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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1의 부자 빌 게이츠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빌 게이츠는 세계 1등 부자다. 포브스 ‘2016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빌 게이츠가 750억 달러(약 92조 7천억 원)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2년 가운데 17번 최고 부자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춤한 듯하여도 그의 부는 건재하다. 더군다나 사회 사업가로서 맹활약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문제나 사업 방식 등을 놓고 빌 게이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 여러 번 소개된 바 있지만, 빌 게이츠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 제1의 부자이자 사회사업가 빌 게이츠 어린 시절이 소개된 책이 있어서 살펴보려고 한다.

1. 빌 게이츠 고집은 최고였다.

“시애틀의 명망 있는 은행가 가문 출신의 존경받는 시민 활동가이던 어머니는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지만, 아들의 고집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식사 시간이 되어 지하 방에 있는 게이츠를 불러도 답이 돌아오지 않기 일쑤였다. 방을 치우라는 잔소리는 포기한 지 오래였다. 한번은 어머니가 물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니?” “생각하고 있어요.” 게이츠가 소리쳐 말했다. “생각하고 있다고?” “네, 엄마. 생각하고 있다고요. 생각해본 적 없어요?” 어머니는 그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갔다. 의사는 그에게 프로이트에 관한 책을 권했고, 그는 엄청난 열의를 보이며 책을 독파했다. 하지만 의사도 그를 유순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1년이 지난 후 의사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지게 되실 겁니다. 적응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통제하려 해도 소용없을 테니까요.” 게이츠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는 결국 빌과 맞서는 건 헛수고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책 ‘이노베이터’, 월터 아이작슨 저)

어린 시절의 빌 게이츠는 부모의 속을 꽤나 썩였다. 심지어 어머니가 정신과 병원에 데려갈 정도이니 말이다. 의사가 통제 불가능하다고 부모를 설득할 정도면 그 고집을 알만 하다. 그렇지만 결국 그런 고집 덕분에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다른 사람을 심하게 해치게 되는 고집이 아니라면 인생의 어려움을 돌파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고집은 오히려 중요하다.

2. 사립학교에서 컴퓨터 단말기를 만난 것이 인생 전환점이었다.

“게이츠가 열두 살이 되던 1967년 가을(겉보기에는 아홉 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게이츠를 사립 학교에 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버지는 이렇게 전한다. “빌은 작고 부끄러움이 많았으며 보호가 필요했고, 여느 6학년생과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뉴잉글랜드의 사립 고등학교처럼 캠퍼스가 고풍스러운 벽돌로 된 레이크사이드 스쿨을 선택했다. …. 게이츠가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입학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과학수학관 지하의 작은 교실에 컴퓨터 단말기가 설치되었고, 그의 인생도 더불어 일대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제너럴일렉트릭 마크2의 시분할 컴퓨터 시스템에 전화선으로 연결된 텔레타이프 단말기로, 진짜 컴퓨터는 아니었따. 레이크사이드 어머니회에서 자선 바자회 수익 3,000달러를 이용해 해당 시스템에 대한 일정 시간 동안의 사용권을 분당 4.8달러에 구입한 것이었다. 어머니회는 이 새로운 기계가 얼마나 많은 흥미를 끌고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지에 대해 얼마나 한심할 정도로 과소평가했는지 곧 알게 되었다. 7학년 수학 담당 교사가 기계 작동법을 알려주었고, 게이츠는 그 즉시 기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교사는 이렇게 회고한다. “기계에 대해 내가 빌보다 많이 알았던 것은 첫날 하루뿐이었다.”” (책 ‘이노베이터’, 월터 아이작슨 저)

인간의 운명은 여러 요인으로 결정된다. 자신이 생활하는 환경 요인도 상당히 중요하다. 맹자 어머니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것이 달리 나온 말은 아니다.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의 판단으로 좋은 사립학교를 들어갔지만, 그곳에 컴퓨터 단말기가 없었다면 빌 게이츠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수도 있다. 마침 그 학교 어머니회에서는 컴퓨터 단말기 사용권을 구입하였다. 그날로 빌 게이츠는 컴퓨터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아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아하고 잘 아는 것을 바로 옆에서 접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3. 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다.

“게이츠가 8학년이 되던 1968년 가을, 그와 앨런은 레이크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을 만들었다. 일종의 ‘긱’식 패거리였다. 앨런은 이렇게 말한다. “레이크사이트 프로그래밍 그룹은 사실 우월 의식과 테스토스테론이 팽배한 소년 클럽이었다.” 하지만 곧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영리 사업으로 변모했다. “그 원동력은 바로 나였다.” 게이츠는 이렇게 단언한다. “나는 ‘자, 이제 진짜 세계로 뛰어들어 뭔가를 팔아보자’라고 말했다.” 훗날 앨런이 씁쓸하다는 듯 회고한다. “다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뽐내려고 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코 빌이 가장 의욕이 넘치고 경쟁심이 강했다.” …. 게이츠와 앨런은 컴퓨터의 신경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운영 체제의 중요성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앨런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운영 체제는 중앙 처리 장치가 연산을 하고,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고, 파일에 저장 공간을 할당하고, 모뎀과 디스크 드라이브와 프린터 사이에 데이터가 이동되도록 하는 일종의 물류 총괄 작업을 수행한다.” PDP-10의 운영 체제 소프트웨어는 TOPS-10이라 불렸는데, 러셀은 게이츠와 앨런이 운영 체제 매뉴얼을 읽을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집에 가져가지는 못하도록 했다. 이들은 종종 날이 밝을 때까지 매뉴얼을 읽곤 했다.” (책 ‘이노베이터’, 월터 아이작슨 저)

마이크로소프트는 PC운영체제 윈도우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빌 게이츠는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8학년(우리로 말하면 중학교 2학년 정도)때 학교 내에 프로그래밍 그룹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멘토 C-큐브드의 중역 스티브 러셀을 만났다. 러셀 덕분에 프로그램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를 더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특히 운영체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훗날 사업 아이템 윈도우와 연결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을 향해 한발씩 내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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