쁜지 알아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청취자들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있었는데, 한 청취자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저렇게 키우려고 애를 셋이나 낳았나?' 나는 이 말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으면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고 정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이혼이나 사별은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고 같은 것인데, 한국에서는 부모가 그런 상황에 처해졌을 때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이와 이별해야 하는 지옥 같은 나락으로.

이 두 사람이 프랑스에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궁금했다. 프랑스에 있는 한 박사님에게 이 둘의 프로필을 드리면서, 복지 담당 공무원을 만나 상담을 받아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랑스 공무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놓고 기다리는데,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프랑스에서 복지 문제는 굉장히 예민한 이슈이고 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서, 만약 A씨나 B씨 같은 경우가 발생하면 공무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이 벌어질 리가 없는데, 하면서 놀란 공무원들이 '이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는 얘기에, 나는 말 그대로 '웃펐다'. 그렇지, 그런 시스템이어야 출산율이 2명을 넘지.

방송을 만들면서 몇 번, 나는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이를테면 어떤 보육원 원장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반론을 제기하며 "아이가 꼭 부모와 함께 살아야만 행복한 건 아니다. 자격 없는 부모, 파렴치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줄 아느냐. 그런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자라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을 때나, 메인 사례자였던 B씨가 인터뷰에서 "저는 지금 괜찮아요. 아이들도 나랑 살 때보다 보육원에서 더 잘 자라는 것 같아요. 보육원에서 학원도 보내주고 운동도 시켜줘요"라고 말했을 때. 그 즈음 서천석 선생님을 다시 한 번 만났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는데, 그 대화를 통해 내가 얻은 건, 프로그램이 집중해야 할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애초에 말하고자 했던 것, 원치 않게 아이와 떨어져 사는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 돈을 벌기 위해 아이와 함께 살 수 없는 부모들이 있다. 집이 없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아이를 보육원에서 데려오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다. 자격이 없는 부모가 많을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보육원에 맡겨야 하는 부모가 있다니까? B씨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지만, 그는 포기하고 체념한 것에 가깝다. 아이와 같이 살 수 없다는 걸, '상수'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이들 학교 가고 나서 출근해서, 아이들이 집에 올 때쯤 퇴근하면 좋은데, 그런 회사는 우리나라에 없지 않느냐고.

B씨에게 '꿈꾸는 그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세 가지를 말했다. 방 두 개 있는 집이 있었으면. (그는 내게 왜 방이 두 개여야 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딸은 따로 자야 하지 않느냐고. 방 하나 아들 둘 주고, 방 하나 딸 주고, 자기는 거실에서 자도 된다고.) 월 수입이 200만원쯤 됐으면. 아이들 공부 봐 줄 사람이 있었으면. A씨에게는 어떤 회사에 다니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아이들 학교 가고 나서 출근해서, 아이들이 집에 올 때쯤 퇴근하면 좋은데, 그런 회사는 우리나라에 없지 않느냐고. 바라지도 않는다고. 꿈일 뿐이라고.

방송을 들으며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자식을 어떻게 보육원에 맡기느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전히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지'라는 강고한 정서가 우리 사회에 있으니까. (대가족과 마을이 사라지고, 일터가 '논, 밭'이 아닌 '사무실'이 된 현대사회에서, 과거처럼 급할 때 아이를 맡길 데도 없고 일터에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는 육아 환경이라는 걸, 그래서 정부와 사회가 함께 육아의 짐을 나눠 져야 한다는 걸,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래도 부모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고 각오는 했다. 다만, 그 수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라고, 그게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청취자들의 반응을 보며, 육아에 관한 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마지노선'의 범위가 참 다양하다는 걸 느꼈다. 복지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대중의 정서와 정부,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기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건, 복지 분야에 얼마의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논할 때 각계각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A씨의 10살 아들이 쓴 일기장을 보았다. 돈 이야기가 참 자주 등장했다. 나에게 100만원이 생긴다면 교통카드를 사서 엄마 집에 다녀오겠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엄마를 보고오겠다, 엄마 집 월세는 얼마이다, 엄마한테 돈을 주고 싶다 등등... 자식을 떼어놓고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들,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이 기막힌 상황이 조금이라도 알려지기를 바랐다. 이건 우리가 지금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당장이라도 손을 써야 하지 않느냐고, 이걸 방치하면 정말 죄 받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얼마나 전해졌을지.... 방송이 끝나고 나는 너무도 아쉬워, 이렇게 긴 글을 적는다.

*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집에 가는 날'은 2016년 12월2일 오전 11시30분에 MBC 표준FM 채널에서 방송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은 MBC 라디오 홈페이지나 팟캐스트에서 해당 날짜를 검색하시면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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