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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준비하자. 하지만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자.

시민 의지가 6주째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 6주 동안 정치권은 여야가 갈라지고, 친박으로 비박으로 나뉘고, 또 비박에서도 갈라진다. 다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야권마저 지지리도 못나게 군다. 말로만 국민의 뜻을 엄중히 받든다. 매주 토요일만 함께 하고 주중엔 또 다른 뻘짓을 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뭔 그림을 그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는데. 대체 무엇으로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 오기민
  • 입력 2016.12.05 09:46
  • 수정 2017.12.06 14:12
ⓒ연합뉴스

'세계화'니 '자유화'로 치장한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규제 없는 경쟁으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된 반면 불황과 실업은 항시적으로 고착화된다. 국가의 개입을 봉쇄한 채, 기본적인 안전망인 공공복지제도는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복지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축소되고 폐지된다.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해고가 양산되고 고용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청년들은 시작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결국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사회에 만연한다. 무엇을 대상으로 향해야 할지조차 불분명한 분노는 무기력하게 밑으로 밑으로 끝없이 가라앉는다.

자유방임경제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무한경쟁만이 사회의 유일한 가치인 양 찬양한다. 자본의 방임은 필연적으로 도덕의 방임을 동반한다. 이제 소수의 수혜자들은 과거의 도덕적 가치조차 불편부당한 겉치레로 취급한다. '건강한 땀'은 조롱의 대상일 뿐 무엇을, 어떻게 해서 부를 축적했느냐는 더 이상 문제도 아니다.

"돈이 실력이다"는 주장이 더욱 당당해지고, 기어이 자신이 소유한 부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한다. 스스로에게 그럴 자격을 부여한다. 땅콩 회항처럼 예전엔 천박했던 행위가 이젠 당연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대체 된다.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다른 자리도 아니고 언론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개, 돼지를 운운할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한 제어되지 않는 방임은 절망하고 무기력한 다수를 조롱하고 모멸한다. 심지어 거꾸로 뒤집혀 가라앉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느끼는 참담한 슬픔조차 공공연히 비난받고 조롱받는다. 조롱과 모멸의 대상이 된 다수는 그저 무너져 내리는 가슴에 아이들을 묻고 돌아서 눈물만 삼킨다. 그렇게 강요 받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기 전까지, 그렇게 세상은 돌아갔다. 갑자기 알게 된 최순실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존재가 뇌관이 되었다. 느닷없는 인물들과 상상조차 못해 본 관계와 귀를 의심케 하는 사건의 연속이 마침내 기존 질서에 커다란 균열을 내고 거대한 폭발을 끌어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분노나 폭발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만큼 거리는 이성적이고 질서 정연하다. 온통 위트와 풍자가 넘쳐난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행진한다. 광화문 광장에 펄럭이는 세월호 깃발만 봐도 먹먹해지는 가슴은 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환한 웃음소리에 위로 받는다.

거리에 나온 시민 하나하나는 지극히 나약하다. 언론에서 비난이라도 할세라 비폭력을 맹신하고 쓰레기를 줍는 존재다. 눈이 오면 혹여 규모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며 의무감에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3차 담화 이후 여론의 변화가 있을 거라는 종편 패널들의 잔망스런 주장에 가슴 졸이며 거리로 나서는 존재다. 그러나 불안한 존재는 거리에 스쳐가는 사람들의 끝없는 눈빛과 마주치며 서로를 응원하고 힘을 낸다. 꺼질세라 소중히 촛불을 든 흰머리의 노년과 수년 후 퇴직을 앞둔 중년과 졸업한 지 3년이 넘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이 뒤섞여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구호를 따라한다. 오랫동안 인내를 강요받던 시민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시민 의지가 6주째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 6주 동안 정치권은 여야가 갈라지고, 친박으로 비박으로 나뉘고, 또 비박에서도 갈라진다. 다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야권마저 지지리도 못나게 군다. 말로만 국민의 뜻을 엄중히 받든다. 매주 토요일만 함께 하고 주중엔 또 다른 뻘짓을 한다. 소 귀에 경 읽기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뭔 그림을 그린다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는데. 대체 무엇으로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은 시민이 승리한다. 이제는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준비할 때다. 당장 이번 주 탄핵 가결이라는 하나의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다(혹여 가결이 안되더라도 그건 단지 승리의 시간이 조금 늦춰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제 광화문 거리에서 축제를 준비하자. 함께하는 촛불의 힘을 만끽하자. 외롭게 싸움을 시작했던 이대생들을 무대에 올려 박수 쳐 주고 환호하자, JTBC 뉴스룸 팀에 경의를 표하자. 하지만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자. 세월호에 대한 모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난 게 아님을 선언하자. 세월호 유가족은 허망하게 아이들을 떠나보내고도 목놓아 울 기회조차 국가에 빼앗겼음을 기억하자. 국가의 사과를 받아내자. 그래서 고 백남기씨 유가족들이 맘껏 통곡할 수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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