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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대학'에도 여성혐오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자보가 동덕여대에 붙었다 (사진)

  • 김현유
  • 입력 2016.12.02 07:30
  • 수정 2016.12.02 09:05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여성들만 입학이 가능한 '여자 대학'은 존재한다. 대부분 여자대학의 설립 배경은 "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국내의 여자대학들도 마찬가지이며, 이런 이유로 여자대학의 경우 남녀공학 대학들에 비해 보다 성평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여자대학에서도 "여성 혐오"는 피해가기 어려운 현상이었던 모양이다.

23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동덕여자대학교에는 이런 대자보가 붙었다.

여자들은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회에 참여좀 해라 그게 스펙이지

소수과라는 특성과 교수라는 지위를 남용해 학생들에게 무차별적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내는 교수님과 맞서 싸우는 사회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패기도 있고 스펙좀 쌓아야지 않겠습니까.

1. 여자는 30전에 애를 낳아야 한다. 남자는 상관없다.

2. 요즘 애들은 교수가 좀만 잘 해줘도 성추행이라고 한다.

3. 공학교수들 보면 제자들이 차도 태워주고 밥도 사주는데 여자애들은 아기 낳고 그러면서 이런거 하나도 없다. 아 좋은것 있다, 술 사달라고 안한다.

4. 너네는 돈 많은 오빠 만나서 오빠 차 타고 다녀라.

5.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갔다와서 넓게 못 본다.

6. 이번 대통령 사태도 여자가 돈을 막 써서 생긴 일이다.

7. 아직 너네는 모르겠지만 결혼할 때 속궁합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8. 여성이라 취업 노력을 안 한다.

9. 불리할 땐 여성임을 내세우면서 여성인권 운동을 한다.

교수님의 여성비하 발언을 제보받는다는 글을 올리자 165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여러 학생들로부터 녹취 파일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거의 모든 학생이 불쾌함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즉, 저를 찾아낸다고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저를 찾아내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대자보가 수거된 후에도 교수님의 인생에는 어떠한 변화도 생기지 않고 교수님은 여전히 교수 대접을 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가실지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우리 학생들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 "여자가 살기 편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같이 남성우월주의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만들어놓은 유리장벽에 부딪히게 되는 일을 빈번히 겪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여성으로서 우리의 힘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교수님은 당신의 미성숙한 성평등 의식으로 가득한 한 학기 300원도 아닌 300만 원짜리 당신 수업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유사한 내용의 대자보는 학내 곳곳에 부착돼 있었다.

자보의 내용이 학내에서만 이슈가 되지 않고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나가자 해당 과목의 교수는 24일 수업 중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사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익명으로 제보를 보낸 학생은 이 사과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반응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수업 내내 사과의 말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의견이다. 또 학생들이 분노한 부분인 "여성 비하",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인 도쿄대학교 명예교수 우에노 치즈코에 따르면 '여성혐오'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객관화, 타자화"를 말한다. 한국 사회에도 이런 '여성 혐오'는 만연해 있다. 그나마 여성혐오가 최소화된 공간일 수 있는 여자대학에서조차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지난 11월 30일 이 대자보는 자체 수거됐으나 제대로 된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학생들의 반발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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