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교활함의 힘

저들을 비난하는, 저들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비난, 비판하는 숱한 말들을 읽는다. 물론 나도 공감한다. 당연히 화가 난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런 비난은 저들과의 싸움에서 별 도움이 안된다. '악'을 비난한다고 악이 변화하고, 어리석은 자를 비난한다고 그들이 달라지는 걸 나는 현실에서나 문학에서나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런 질문은 해본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광화문 광장에 모여 100만이 퇴진을 외치는 것이 최선일까. 국회가 시민들의 뜻을 무시하는 것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현 시점에서는 광화문집회와는 별개로, 여의도와 각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탄핵을 압박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 오길영
  • 입력 2016.12.02 07:16
  • 수정 2017.12.03 14:12
ⓒ연합뉴스

1.

아주 오래전에 자서전의 성격을 띤 루카치의 대담집과 관련 글들을 묶은 책을 공역했었다. 이제는 그 세부내용들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한 대목.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교활함(slyness)에 관한 루카치의 언급이다. 1930년대이후 득세했던 스탈린주의의 광풍 속에서 루카치가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남았는가를 질문자가 제기한다. 루카치의 답변. 자신은 일종의 교활한 게릴라전을 펼쳐서 살아남았다고.

 

2.

돌아가는 어지러운 시국을 보며 문득 루카치가 말한 교활함이 떠오른다. 루카치가 겪었던 상황과는 전혀 비교할 수도 없지만, 수년 전에 나도 사악한 자들과 맞선 경험이 있다. 그들은 힘과 조직, 재력을 지녔다. 이쪽은 명분과 약간의 사람들만이 있었다. 그 싸움을 겪으며 너무 힘들고, 진이 빠져서 병원 신세까지 졌다. 하지만 결국은 이겼다.(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때를 되돌아본다. 힘을 가진 그들에 맞서 어떻게 승산이 거의 없는 게임에서 작은 승리나마 거둘 수 있었을까. 저들이 '사악'하고 이쪽은 '선'했기 때문에? 저들이 틀렸고, 이쪽이 옳았기 때문에? 천만의 말씀이다. 몇 번 적었지만, '선'하기 때문에, '옳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이기는 일은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문학예술에서도 그런 식으로 서사가 전개된다면 대개 개연성이 없다고 비판당한다. 당시의 힘든 싸움에서 작은 승리나마 거둔 이유? 저들이 힘을 지녔음에도, 그 힘만 믿고 미련하고 작전이 없고, 치밀하지 못하고, 덜 교활했기 때문이다. 그 작은 틈새를 상대적으로 이쪽에서 더 교활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승리했다. 관건은 교활함의 수준이다. 더 교활한 쪽이, 더 치밀한 쪽이 싸움에서는 승리한다. 현실에서 대개 '악'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악'을 비난한다고 악이 변화하고, 어리석은 자를 비난한다고 그들이 달라지는 걸 나는 현실에서나 문학에서나 거의 본 적이 없다.

 

3.

저들을 비난하는, 저들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비난, 비판하는 숱한 말들을 읽는다. 물론 나도 공감한다. 당연히 화가 난다. 울화병이 날 듯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런 비난은 저들과의 싸움에서 별 도움이 안된다. 저들은 원래 그런 이들이기 때문이다. '악'을 비난한다고 악이 변화하고, 어리석은 자를 비난한다고 그들이 달라지는 걸 나는 현실에서나 문학에서나 거의 본 적이 없다. 철든 이후에 사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비난과 비판으로 세상이 바뀐다면 세상은 벌써 유토피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을 통상 관념론이라고 부른다.

 

4.

저들의 어리석음과 교활함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내 생각에 어떻게 우리가 저들보다 더 치밀하고 교활해질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치밀한 작전을 세우고, 저들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설령 이기더라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더 겪어야 할 것이다.(이미 그런 징후가 보인다) 잔꾀를 연상시키는 '정치공학'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많지만, 정세와 세력과 힘의 배치와 편성, 대응을 고민하는 정치공학이 없이 '순수한'(sic!) 마음과 '저들에 대한 비난과 비판'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나로서는 '나이브하시군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순진함은 철부지 어린아이에게는 미덕이지만, 어른에게는 종종 악덕이 된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광화문 광장에 모여 100만이 퇴진을 외치는 것이 최선일까.

5.

더 교활하고 치밀한 대응책과 전략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제시할 능력은 당연히 일개 비평가인 내게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해본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광화문 광장에 모여 100만이 퇴진을 외치는 것이 최선일까. 국회가 시민들의 뜻을 무시하는 것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현 시점에서는 광화문집회와는 별개로, 여의도와 각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탄핵을 압박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수구언론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뾰족한 답은 없지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이때, '광화문 100만'을 넘어선 다른 효과적 방책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당면과제는 탄핵을 관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뒤의 문제는 또 그때 고민할 일이다.

  

6.

요약하자. 상대를 비난만 하는 건 사태해결에 별 도움이 안된다. 상대가 악하다고, 교활하다고 화를 내는 건 별 도움이 안된다. 그들은 원래 그런 자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저들보다 더 치밀해지고, 전략적이고, 좋은 의미에서 더 교활한 방책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백면서생의 짧은 생각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오길영 #사회 #촛불집회 #국회 #정치 #뉴스