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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못 쓰이는 단어 두 가지

우리의 경우, 자칭 보수 세력은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하는 것일까? 반대하는 가치나 세력은 있을지 몰라도 지키려는 가치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반공과 반북한이 좋은 예다. 어떤 이념이나 체제에 반대하려면 반대로 수호하려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보수라면 반공과 반북한 외에 상위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칭 보수 세력에게는 이것이 없어 보인다. 미움이나 증오는 있지만 확신이나 헌신은 없다. 

  • 이여영
  • 입력 2016.12.05 10:34
  • 수정 2017.12.06 14:12
ⓒ연합뉴스

 

 

개인으로서 나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갖고 있다. 외식업 경영자와 시민. 소셜미디어 활동을 할 때도 그 정체성이 두드러진다. 외식업에 대한 소견을 피력하는가 하면, 시민으로서의 주관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반대로 두 분야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에도 관심을 쏟는다.

 

요즘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용어가 두 가지 있다. 이 또한 내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외식 경영자로서는 '가성비'라는 단어다. 젊은 세대는 이 말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가성비 좋다는 말을 맹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종종 잘못 쓰이기도 한다.

 

가성비는 가격과는 다른 개념이다. 가격 대비 재료 혹은 품질이 좋다는 의미다. 재료나 품질이 탁월하다면 5만원짜리 음식도 가성비가 좋을 수 있다. 반대로 재료나 품질이 형편없다면 5천원짜리도 가성비가 나쁠 수 있다. 그런데도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열이면 열 5천원짜리 음식만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가성비라는 말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성비 좋다고 소문난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 들렀을 때 떠올랐다. 1인분에 8천원짜리 돼지고기의 원가가 350원이었다(불행하게도 외식업을 하는 처지여서, 음식을 접하자마자 즉각 음식 재료의 원가를 알거나 확인할 수 있다). 재료비가 기껏해야 음식 가격의 5%가 채 안 되는 셈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식당들은 대개 재료비를 50%정도 쓴다. 그 이상 쓰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곳 가운데 일부는 가성비가 좋은 편이라고 해야 한다. 간혹 재료비를 많이 쓴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식당에 들를 때면 가성비라는 말이 얼마나 오용 혹은 남용되고 있는지 확신이 선다.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는 시민으로서는 '보수'라는 말이 무척 거슬린다. 보수라는 말은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한다는 뜻이다. 서구 기준으로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명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 그리고 시장의 가치를 믿는다는 의미이다.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믿는다는 명분으로 낙태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시장의 가치를 지키려고 규제 완화나 감세를 내세우고, 아예 정부의 역할을 극적으로 축소하길 원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자칭 보수 세력은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하는 것일까? 반대하는 가치나 세력은 있을지 몰라도 지키려는 가치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반공과 반북한이 좋은 예다. 어떤 이념이나 체제에 반대하려면 반대로 수호하려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보수라면 반공과 반북한 외에 상위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칭 보수 세력에게는 이것이 없어 보인다. 미움이나 증오는 있지만 확신이나 헌신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내가 지키려는 가치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좋아지길, 자본주의가 더 따뜻해지길 바란다.

 

보수 세력 일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나 정부를 지키려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일제 강점기의 근대화를 높이 평가하고, 당시 독립운동의 전통은 아예 무시하려 든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만 된다고 맹목적으로 믿는다.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반대해야 할 가치나 세력만 믿고, 다른 모든 것은 희생돼도 상관없다는 투다.

 

그 결과는? 일제 강점기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거듭된 기득권의 대물림이다. 친일와 군부 독재세력, 정경유착 세력의 끊임없는 자기 강화밖에는 없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결과가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치부다.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이며, 법과 제도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끼리 거래하고, 그들끼리만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사익'을 '공공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들이 진심으로 지켜야 할 가치라고 믿는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들의 이해뿐이다. 그것을 위해 반대해야 할 가치와 세력을 특정했다. 공산주의와 북한이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북한이 고립돼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한국이나 정부, 건국절에 대한 집착은 그 도구다. 일제 강점기나 친일, 군부 독재 세력에 대한 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토록 철저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세력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보수라는 말인가? 윤창중과 이문열이 말하는 보수는, 도대체 어떤 가치를 지키겠다는 것일까?

 

차라리 잘 됐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기득권 세력의 내밀한 거래가 알려진 것은. 가짜 보수가 국민의 공포를 자극해 자신들의 사익만을 추구한 것이 폭로된 것도. 그 결과 젊은 세대가 보수를 오인하고, 보수와 진보를 단순히 선택의 문제로 오해하는 것도 이제 끝낼 수 있다. 진정한 보수라면 지켜야 할 가치를 내세우는 진짜 보수주의자가 되라. 겉으로는 완장 차고 깃발 들고, 속으로는 나와 내 주변의 이익만 챙기는 사이비를 떨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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