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알파벳에 '우주적'인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보다’와 ‘읽다’. 사물을 보면 그것의 뜻을 읽게 된다. 보고 난 후에 어떤 것도 읽어내지 못하면 예전에는 생존조차 어려웠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읽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을 보면 그것을 통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낸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비가 올 것을 읽어내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보다’와 ‘읽다’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여기에 있다.

1. 사물은 징표를 갖고 있다고 믿었다.

“사물들을 ‘읽을 수’ 있는 건 사물이나 그 사물의 흔적이, 당장 눈앞에는 없는 다른 무엇인가의 상태를 지시하거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손바닥에 그어진 손금, 땅에 찍힌 동물의 발자국, 나무에 새겨진 나이테, 눈이나 목구멍의 색깔 등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는 다른 무엇인가를 읽어낼 수 있게 하는 지표가 되지요. 중세 시대 서양 사람들은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그러한 지표를 그 사물의 ‘징표’라 불렀어요. 학자와 철학자들은 세상 만물이 지니고 있는 징표를 보고 읽어 냄으로써 그 만물들이 갖는 상호 연관성과 진리를 밝혀내려 했습니다. …. 말하자면 사물들이 지니는 ‘징표’란 세계를 창조한 신이 자신이 창조한 사물에 써 놓은 언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자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사물을 창조한 창조주는 동시에 인간이 읽어 내야 할 어떤 문자나 기호를 사물들에 ‘써넣은’ 문필가이기도 한 셈이지요. ‘신은 문필가’이고, 사물들로 이루어진 ‘세계는 신의 손으로 쓰인 책’이며, 인간은 그 세계라는 책을 통해 우주와 자연의 본질을 깨닫는 ‘독자’라는 비유는 근대 이전까지 서구의 사고를 깊이 지배하고 있었답니다.” (책 ‘본다는 것’, 김남시 글, 강전희 그림)

과거에는 사물마다 징표가 있다고 믿었다. 종교의 영향이었다. 종교가 아니라도 사물을 보고 그 뜻을 읽어내는 것이 인간의 능력인데, 거기에 신의 목소리를 입힌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사물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누구나 쉽게 사물의 징표를 읽어내지는 못하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바로 점술가 등이 그들이다. 근대 이전의 생각은 지금과 확실히 달랐다.

2. 알파벳에도 우주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 전통적으로,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말소리만을 표기하는 표음문자라고 알려진 알파벳 문자를 가지고, 그 문자의 형태에서 문자의 ‘의미’를 도출하려던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지요. 예를 들어, 18세기 영국의 서지학자였던 롤런드 존스는 알파벳이 임의로 만들어진 기호가 아니라 각각의 모양에는 우주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O는 뭏나한 공간과 시간, 특히 태양과 태양의 운동을 상징하고, I는 똑바로 서 있는 사람으로 ‘원죄를 짓기 이전 근원 상태의 인간’의 모습이며, a는 O를 수평으로 나눈 것으로 무한한 시공간으로서의 O의 정신성에 대립하는 세속적 요소의 물질성을 의미하며, C는 태양의 운동으로서의 O를 절반으로 나눈 것으로 운동에의 지향성, 곧 행위를 상징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알파벳으로 구성된 단어나 문장은, 이 알파벳 모양이 지닌 우주적, 존재론적 의미를 고려해야만 그 심층적인 의미를 밝혀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에요.” (책 ‘본다는 것’, 김남시 글, 강전희 그림)

한자문화권에서는 익숙한 설명이다. 또한 우리의 한글 역시 이런 이치를 담고 있다. 그런데 알파벳에도 이런 설명이 따라붙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평가 폴 클로델은 그 형태와 모양을 통해서도 단어의 의미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어 단어 oeil(눈(目))은 사람의 눈동자의 모양을 묘사한 단어이며, 같은 뜻의 영어 단어 eye는 코 y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눈 e를 시각적으로 추상화한 단어라는 것이다. 기발하다는 생각이 드는 설명이다.

3. 읽는다는 것을 본다는 것과 결합한 문학적 시도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문자를, 시를,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을 본다는 것과 결합하는 문학적 시도들을 우리나라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눈(雪)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김수영이 1966년 발표한 시예요. …. 현재 남아 있는 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를 보면, 시인은 이 시의 행 간격을 ‘두 배’로 할 것을 특별히 지시하고 있어요. 왜 그랬을까요? …. 세로쓰기를 하면 행들 사이의 공백이 종이 표면 위에서 특정한 시각적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게 보이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눈의 모양이 행과 행 사이의 공백을 통해 시각화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정말 시인 김수영이 의도한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시의 5행을 한번 읽어 보세요.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여기에서 시인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줄’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지요?” (책 ‘본다는 것’, 김남시 글, 강전희 그림)

세로쓰기가 화제가 가끔 된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세로에 숨겨놓아, 가로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예전에는 세로쓰기가 익숙했다. 김수영 시인도 눈이라는 시를 세로로 썼다. 그러면서 눈이 내리는 모습을 시의 시각적 형태 속에 녹여냈다. 세로로 써진 시를 읽으면 진짜 눈이 내리는 듯하다. 보는 것과 읽는 것이 제대로 합쳐진 경우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허프북스 #보다 #읽다 #사물 #알파벳 #김수영 #세로쓰기 #라이프스타일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