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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총수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하며 이렇게 구체적인 '민원'을 전달했다

  • 허완
  • 입력 2016.12.05 09:50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하면서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지원을 요청한 자리에서 기업들은 광범위하고도 구체적인 사업 민원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업들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인정한 내용으로, 특별검사 수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 수사에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4일 각 그룹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현대자동차·엘지(LG)·롯데·포스코·씨제이(CJ) 총수들은 지난해 7월과 올 2월 박 대통령을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고, 총수들은 각자 민원을 전달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한류·스포츠 융성은 최순실씨가 주도한 것으로 드러난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의 주요 사업목적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지난해 7월24일과 올해 2월15일 박 대통령을 독대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만남에서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문화산업 육성에도 적극적 지원과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고, 8월에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미르재단 출연을 요청했다. 정 회장은 독대 자리에서 제출한 ‘그룹 현황 자료’를 통해 민원을 제기했다. ‘국내 경기 활성화 및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해 환율 안정화’, ‘불법 노동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 ‘전기차·수소차 보급 확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조기 착공을 위한 협조’가 그 내용이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서울 삼성동에 세우는 신사옥으로, 현대차는 인허가 지연과 과도한 공공기여 부담 등을 애로사항으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7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우리가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개발하고 상용화한 기술이 있는 만큼 국내 시장부터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정부는 수소차의 개별소비세를 400만원까지 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미래 친환경차의 개발과 보급에는 기업의 기술 개발·투자뿐 아니라 인프라 구축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 간 ‘거래’ 정황은 다른 그룹도 마찬가지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올해 2월22일 독대 때 청정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을 위한 규제 완화, 수출 철강재 무역 규제와 관련한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포스코에 최순실씨 사업과 관련해 배드민턴팀 창단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3월14일 박 대통령을 만나 중소기업중앙회의 아울렛 의무휴업 확대 움직임에 대한 우려, 수입 맥주 과세 강화 필요 등을 건의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건의한 것은 맞지만 제대로 성사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엘지 구본무 회장도 지난해 7월25일 독대에서 “전기차 보급 확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엘지는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 부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엘지그룹 관계자는 “일반적 건의사항을 전달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또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 운영과 해외 방문 계획 및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 등을 설명(포스코)했고, “한류나 스포츠 융성을 통해 국가 경제 도움이 되고 싶다며 민간 차원의 협조를 바란다”(엘지), “문화·체육 교류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씨제이)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2015년 7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초청 간담회' ⓒ연합뉴스

면담 추진 과정도 박 대통령이 얼마나 최씨 관련 사업에 발 벗고 나섰는지를 보여준다. 기업들은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직접 연락해 일정을 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7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초청 간담회’를 앞두고 현대차 김용환 부회장이나 엘지 하현회 사장에게 전화해 총수 개별 면담을 요구했다. 안 전 수석은 행사를 마치고 귀사하던 씨제이 손경식 회장에게 전화해 다음날(7월25일) 면담을 요청했지만, 손 회장이 중요한 일정 때문에 곤란하다고 하자 당일 면담을 잡았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은 하루에 두 번이나 청와대를 방문했다. 안 전 수석은 포스코에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연락하라고 해 권오준 회장의 대통령 독대 일정을 잡게 했다.

이에 대해 윤소하 의원(정의당)은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선출된 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국정 농단을 일삼았고, 재벌들은 부패한 권력에 영합해 각종 특혜를 누려 정경유착이라는 폐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말했다.

삼성, 에스케이(SK), 한화, 한진그룹은 대통령 독대 내용에 대한 자료를 4일 현재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의 '민원'을 들었다는 의혹이 나왔다. '뇌물죄' 혐의 추가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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