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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의미는 단순명확하다

놀랍게도 대통령의 3차 담화를 기점으로 보수의 한 켠에서 '상식 대 몰상식의 문제'를 '보수 대 진보의 진영대립'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궁지에 몰린 청와대와 친박은 그 길만이 살길이니 그닥 놀라울 것도 없지만 최근 들어 청와대 공격의 첨병에 서 있던 조선일보마저 진영 대립으로 현 상황을 이끌려는 모습은 자못 흥미롭다.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조선일보가 최근 기획 연재하는 칼럼 제목이다. 2일자 칼럼에선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라는 비장미 넘치는 이문열의 글이 실렸다. 촛불은 그저 이 터무니없는 사태를 누가? 왜? 어떻게?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자 하는데, 촛불은 패악스럽고 무지하며 부도덕한 자들을 법으로 단죄하길 원할 뿐인데 이게 왜 보수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것인가.

  • 오기민
  • 입력 2016.12.03 11:35
  • 수정 2017.12.04 14:12
ⓒ연합뉴스

요즘은 평소에 보지 않던 방송 프로와 신문까지 뒤져보는 것이 너도나도 일과가 된듯하다. 막장 드라마로 전개되던 상황이 며칠 사이 제법 삼국지 보는 재미(?)까지 더해준 탓이다. 지극히 순실스러운-치졸하고, 뻔뻔하며, 저열하고, 패악스러운 그리고 끝내는 허탈감만 안겨주는-이야기 전개에서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이젠 제법 흥미로운 정치게임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2차 담화까지는, 아니 적어도 "사심은 없었다"는 3차 담화의 앞 3분의 2까지는 상식과 몰비상식의 대립,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였다. 지난 40여일간 날마다 새로운 사실이 쏟아질 때마다 대다수 국민들이 설마설마하며 분노하고 모멸감을 느꼈던 것은 사건 내용의 몰상식과 비정상 때문이다. 비록 사건에 오르내리는 모든 인물들이 보수 편에 서 있는 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의 성격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사건의 내용이 너무 어처구니없도록 저렴해 보이는 탓이다. 이미 고착화된 4%의 지지율은 이 사건이 보수 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이라고 얘기하는 명확한 증거아닐까.

놀랍게도 대통령의 3차 담화를 기점으로 보수의 한 켠에서 '상식 대 몰상식의 문제'를 '보수 대 진보의 진영대립'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통령의 3차 담화를 기점으로 보수의 한 켠에서 '상식 대 몰상식의 문제'를 '보수 대 진보의 진영대립'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궁지에 몰린 청와대와 친박은 그 길만이 살길이니 그닥 놀라울 것도 없지만 최근 들어 청와대 공격의 첨병에 서 있던 조선일보마저 진영 대립으로 현 상황을 이끌려는 모습은 자못 흥미롭다.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조선일보가 최근 기획 연재하는 칼럼 제목이다. 2일자 칼럼에선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라는 비장미 넘치는 이문열의 글이 실렸다. (제목만 얼핏 보고는 잠시 심각한 착각을 했었다. 대한민국이 위기이니 '보수의 길'은 이제 묻어버리자. 보수는 죽어야한다. 뭐 이런 얘기로 오해했더랬다)

이문열은 위의 글에서 최근의 상황이 '보수의 위기' 상황이며, "위기란 곧 존립이 위협당한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현재의 상황이 '보수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촛불 현장은 분노를 넘어 축제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인데 왜 이들만 이토록 과하게 비장해하고, 심하게 오버를 하는 걸까.

촛불은 패악스럽고 무지하며 부도덕한 자들을 법으로 단죄하길 원할 뿐인데 이게 왜 보수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것인가.

나로선 보수 한 켠의 이런 호들갑을 이해할 수 없다. 거리의 촛불이 청와대로 몰려가 왕정을 타도하고 여왕을 끌어내 단두대에 매달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반민특위 만들어 친일부역자 색출하자는 것도 아닌데, 그처럼 천지개벽할 혁명적인 상황도 아닌데 왜 이들은 존립의 위협까지 느끼는 걸까.

촛불은 그저 이 터무니없는 사태를 누가? 왜? 어떻게?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자 하는데, 촛불은 패악스럽고 무지하며 부도덕한 자들을 법으로 단죄하길 원할 뿐인데 이게 왜 보수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것인가.

이문열은 위의 기고문에서 "촛불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바로 이거다. 동일한 것을 보지만 전혀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동안 틈만 나면 시위의 폭력성을 매도하던 이들이 이제 시위의 질서정연함마저 의심한다. 일사불란한 통제! 아리랑축전! 결국 그들에게 촛불은 종북이고 간첩일 뿐이다.(게다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니 이렇게까지 비겁한 글을 이문열이 썼다는게 믿기질 않는다)

정말 가관은 앞의 인용 문장 바로 뒤에 있다.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 이 역시 카더라식의 비열한 글쓰기다. 당일 광화문 현장에 나갔던 사람으로서 그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싶다. 당일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공지했다. 항의의 표시로 8시 정각에 다함께 촛불을 끄겠노라고. 그러니 언론에서 카메라에 잘 잡아달라고. 그리고 8시 정각에 5,4,3,2,1 카운트를 했더랬다. 당시 현장에도 있었고 나중에 TV 화면으로도 봤지만 뭐 그리 상징적이지도 않고 크게 감동적일 것도 없는 작은 이벤트에 불과했던 일이 불과 일주일도 되지않아 새누리당 김종태의 종북발언에 이어 느닷없이 이문열의 기고문처럼 묘사되리라곤 정말 상상조차 못했다. 지금 제정신인가? '으스스한 느낌'은 정작 이문열의 기고문을 읽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과거 간첩 조작 사건들이 이렇게 만들어졌겠구나,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말과 행동조차 간첩이라는 증거로 만들어졌겠구나 생각한다면 나만의 오바일까?

촛불은 야당에게 탁월한 정치 협상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각자의 정치적 이해에 앞서 국민의 단순명료한 요구를 실천하라는 것뿐이다.

몇 년 전 강원도로 귀농한 후 한동안 서울을 찾지 않던 나도 눈 내리는 날씨를 뚫고 광화문까지 다녀왔는데, 이문열 작가도 이번 주말 광화문에 한번 다녀오시길 바란다. 작가라는 사람이 자꾸 주변 말만 주워듣고 판단하지 말고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길 바란다. 그런 결과를 갖고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본인도 후학들 그리 가르치지 않겠나.

3차 담화문 발표 이후, 지리멸렬한 모습만 보이고 있는 야당들 역시 제정신은 아니다. 야당 역시 촛불 민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 못하기는 매한가진 듯하다. 촛불은 야당에게 탁월한 정치 협상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특출난 묘책을 내올 것을 요청한 바도 없다. 대단한 리더가 나서 줄 것을 기대한 적 없다. 단지 대다수 국민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각자의 정치적 이해에 앞서 국민의 단순명료한 요구를 실천하라는 것뿐이다.

촛불로 대변되는 국민의 요구는 너무도 단순 명료하다. 대통령이 법을 어겼으니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고, 당연히 사건에 관련된 자 모두에게 빠짐없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해 못하는 야당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냥 외우길 바란다.하야! 탄핵! 구속! 사면불가!

정치적 책임을 물어 하야를 요구하는 것이며, 법적 책임을 물어 탄핵을 하라는 것이다. 하야든 탄핵이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재판하여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상적인 국가로 나아가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걸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임기 단축, '정권이양'을 거론한 3차 담화문 번역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마치 쓰러진 비석문의 깨지고 지워진 글자의 원문을 읽어내는 금석학이라도 동원해야만 이해할 것 같은 3차담화문은 어차피 다양한 해석본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워진 비석문처럼 숨겨지고 때론 언제라도 뒤바뀔 말들로 쓰여진 우주의 언어이니 말이다. 쓸데없는 문장 해석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국민의 요구에 충실하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이해 못하는 야당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냥 외우길 바란다.

하야! 탄핵! 구속! 사면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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