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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서비스업이 '극한직업'이 된 이유

사람을 만나는 일 하나하나가 다 기싸움이 된다. 대접을 받아도 감사와 기쁨이 없고, 대접을 덜 받으면 분노하고 폭발한다. 대접받는 것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에, 늘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주시하고, 그것으로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를 가늠한다. 이러니 늘 피곤할 수밖에. 게다가 다른 사람을 하나하나 컨트롤 할 수도 없으니 내 행복은 셀프 컨트롤이 불가능하다.

  • 양파
  • 입력 2016.12.19 11:53
  • 수정 2017.12.20 14:12
ⓒzhudifeng via Getty Images

사실 내가 한국에서 지난 20+년간 보낸 시간을 싹 다 합해도 세 달 남짓밖에 안 된다. 그런데 갈 때마다 확확 다르다. 이번에는 부산이 아닌 서울이라서 좀 더 그런지 모르겠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날이 서 있었다. 예의는 쌈싸먹은 갑질이 정말 많이 보였다 (강남이라서 더 그런가??). 이에 대해서 정말 오래 생각했는데, 왜 모든 것을 다 가진 땅콩 조현아는 그렇게 불처럼 화를 냈는지. 왜 한국의 금수저들은 그렇게도 과시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이론이다.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를 대할 때마다, 소리 없는 기싸움이 되기 마련이었다.

말했듯이 한국엔 어딜 가나 갑질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옷차림으로 인한 무시도 예전보다 더했다. 한국에서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를 대할 때마다, 소리 없는 기싸움이 되기 마련이었다. 돈을 든 손님들은 정당한 대접을 받고자 목소리를 높였고, 누군가 자신을 무시할까 가시를 세웠고,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보며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불안해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낮추어 볼까봐. 무시할까봐. 자신이 가진 것을 안 알아줄까봐.

내가 겪은 해외 장사 방법은 이렇다. 당신은 스페셜 유니크 베리 특별한, 60억 인구 중 유일한 스노플레이크다. 그렇지만 우리 회사 브랜드는 당신을 이해한다! 당신의 개성과 유니끄함을 우리 제품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 들어와서 돈 쓰셈. 내놓고 돈 자랑하려는 브랜드도 있긴 하지만. 한국 가게는 느낌이 좀 다르다. 우린 엄청 고급 브랜드인데, 네가 우리 제품 급에 맞는다면 들어와서 돈을 내. 우리가 엄청 대접해줄게, 너도 고급지게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뭐 그런 방식? 그러니까 서구 가게들의 느낌이 "우리 가게 물건으로 너만의 유니끄한 개성을 살려줄게"(이것 역시 말도 안 되지만 어쨌든)라면 한국 가게들은 "우리 가게 물건으로 네가 얼마나 고급인지, 품격이 높은지를 자랑할 수 있어", 혹은 "돈 내면 왕처럼 대접해줄게!"

해외에서도 예쁘고 돈 많은 사람들은 대접 받는다. 하지만 탑 1%가 대접 받고 하위 5%가 조금 무시 받는다면, 나머지는 그냥저냥 비슷비슷한 그룹에 들어간다. 내가 10점 만점에 5점 정도라고 하면, 9점 여자는 눈에 띄게 좋은 대접을 받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차이가 아주 심하진 않고, 2점과 5점, 8점 사람도 그냥저냥 비슷하게 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5점과 8점 여자는 확실히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이게 왜 문제냐면, 2점에서 9점 사이 사람들이 뭉뚱그려 '보통 대접'을 받는 곳에 비해서,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보상과 벌이 되기 때문이다.

자, 7 정도의 예쁜 여자를 보자. 2에서 8까지의 여자들이 다 비슷비슷한 대접을 받는 곳에서 7의 여자가 종업원에게 좋은 대접을 받았다면 그 종업원이 친절하구나, 그 가게가 직원 교육을 잘 시키는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급수에 따라 대접이 아주 확확 달라지는 곳이라면 좋은 대접은 7점인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고, 6의 대접을 해주는 사람은 나를 깔보는 거다. 8의 대접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어, 내가 혹시 8이었나? 하며 기분이 잠깐 좋아진다.

내가 생각하는 대접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는 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 내가 받는 것은 내 급수에 따라 당연한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대접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는 게 된다. 급수로 나누지 않는 곳에서는, 좋은 대접을 받으면 감사하고 기쁘고,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왜 이럴까 의아해 할 수 있고 기분 나쁠 수도 있으나, 그것을 꼭 나 때문이라고 안 봐도 된다.

이것은 연인의 딜레마로도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헌신하고 잘함으로써 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다고 할 때, 엄청 무리하고 오버해서 나를 위하는 행동은 내가 감사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나를 사랑하는 그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해야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게 좀 덜해지면, 그것은 날 덜 사랑한다는 증거다. 만약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희생과 헌신, 투자'로 사랑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면, 상대방이 나에게 잘 해주면 감사하고 기뻐하면 되는데, 그걸 사랑의 증표로 보면 그 모든 것이 내가 받아야 하는 당연한 것으로 바뀐다.

비싼 매장에 들어갔다고 하자. 한국처럼 소비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스템에서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은 돈을 내밀면서 "나는 너에게 이 정도 돈을 줄 수도 있으니 너는 나에게 잘해"라고 과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받는 대접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건 돈 있는 내가 받아야 하는 대접이다. 만약 상대방이 대접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대접을 받아도 감사와 기쁨이 없고, 대접을 덜 받으면 분노하고 폭발한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는 일 하나하나가 다 기싸움이 된다. 대접을 받아도 감사와 기쁨이 없고, 대접을 덜 받으면 분노하고 폭발한다. 대접받는 것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에, 늘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주시하고, 그것으로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를 가늠한다. 이러니 늘 피곤할 수밖에. 게다가 다른 사람을 하나하나 컨트롤 할 수도 없으니 내 행복은 셀프 컨트롤이 불가능하다.

조현아가 분노한 이유. 박 사무장이 곧바로 숙이면서 빌지 않았을 때 그는 조현아에게 너는 이런 대접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무시한 셈이 된다. 그녀의 존재 자체를, 그녀가 가지고 과시하고 싶은 것 모든 것을 '내 눈엔 넌 별 거 아닌데 되게 분수에 넘치는 대접을 원하는구나'며 비웃었으니 확 꼭지 돌 수도.

그 정도로 축복받은 금수저라면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 어차피 싸워서 밟아봐야 덕 볼 것 없는 이들에게 호의 베풀면서 살아도 될 텐데, 재산이나 외모, 그 외 수많은 지표로 사람에게 점수를 매기고 그에 맞는 대우를 확실하게 해주는 한국에서 조현아는 늘 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받아야 할 대접을 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 대접이 충분하지 않으면 폭발하며 응징했을 것이다.

영국에 돌아왔다. 한국에서와 똑같은 보푸라기 후디에 치렝스 패션인데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가게 들어가도 위아래로 쳐다보는 사람 없다. 나야 곧 나갈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그렇게 평가당해도 흥미로울 뿐이었으나,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평가질 밀당을 해야 한다면 돌아버릴지도.

사족.

난 뭐 딱히 거짓말 아닌 이상은 이왕이면 좋은 말 해준다가 철학이다. 그리고 서비스 받으면 공손한 편이기도 하다. 식당 가서는 이거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잘 먹고 갑니다. 미용실에서는 정말 예쁘게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여기 정말 좋은 물건 많네요. 잘 샀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이런 말 할 때 "얘 뭐냐? 시비 거는 건가?"는 미심쩍은 반응이 좀 있어서 이상했었다는 얘기. 그리고 시비 걸면서 "이건 뭐 이래, 내가 좀 고수라서 아는데 이건 아니지"라는 식의 갑질로 자존심 세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서, 참 한국에서 서비스업 극한 직업이겠구나 안타까웠다는 얘기.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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